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비밀은 없다… 모든 것을 조심하라

[Cognitive Computing] Nothing to Hide, Everything to Fear

팀 에스테스 Tim Estes는 지난 2000년 ‘디지털 리즈닝’을 창업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앞으로 10년간 미 국무부의 전 세계 테러 용의자 추적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활동할 것이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 되었다.

테네시 주 프랭클린 Franklin에 본사를 둔 디지털 리즈닝은 인지 컴퓨팅(cognitive computing)의 상업화를 목적으로 창립된 회사다.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 Watson이 2011년 제퍼디! Jeopardy! *역주: 미국의 유명 퀴즈쇼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 인지 컴퓨팅이 낯설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인지 컴퓨팅이란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내부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영역 밖의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을 일컫는말이다. 이를 활용해 컴퓨터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기능을 조금씩 갖추게 됐다. 예컨대 테러리스트가 동료에게 “아이가 유모차에 탔어”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이를 수상하게 여기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될 무렵, 에스테스는 궁극적으로 모든 소프트웨어가 자체 학습 기능을 갖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디지털 리즈닝을 창업했다. 3년 후 미 국방부는 그에게 소규모 프로젝트 차원의 몇몇 협력을 요청했다. 그 후 회사는 9·11 테러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현재 디지털 리즈닝의 CEO로 활동하는 에스테스는 “9·11 테러는 정보에 따른 행동에 나서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학습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 개발은 창업 당시의 목표였지만, 9·11 이후로는 전 미국인의 목표가 되었다.”

디지털 리즈닝은 이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2004년에는 미국 육군의 국가지상군 정보본부(National Ground Intelligence Center)와 직접 계약을 체결했고, 2010년에는 미 중앙정보국의 벤처기업 지원 펀드인 인큐텔 In-Q-Tel로부터 자금을 유치했다. 미국 정보기관을 유일한 고객으로 두고 사업을 펼친 결과, 디지털 리즈닝은 인지 컴퓨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에 기반을 둔 첩보 목적의 고성능 분석 툴을 개발하게 되었다. 미 국방부는 전 세계적인 사건이 실제로 터지기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디지털 리즈닝은 이에 화답해 제각기 성격이 다르고,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고, 정리도 안 된 방대한 양의 정보를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과 장소, 그리고 사건 간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2012년 핀테크 이노베이션 랩 FinTech Innovation Lab-뉴욕 시에 위치한 기업 대상 멘토링 프로그램-은 디지털 리즈닝을 초청, 금융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다. 골드만 삭스, 크레디트 스위스, J. P. 모건 등과 회동을 가진 후 에스테스는 디지털 리즈닝의 고객층을 민간 분야로 넓힐 시기가 됐다고 판단했다. 10년간 국가 기밀의 영역 내에서 활동했으니 이제는 여느 군대 못지않게 정보에 목마른 곳, 금융업계로 사업을 확장할 시점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지난 18개월간 골드만 삭스와 크레디트 스위스를 포함한 세계 최대 금융회사 몇 곳이 디지털 리즈닝이 당초 국가안보를 위해 개발했던 최첨단 분석 도구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에스테스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자체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 인터넷 트래픽을 분석해 사내에서 불량 거래, 시장 조작 시도,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ssion·SEC) 규정 위반 등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적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이를 “선제적 규정 준수”라 부른다. 회사는 스마트해진 소프트웨어 덕분에 사내에서 오가는 모든 이메일, 인스턴트 메시지, 언론 보고, 메모 등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직원이 불법적이거나 금지된 활동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기 이전 회사가 이를 포착해 대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에스테스는 “누가 누구와 대화했고, 그 대화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대화 내용을 실제로 실행에 옮겼는지 알아내는 것이 군사 첩보 활동의 기본 목적”이라고 말했다. “은행에서 내부를 조사하는 방식도 이런 과학수사 기법과 매우 유사하다.”

오늘날 금융사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규칙 준수 감시 활동을 벌인다. 먼저 전문 인력을 고용해 무작위로 선별한 이메일을 일일이 읽고 분석하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금융사라 하더라도 상당히 비용 부담이 큰 방식이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사용해 매매 기록 등 각종 체계화된 데이터를 분석, 수상한 매매 패턴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기업 데이터의 70~80%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은 탓에 부정행위의 증거 중 상당수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허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 방법 모두 사후 대처일 뿐이라는 점이다. 사건이 터진 후에야 전문인력이나 알고리즘을 사용해 증거를 찾아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크레디트 스위스 투자은행의 매니징 디렉터 브라이언 구도프스키 Brian Gudofsky는 “규정 위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비용 측면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과 타이밍도 고려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거가 아닌 의도를 포착하는 것이 해결책이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경영진 입장에서 단숨에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레버리지’, ‘예산’, ‘브로커’, ‘특혜’ 등 특정 키워드를 지정하면 이를 포함하는 모든 대화 기록을 찾아 제공한다. 하지만 디지털 리즈닝이 개발한 신데시스 Synthesys 시스템은 대화 기록의 각 부분을 쪼갠 후, 이를 이어지는 부분과 비교해 전체 맥락을 파악한다. 이 시스템은 잇단 금융 스캔들 등 최근 주요 뉴스나 사내 인간관계의 변화 양상을 모두 계산에 넣는다. 그리고 서로 관계가 없는 조직 내의 두 구성원이 갑자기 자주 이메일을 교환하는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예의주시한다. 모든 수상한 행동들이 수집되면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이를 직접 분석한다. 이들은 종종 해당 회사에 고용돼 내용을 정밀하게 검토한다. 신데시스는 과거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담합, 비정상 거래, 내부인에 의한 정보 유출을 암시하는 증거 감지 능력을 스스로 더욱 향상시키고 있다.

디지털 리즈닝의 성공적인 금융계 진출은 신기술을 활용해 직원들의 부정 행위를 막으려는 기업계 전체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 고객, 규제 당국에 알리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MIT 컴퓨터공학 및 인공지능 연구소의 대니 웨이츠너 Danny Weitzner 책임연구원은 “데이터 분석과 함께 일명 ‘정책 해석학(policy analytics)’의 수요도 엄청나게 커졌다”고 말했다. “기업 스스로 규정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과 규제 당국에도 데이터를 올바르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9개월 전, 웨이츠너는 동업자들과 함께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Cambridge에서 트러스트레이어스 TrustLayers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디지털 리즈닝처럼 사내의 규칙 위반자를 적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기업의 데이터 사용정책 위반-직원의 실수로 자주 발생한다-을 막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데이터 사용정책은 헬스케어 산업처럼 법으로 엄격하게 보호받는 데이터에 접근해 이용하는 업계에서 점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부분이다). 렌셀러 폴리테크닉 연구소(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에서 컴퓨터 공학 교수로 재직 중인 짐 헨들러 Jim Hendler는 “규칙을 준수하고 이를 홍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러스트레이어스의 자문도 맡고 있는 헨들러는 IBM과 함께 왓슨의 상업적 활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규제 당국이 원하는 대로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음은 물론,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리즈닝은 2012년 첫 금융업계 고객을 맞았다. 현재는 대형 금융사 6곳을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런던과 뉴욕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리즈닝의 중역 마르텐 덴 하링 Marten den Haring은 기술 영역을 넓혀 ‘시장 지성(market intelligence)’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회사의 다음 목표라고 밝혔다. 개발에 성공하면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가 규칙 준수 감시 목적으로 처리한 데이터의 사용 범위를 확장, 거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각종 사건에 대해 종합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그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단서를 달면서 “현재 디지털 리즈닝의 기술을 헬스케어와 에너지 업계에도 적용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덴 하링은 “이 시장은 현재 빠르게 성장 중”이라며 “향후 24개월 내에 경쟁업체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경쟁이 시작된다면, 이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업체는 다름아닌 디지털 리즈닝일 것이다.


1억 2,100만 달러
골드만 삭스와 베인 캐피털이 2007년 담합 혐의로 소송을 당했을 때 지불한 합의금.

10억 달러
제이피 모건이 2013년 ‘내부 통제’ 분야에서 늘린 예산 액수

“이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데려간다면 선전 포고로 받아들이겠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지난 2005년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에게 한 말. 두 회사는 지난 4월 담합 혐의로 제소된 후 합의했다.

144억 달러
전 세계 기업이 2013년 비즈니스 정보 분석 소프트웨어에 지출한 총 비용.

“아마존의 판매가를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원상 복귀시키는 게 우리 목표다.”
한 대형 출판사 모기업의 CEO가 2009년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 한 말. 애플과 5개 출판사는 전자책 가격 담합 혐의로 제소당했으나 지난 7월 합의했다.


이 기사가 흥미로웠다면 포춘 홈페이지에서 번 코피토프의 ‘빅 데이터의 더러운 문제(Big Data’s Dirty Problem)’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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