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리바이스는 여전히 미국의 아이콘일까?

Does Levi Strauss Still Fit America?

161년 역사를 지닌 리바이스는 한때 청바지의 대명사였지만, 이제는 수많은 데님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다. P&G에서 면도기 이미지를 혁신했던 브랜드 마케팅의 달인 칩 버그 Chip Bergh는 리바이스의 과거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by CAROLINE FAIRCHILD
Photograph by SAM KAPLAN

리바이스의 회장 겸 CEO 칩 버그(57)는 자신은 ‘의류업계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San Francisco 49ers *역주: 미국 미식축구팀의 새 홈구장인 리바이스 스타디움 Levi’s Stadium(캘리포니아 주 샌타클라라 Santa Clara 소재)을 가로지르던 중이었다. 그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의류업체 중 한 곳의 CEO라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기온이 27도까지 올랐던 7월의 어느 더운 날 이뤄졌다. 2011년 리바이스 CEO에 오른 버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사 제품을 입고 있었다. 바지는 750달러(약 80만 원)짜리 맞춤 청바지였고, 카우보이 스타일의 깔끔한 흰색 긴 팔 셔츠 위로 포티나이너스의 엠블럼이 가슴에 붙은 황토색 트러커 재킷 *역주: 캐주얼한 면 재킷의 일종을 입고 있었다. 리바이스 스타디움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가 입은 모든 옷에는 리바이스의 유명한 붉은색 로고가 붙어 있었는데, 포티나이너스 엠블럼의 붉은색보다 조금 밝은 빨간색이었다. 버그는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로 색을 구별 못 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운동 경기장에서 만나긴 했지만, 버그는 스포츠보단 회사에 정열을 바치는 사람이다. P&G에서 일했던 그는 “내 피는 아직도 (P&G의 상징색인) 푸른색”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팬이 아니라곤 해도 스타디움 내 고급 라운지인 501 클럽에 서 있는 모습은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501 클럽은 미식축구 경기장이라기보단 리바이스의 오랜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에 가까웠다. 라운지의 이름은 리바이스의 최초 제품 중 하나이며 상징적 존재인 501 청바지에서 따 왔다. 한쪽 벽에는 리바이스의 역사를 대표하는 청바지 여러 점이 연대 순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버그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잔뜩 붙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리바이스 경영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팬’들이 각자 자신의 청바지를 입고 자랑스레 찍은 사진들이었다. 리바이스는 포티나이너스에 20년간 2억 2,000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홈구장의 명명권을 얻었다. 미국인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리바이스에 대한 향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버그는 “경기장에 입장하는 6만 8,000명의 팬이 포티나이너스 유니폼과 함께 리바이스 청바지와 트러커 재킷을 입고 있다면 그야말로 장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업체 경영자라면 누구나 수많은 팬이 자사의 옷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해 할 것이다. 청바지라는 제품을 탄생시킨 주역이자 세계 최대 청바지 업체임에도 리바이스는 오랫동안 이러한 상상을 현실로 옮길 수 없었다. 리바이스는 그동안 ‘잃어버린 세대’(버그의 표현이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분투해왔다. 리바이스는 120년간 청바지의 대명사로 통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패션업계에 청바지 열풍이 불면서 세븐 포 올 맨카인드 7 For All Mankind(2000년 창립)나 트루 릴리전 True Religion(2002년) 같은 의류라기보단 신흥종교 같은 분위기가 나는 여러 이름의 고급 브랜드가 속속 생겨났다. 저가 시장에선 기존 경쟁자인 리 Lee나 랭글러 Wrangler 같은 브랜드가 점유율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리바이스가 샌드위치 신세가 된 셈이었다.

지난 1996년 리바이스는 매출 71억 달러를 기록하며 나이키를 앞질러 나갔다. 하지만 2003년에 이르자 매출이 42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애정을 실제 매출로 연결시키지 못하면서 그 후 10년 동안 리바이스의 매출이 거의 늘지 않았다. 리바이스 디자인 팀은 여성용 청바지의 색상 다양화, 남성용 청바지의 맞춤화 등의 트렌드를 제때 따라잡지 못했다. 한때 포춘 500대 기업 20위권 안에 들었던 리바이스는 2012년에 급기야 순위에서 탈락하는 신세가 됐다.

이 정도 하락세라면 신임 CEO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버그-육군 대위 출신이며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는 지난 20여 년 간 리바이스에서 자취를 감췄던 기강을 다시 확립하고 있다. 버그는 리바이스를 다시 성장세로 돌릴 수 있다는 확신 하에 회사의 방만한 비용구조를 과감히 혁신했다. 주력 상품군인 베이직한 캐주얼 의류(버튼플라이 진 *역주: 지퍼 대신 단추로 잠그는 청바지, 흰색 포켓 티셔츠, 트러커 재킷 등)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버그는 리바이스가 다시 유행을 선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에 투자하고 있다.

버그는 이러한 전략이 본질로의 회귀인 동시에 미래를 향한 전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수많은 이들이 리바이스와 관련된 자신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링크트인 LinkedIn에 한 러시아인이 쓴 글이 올라왔다. 어릴 때 입던 리바이스 청바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리바이스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버그의 말을 듣다 보면 감성적인 면 이상의 무언가가 있음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감성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브랜드 전문가’다. 그런 그에게 리바이스가 최고의 브랜드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버그는 28년간 P&G에서 근무한 끝에 당시 매출 70억 달러에 달하던 남성용품 사업부를 총괄하는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에는 P&G의 면도기 브랜드인 질레트 퓨전 Gillette Fusion의 가치를 2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데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리바이스-회사채를 공개 판매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론 가족 기업이다-는 버그가 또 한 번 신화를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리바이스는 현재 4개 브랜드(리바이스, 다커스 Dockers 및 저가 브랜드인 시그니처 Signature와 데니즌 Denizen)를 보유 중이지만 매출의 84%는 리바이스 브랜드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회사는 ‘리바이스를 사랑하지만 떠나 버린’(브랜드 담당 사장 제임스 컬리 James Curleigh의 표현이다) 중장년층 이상 고객을 사로잡으면서 동시에 ‘리바이스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를 공략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오프라인 매장 방문객 수와 청바지 시장의 전체 매출이 지속적인 감소세를 나타내는 등 시장 환경이 악화 되고 있는 것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두 가지 과제가 워낙 쉽지 않기 때문에 버그는 이를 해결 중이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의미의 전환은 여전히 준비 중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식축구로 치면) 아직 1쿼터 첫 광고시간 정도다.” 1개월 후에 다시 만났을 때도 버그는 조심스럽게 “아직 성공 여부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라며 “오늘 인터뷰가 굉장히 떨린다”고 말했다.

포춘 1,000대 의류기업에 이름을 올린 업체 중 19세기에 창업된 기업은 5개뿐이다. 1853년 세워진 리바이스는 그중 맏형 격이다. 독일 바이에른 주 출신인 창업자 리바이 스트로스 Levi Strauss는 서부에 금광 개척 시대가 한창이던 때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직물 상점을 차렸다. 창업 후 20년이 지나서야 스트로스와 그의 동료 제이콥 데이비스 Jacob Davis-라트비아 이민자 출신이다-는 튼튼한 데님 소재 바지인 XX(훗날의 501)를 개발했다. 데이비스는 바지의 앞 여밈 부분 맨 아래와 포켓 가장자리 등 압력이 크게 가해지는 부분에 리벳을 박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스트로스와 데이비스는 이 새로운 바지 제조법을 공동으로 특허 등록했다. 리바이스의 장수 비결에 대해 물으면, 임원과 창업주 후손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내놓곤 한다. ‘이익이 아닌 다른 곳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놀라운 답변이다. 리바이 스트로스는 자선 사업가로도 유명했다. 그는 1890년대부터 UC 버클리 UC Berkeley에 장학금을 지원했다. 임종을 앞두곤 자신의 재산 일부를 샌프란시스코 퍼시픽 유대인 고아원(Pacific Hebrew Orphan Asylum)에 기부했다. 내부 관계자들은 창업자 사후에도 리바이스가 ‘원칙을 통한 이익(profits through principles)’을 줄곧 추구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스트로스의 고손자뻘로 현재 리바이스의 명예회장인 로버트 하스 Robert Haas는 1984년부터 1999년까지 회사 CEO로 재임했다. 당시 그는 해외 공급업체에 제조업자 행동강령을 전파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고, 포춘 500대 기업 CEO 중 최초로 직원의 동거인에게까지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했다. 그는 80년대에 에이즈 연구비 모금을 지지하고 나선 최초의 기업인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을 이어나가고자, 1977~1985년까지 상장기업이었던 리바이스는 차입매수(LBO)를 통해 비공개 기업으로 돌아갔다. 포춘을 비롯한 많은 이가 당시 리바이스의 처리 방식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공공선의 추구만으론 현실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었다. 리바이스 경영진은 청바지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에 안주한 나머지, 신세대 패션 마니아들이 다른 브랜드를 입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편으론 재무 전략 차원에서 또 다른 실수가 발목을 잡았다. 11년 전 성공적으로 활용했던 차입매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리바이스가 최정점에 올랐던 1996년, 당시 CEO였던 하스는 현재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또 한 번의 차입매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소유주 일가 몇몇의 의결권이 강화됐다(하스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전체 발행 주식의 약 3분의 1을 매입한 결과, 리바이스는 33억 달러의 채무를 지게 됐다. 채무 상환이 우선 과제가 된 상황에서, 경영진은 시장의 급속한 변화와 새로운 경쟁구도의 등장을 감지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데님 시장에서 리바이스의 점유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2004년 리바이스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4.4%였지만 현재는 12.5%까지 하락했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7.2%에서 5.3%로 떨어졌다(하단 표 참조). 여전히 업계 내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리서치 업체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Euromonitor International에 따르면, 리바이스는 리, 랭글러, 세븐 포 올 맨카인드를 보유한 브이에프 VF에 턱밑까지 추격당하고 있다.

전·현직 임원 및 업계 전문가들은 리바이스의 추락이 계속된 양대 주요 원인으로 현실 안주와 오만을 꼽고 있다. 한 전직 고위 임원은 “다른 회사의 디자인 팀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 유행을 파악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있지만, 리바이스 디자이너들은 회사의 과거 제품과 자료에 파묻혀 있다”고 꼬집었다.

1999년 펩시의 북미사업부 CEO였던 필립 마리노 Philip Marineau가 하스의 뒤를 이어 신임 CEO에 올랐다(하스는 회장직을 유지했다). 마리노의 임기 7년간 리바이스의 재무 성적은 들쭉날쭉했고, 매출은 하락했다(마리노는 포춘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리바이스가 회생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매출이 “일정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선 주도권을 잡은 후 안정화를 거쳐 성장이 이뤄진다”며 “리바이스는 파산 위기를 모면하고 건전성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2006년 취임한 신임 CEO 존 앤더슨 John Anderson은 내부인사였다. 현 이사회 의장인 스티븐 닐 Stephen Neal은 앤더슨이 5년간 “무난하게 훌륭한 경영(nice, easy management)”을 했다고 평가했다.

닐은 “리바이스가 세계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리바이스 브랜드만 있으면 어떤 위기에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며 “현실에 안주했던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헤드헌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 버그는 P&G 프로젝트와 관련해 베이징 출장을 가 있는 상황이었다. 헤드헌터는 CEO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개월간 이런 전화를 이미 여러 차례 받아본 터라 버그는 이를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리바이스가 CEO를 찾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수화기에서 귀를 뗄 수 없었다. 그는 “‘정말입니까? 그거 엄청난데요’라는 대답이 절로 나왔다”며 “그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상했다. 버그는 리바이스의 매출을 100억 달러 정도로 짐작했다. 그러나 2011년 9월, 버그가 CEO직에 올랐을 무렵 실제 매출액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었다. 그는 취임 후 즉시 리바이스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2009년, 리바이스의 경영 상태를 진단한 컨설팅 팀은 회사의 매출 성장률을 (업계 내 몇몇 주요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인) 최소 연간 8%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권고했다. 이를 받아들인 경영진이 신규 점포 400곳을 개장하면서, 2009년 당시 1,900개였던 매장 수가 1년 만에 2,300개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매출이 소폭 증가했지만 지출 또한 늘면서 역효과가 나타났다. 임직원 수는 2009년 당시 1만 1,800명이었지만 1년 만에 37% 증가, 2010년에는 1만 6,200명까지 늘어났다. 영업비용은 15% 치솟았다.

VF의 이사를 역임한 버그는 리바이스가 경쟁사에 비해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이 부족하며, 현실적으로 경쟁사 수준의 성장을 이루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았다. VF는 청바지 판매 외에도 노스페이스 North Face 와 반스 Vans를 통해 급성장 중인 스포츠의류 시장도 공략하고 있었다. 리바이스 매출의 85%는 청바지 판매에서 나왔는데, 이쪽은 성장률이 2~3%에 불과할 정도로 정체된 시장이었다. 컨설팅 팀의 계획이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도 리바이스는 같은 전략을 계속 밀어붙였다. 버그는 “당시 리바이스는 똑같은 행동을 계속하면서 결과가 다르길 기대했다.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2012년 7월 열린 경영진 회의에서, 버그는 전 세계 리바이스 최고위 임원들에게 과감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존경해 온 ‘경영의 대가’ 짐 콜린스 Jim Collins에게 경영진을 위한 특별 강연을 부탁했다. 콜린스는 대중 강연을 자주 하지 않지만 ‘리바이스 사에게 역사상 중대한 시점’이라는 점 때문에 이를 수락했다. 강연 주제는 콜린스의 2011년 베스트셀러 ‘위대한 기업의 선택(Great by Choice)’에서 제시된 경영 전략인 ‘20마일 행진’이었다(콜린스는 이 무렵 포춘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전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1911년 남극점 정복에 도전한 두 탐험가의 사례를 즐겨 인용했다. 한 사람은 날씨가 나쁠 때도 좋을 때와 마찬가지로 탐험대를 이끌고 전진한 반면, 다른 사람은 맑은 날에는 대원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전진하다가 악천후가 찾아오면 웅크려 휴식을 취했다. 그 결과 첫 번째 탐험가는 남극점을 정복했지만, 두 번째는 귀환 도중 목숨을 잃었다. 진행과 휴식을 반복하는 것보단 조금씩 꾸준히 전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였다.

리바이스가 첫 번째 탐험가가 되길 원했던 버그는 “모기 날갯짓 소리도 들을 정도로” 강연을 열심히 들었다. 이 강연 내용을 기반으로 버그는 리바이스의 ‘20마일 행진’을 정의했다. 해답은 자명했다. 이익과 매출 양쪽을 매년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위대한 기업은 모두 그렇게 한다. 우리도 위대한 기업이 되고 싶다면 어떻게든 이 목표를 이뤄야 한다.” 하지만 버그의 ‘20마일 행진’은 사실상 이 목표가 설정되기 전에 이미 시작됐다. 취임 몇 주 후, 그는 전 세계 지사를 돌면서 최고위직 임원 60명과 각각 한 시간씩 면담을 가졌다. 버그는 이들에게 6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중 두 가지 질문인 ‘회사에 대해 바꾸고 싶은 점 세 가지는?’과 ‘새 CEO가 바꿨으면 하는 점 한 가지는?’에 대한 답이 의미심장했다. 첫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버그는 회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임원이 너무나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두 번째 질문을 통해선 최고 인재들이 성과 기반 보상 시스템을 원하고 있는데도, 고위직 임원들이 좋은 실적을 올릴 수 있게 해 주는 회사의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리바이스의 기업문화가 현실에 안주하려는 분위기를 낳은 것이었다. 버그는 이에 대응해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는 임원 11명 중 9명을 교체하는 등 경영진을 일신했다. 이때 여러 핵심 인사가 이뤄졌다. 가장 먼저 하르미트 싱 Harmit Singh을 CFO로 영입했다. 버그는 하얏트 호텔 CFO 출신인 싱을 “돌에서 피를 짜내 비용을 절감할 사람”이라 평가했다. 싱은 연간 1억 7,500만~2억 달러를 절감한다는 최종 목표 하에 긴축에 돌입했다. 유통과 제조를 제외한 기타 분야의 임직원 수를 20%(약 800명)가량 감축하려는 계획이 현재 진행 중이다. 또 공급망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리바이스에는 (쇼핑백이나 천 등)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의 대다수를 한꺼번에 구매해 비용을 낮추지 않고, 각 지역에서 개별 구매하는 관행이 있었다. 버그는 이에 제동을 걸었다. 리바이스는 2015년까지 제품 공급업체의 수를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신상품을 디자인하는 과정도 비효율적이고 비정상적인 절차를 따르고 있었다. 리바이스의 ‘혁신 센터’는 디자인팀이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9,600km 넘게 떨어진 터키의 코를루 Corlu에 위치해 있었다. 새로운 워싱 *역주: 청바지 공정 과정의 일종이나 디자인을 연구하려면 디자이너가 코를루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제품을 캘리포니아까지 보내야 했다. 운송 측면에서 (고비용의) 애로 사항이 발생하고 있었다. 버그는 “아마 디자인보다 소포 부치는 비용이 더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혁신 센터를 리바이스 본사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옮기고, 유레카 혁신 연구소(Eureka Innovation Lab)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버그와 디자인 팀 모두 이를 통해 협업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선결 과제는 마지막 차입매수로 발생한 부채를 줄이는 것이었다. 2011년 버그 취임 당시, 리바이스의 매출액은 48억 달러, 부채는 거의 20억 달러에 달했다. 2014년 2분기 현재 리바이스의 채무액은 5억 달러 이상 줄었고, 신용 등급도 2단계 상승했다.

비용구조가 개선된 후, 버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브랜드 관리로 관심을 돌렸다. 버버리 Burberry나 컨버스 Converse처럼 한동안 고전했던 브랜드들이 영광스러운 옛 역사를 홍보하면서 과거의 위상을 되찾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실 리바이스는 지난 30여 년간 청바지와 트러커 재킷의 창조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았다. 2009년 리바이스 마케팅 팀은 좀 더 어둡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위해 역사를 강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성실한 중장년층 이상 고객들은 이를 외면했다.

버그는 이들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1억 달러를 투입, ‘리바이스와 함께하는 삶(Live in Levi’s)’이라는 마케팅 활동을 시작했다. 목표는 리바이스가 상징하는 미국적 전통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버그는 “리바이스는 민주적인 브랜드”라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의 백만장자, 교사, 배관공, 카우보이, 광부 등 모든 사람이 입는다는 점이 바로 리바이스 브랜드의 핵심이다.” 이런저런 대책이 효과가 없다면, 무료 콘서트를 개최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 8월 리바이스는 한 음악 행사를 후원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이 2,000여 명이 얼터너티브 록 밴드 하임 HAIM과 슬레이 벨스 Sleigh Bells를 보기 위해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으로 브루클린에 모였다. 행인들의 눈에는 이 광경이 마치 ‘잃어버린 세대’의 재림으로 비쳤을 것이다. 리바이스 제품을 입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조금 거슬리는 감은 있었다.

일회성 행사와 별도로, 버그는 2012년 살로몬 스포츠 Salomon Sports의 북미담당 CEO였던 제임스 컬리를 영입했다. 리바이스의 브랜드 담당 사장이 된 컬리는 회사의 새로운 목표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제이시 J.C.라 불리길 선호한다. 희끗희끗한 머리는 언제나 잠에서 방금 깬 듯 부스스하다. 정돈되지 않은 멋을 풍기는 컬리는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아이디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지난 여름, 2주간 라스베이거스, 홍콩, 런던, 베를린, 뉴욕을 돌며 상점과 소비자들을 관찰했다. 현재는 전 세계 2,900개에 달하는 리바이스 매장 중 상당수를 대상으로, 501이 중심에 서는 새로운 매장 디자인의 도입을 총지휘하고 있다. 고객의 향수를 적절히 자극하면 리바이스가 다시 청바지 업계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매장에서 리바이스 브랜드를 재창조하는 이 작업의 핵심은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는) 청바지를 고르는 과정을 단순화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리바이스는 대다수 매장의 중심에 ‘데님 바 denim bar’를 만들었다. 바를 찾은 고객들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바지 형태, 스타일, 소재가 무엇인지, ‘청바지 바텐더’ 역할을 하는 직원과 함께 찾아볼 수 있다. 리바이스는 데님 바를 유통업체 매장에도 도입했는데, 현재까지의 결과는 성공적이다. 2013년 제이시 페니 J.C. Penney의 총 방문객 수는 줄어들었지만 백화점 내 리바이스 매장의 매출은 두 자릿수 상승을 기록했다. 버그는 데님 바가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미국 전역의 메이시스 Macy’s 백화점 내 매장에도 데님 바 도입을 진행 중이다.

또 리바이스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처럼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청바지 산업은 의외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재창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다. 유레카 연구소에선 30명으로 구성된 기술진이 손을 파랗게 물들이며 밤낮을 잊고 시제품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매주 약 30개의 시제품이 생산되며, 새로운 아이디어는 24시간 안에 제품 디자인으로 구현된다. 유레카 연구소가 배출한 신제품으로는 각종 친환경적인 포켓 티셔츠, 착용자의 신체 형태에 맞게 모양이 달라지는 최첨단 여성용 청바지 등이 있다. 지난 7월 유레카 기술진은 자전거로 통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금속 소재로 마무리한 청바지 시제품을 작업했다. 이 제품은 낮에는 일반 청바지와 똑같은 모습이지만, (자동차 전조등과 같은) 형광 램프의 불빛을 받으면 빛을 발해 착용자가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도록 해 준다. 한편 버그는 지속가능성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자신의 청바지를 지난 1년간 한 번도 빨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버그의 성공 징후가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2013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소폭이나마) 상승하고 주주가치가 10억 달러 이상 오르면서, 리바이스는 3년 만에 처음으로 ‘20마일 행진’의 목적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률은 2012년 7%에서 2013년 10%로 상승했다. VF의 10% 중반대 이익률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셈이다. 미국 소비자들이 리바이스에 대해 지닌 특별한 애정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인바이로셀 Envirosell을 창립한 소비자 행동 전문가 파코 언더힐 Paco Underhill은 “아무도 리바이스의 추락을 원치 않는다”며 “누구나 옷장 속에 추억이 담긴 리바이스 청바지를 한 벌쯤은 갖고 있다. 리바이스가 열정을 되살려 추억 속의 브랜드가 아닌, 사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로 탈바꿈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의 따뜻한 응원과 버그의 공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전략에도, 언더힐은 아직 리바이스가 진정한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바이스는 여전히 주요 패션 트렌드를 놓치고 있다. 버그는 여성용 청바지의 신축성 강화라는 트렌드를 놓친 게 지난 세 분기 판매 실적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인정했다.

버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버그는 리바이스 브랜드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소비자들도 리바이스와 그런 관계를 맺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버그의 집에서도 이러한 우려를 엿볼 수 있다. 아버지가 CEO에 취임했던 2011년 당시 각각 24세와 28세였던 버그의 두 아들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단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청바지 시장 전체는 느린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3년 미국의 청바지 총 매출은 겨우 2.6% 상승해 191억 달러를 기록했다.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는 2017년까지 단 1.2% 매출 성장에 그칠 것이라 예측했다. 메이시스의 회장 제프리 지네트 Jeffrey Gennette는 지난 9월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발표에서 “청바지 업계는 하강 국면”이라 말했다. 반면 바클레이즈 Barclays 의 예상에 따르면, 미국 스포츠 의류 시장-요가바지와 스판덱스 소재 상의 등을 포함한다-의 총 매출은 현재의 700억 달러에서 2020년에는 1,000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버그는 두 시장의 성장 예상치 간 차이에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있다. “요가바지는 두렵지 않다. 일시적인 유행은 언젠가는 사라질 테니까. 반면 청바지는 앞으로 다가올 141년 동안에도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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