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CHAL LEV-RAM
팰로 앨토 Palo Alto 시내의 필즈 커피 Philze Coffee 매장 밖으로 최신 유행과 기술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즉석 드립커피를 맛보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대부분은 팰런티어 테크놀로지 Palantir Technologies, 서베이몽키 SurveyMonkey, 몽고DB MongoDB-요즘 가장 뜨고 있는 3대 벤처기업-등 인근 IT 기업의 직원들이다. 하나같이 청바지, 티셔츠, 후드티를 입은 이 20~30대 무리는 미국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입구 우측 뒤편으론 ‘록스타 재능을 지닌 직원을 모집합니다’라는 공고가 보인다. 이곳은 다름아닌 실리콘밸리다. 여기서 근무하는 이들은 (필즈 커피의 바리스타까지) 보통 직장인들과 다르다. 이들은 ‘록스타’나 다름없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초임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무료 식사, 마사지, 이발 등 호화로운 특전까지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는 기업가의 꿈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벤처 창업을 통해 언제든 벼락 부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록스타같은 인재들을 끌어 당기는 것은 비단 돈과 특전만이 아니다. 이곳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혁신을 통해 쇼핑, 여행, 은행업무, 의료 서비스까지 전 세계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직업 안정성보다 젊은이들에게 더 어필하는 요소가 바로 이것이다. 벤처 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 Marc Andreessen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실리콘밸리는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일종의 정신상태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훌륭한 인재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펼친다. 이들은 베이 에어리어 Bay Area가 미국 최고 인재들이 모이는 메카로 자리매김하면서 상당한 득을 보고 있다.
한때 월가 입성을 꿈꾸던 하버드, 예일, 코넬 등 일류대학교 졸업생들이 최근 몇 년간 실리콘밸리로 모여들었다. 이런 추세는 점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좋은 예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졸업생들이다. 이들 중 기술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은 2012년 12%에서 2013년 18%로 상당히 많이 증가했다. 반면 졸업 후 금융분야로 진출하는 비율은 35%에서 27%로 감소했다. 최근 창립 10주년을 맞은 구글은 여전히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이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현재 구글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큰 상장 기업이다. 리서치기업 유니버섬 글로벌 Universum Global에 따르면, 공대생과 경영대생들은 모두 구글을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로 꼽고 있다.
구글과의 인재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골드만 삭스 Goldman Sachs 같은 일류 금융기업들이 초임과 인턴 보너스를 높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제조업, 운수업 같은 다른 업계도 젊은 인재를 확보할 방안을 찾고 있다. 디지털화와 글로벌화 등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선 ‘코딩 coding’ 같은 신기술은 물론, 창의성과 협업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재부족 현상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 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미 인구 조사국(the US Census Bureau)의 전망에 따르면, 2010년 13%에 불과했던 60세 이상 인구비율은 2030년 무렵에는 20% 이상이 된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인력컨설팅 기업 그레이트 플레이스 투 워크 Great Place to Work의 CEO 차이나 고먼 China Gorman은 “간단히 계산해봐도 베이비부머들의 빈 자리를 채울 인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될까? 시장환경 변화와 급변하는 기술 속에서 기업도 혁신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변화에 맞게 기술역량을 제고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젊은 직원들을 채용·유지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 이곤 젠더 Egon Zehnder의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스 아라오스 Claudio Fernandez-Araoz 수석 고문은 “훌륭한 인재를 확보해 키워내고, 그들에게 꾸준히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기업은 상당한 이점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젊은 세대를 유인하기 위해선 편한 소파보단 탁구대 같은 신선한 유인책이 필요하다(스톡옵션이 제공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경영진 투명성 제고 같은 기업 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현 직원들은 잠재적인 직원들과도 기업가치에 대해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내실 있는 인턴십 프로그램과 다른 채용 방식 외에도 기업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유능한 인재는 줄고 있지만 전반적인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경기예측 전문기업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Oxford Economics의 최근 글로벌 인재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다. 산업화 된 국가에 4,000만 명의 실직자가 존재하지만, 채용담당 이사나 매니저들은 빈 자리를 채울 적합한 인재를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고 푸념하고 있다.”
물론 실리콘밸리도 인재부족을 체감하고 있다. 기술기업 CEO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인재 확보라고 답할 것이다(일반적인 자격증이나 학위가 없는 개발자들은 물론, 여성과 소수인종에까지 문호를 개방하는 실리콘밸리의 채용 트렌드가 생겨난 원인이기도 하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기술업계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출생 올레리아 세튼 Aurelia Setton은 실리콘밸리에서 자주 언급되는 록스타급 인재 중 한 명이다. 그녀는 2002년 파리 명문 HEC 경영대학(HEC School of Management)을 졸업한 뒤 베이 에어리어에 입성했다. 세튼은 나파 밸리 Napa Valley *역주: 캘리포니아 나파 카운티에 위치한 대규모 와인 생산지 와인 업계에서 잠시 일한 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재학 중엔 애플에서 제품마케팅 인턴으로 일했다.
세튼(35)은 “애플에서 인턴을 한 이유는 미국 최고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당시 애플 CEO 스티브 잡스 Steve Jobs를 쿠퍼티노 Cupertino 애플 사옥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카리스마 넘치는 최고 경영자 잡스가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세튼은 10초 정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튼은 잡스에게 “나는 인턴으로 일하고 있고 곧 베이징 올림픽 캠페인 때문에 출장을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가 나를 보더니 ‘인턴을 중국에 보낸다는 말인가?’라고 놀라워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턴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긴 것에 대해 잡스가 어떻게 생각했던 간에 그와의 만남은 세튼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 세튼은 에너지 벤처기업에서 일하게 됐다. 그녀는 “에너지와 환경 분야가 매우 가치 있는 영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몇 년 후 세튼은 네트워크 사이트 링크트인 LinkedIn으로 이직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링크트인은 확고한 사명과 강력한 브랜드를 갖춘 기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세튼은 링크트인의 글로벌 세일즈 매니저로 1년 반 동안 일한 뒤, 팰로 앨토 기반 기업용 소프트웨어 제작업체 메달리아 Medallia의 수석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다양한 커리어에 대해 세튼은 “중요한 건 (기업의 비전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내 비전과 일치하는지 여부였다. 난 회사의 사명이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임무와 부합한다고 느꼈을 때 늘 이직을 해왔다”고 말했다.
세튼은 최근의 커리어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직업과 산업을 유연하게 바꾸는 일을 충성심 없는 행동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밀레니엄 세대를 두고 흔히 하는 불평이다). 하지만 몇 년마다 직업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능력은 새로운 기술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빠르게 변하는 기술주도적 글로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잡스는 몰랐겠지만 세튼이 베이징으로 파견된 이유는 그녀가 중국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튼의 전 직장 중 한 곳인 링크트인은 직원들이 평생 한 직장에서만 일하지 않는다는 점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기업이다. 링크트인은 이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링크트인-본사는 마운틴 뷰 Mountain View에 있다-의 엔지니어링 부문 책임자 케빈 스코트 Kevin Scott 선임 부사장은 면접 때 모든 지원자들에게 ‘퇴사 후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링크트인 공동 창업자이자 최근 발간된 ‘얼라이언스: 네트워크 시대의 인재 관리(The Alliance: Managing Talent in the Networked Age)’의 저자 리드 호프먼 Reid Hoffman 회장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성공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기업을 경험한 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이자 기업가인 벤 카스노카 Ben Casnocha는 “지금껏 대부분의 기업들은 ‘퇴사 후 계획과 같은 질문’을 꺼려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수한 인재들은 일생을 한 회사에만 바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적 측면이나 커리어적 측면에서 급변하는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건 세튼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직장을 선택할 때 해당 기업의 사명을 중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다수의 기술 기업들은 이 점을 일찍이 깨달았다. 아마도 창업자들이 지원자들만큼이나 젊고 열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구글의 이상적인 슬로건은 ‘사악해지지 말자’이다. 페이스북의 사명은 ‘더욱 연결되고 개방된 세상을 만들자’이다. 트위터는 ‘모든 사람들이 장벽 없이 아이디어와 정보를 창조·공유할 수 있게 하자’이다. 필즈 커피 마저도 ‘고객들의 더 나은 하루를 위해’라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컨설팅 기업 타워스 왓슨 Towers Watson의 글로벌 인재관리 책임자인 라빈 제수타산 Ravin Jesuthasan은 보험사를 대상으로 인재채용의 새로운 전략을 컨설팅하고 있다. 그는 최근 “보험사들의 인재모집 전략 중 하나는 리스크 관리가 현대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강조하는 것”이라며 “개인, 조직, 기업, 나아가 국가를 위해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하는지 적극 홍보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고객뿐 아니라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명이 있다면 젊은 직원을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술 및 보험분야 뿐만 아니라 전 분야가 그렇다. 홀푸드 마켓 Whole Foods Market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균 이상의 임금이나 스톡 옵션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의 비전은 단순한 식품도매 그 이상이다. 궁극적 목표는 고객, 직원 등 모든 사람과 기업 나아가 지구의 건강 및 행복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다’라는 설득력 있는 사훈도 큰 역할을 했다.
물론 구직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명을 가지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IT기업들은 캠퍼스와 취업설명회에서 경쟁적으로 신입사원을 모집한다. 스퀘어 Sqaure처럼 고등학생들을 채용하는 기업들도 점차 늘고 있다. 페이스북은 대학 입학을 앞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을 모집한다. 올해만 300명의 인턴을 채용한 링크트인은 고등학생도 하계 인턴십에 지원할 수 있게 해왔다. 에어비앤비 Airbnb의 경우 최연소 16세 인턴을 고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실리콘밸리의 인턴들은 코드를 작성하거나, 아이디어를 내거나. 제품을 제작하는 등 일반 직원과 다름없는 일을 해야 한다. 칼리노스키 Kalinowski 페이스 글로벌 채용 책임자는 “우리에게 인턴은 피같이 중요한 존재다. 실제 업무를 담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욱 개방되고 연결되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밖의 일부 기업들은 퇴역군인도 인턴십에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등 채용의 문을 더욱 활짝 열고 있다. 뉴욕 기반 솔루션 제공업체 인포 Infor의 CEO 찰스 필립스 Charles Phillips는 “올해 100명의 인턴을 채용할 계획인데, 그중 일부는 군인 출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학사학위가 없는 개발자나 디자이너들에게도 기회의 문이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해병대 출신인 필립스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 중에도 훌륭한 재원은 많다”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 기반 신생기업 길드 Gild의 비비안 밍 Vivienne Ming 부사장은 학사학위가 있는 지원자라도 입사 후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길드는 빅데이터 정보를 활용해 개발자들을 찾고, 필요한 기업에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채용에 필요한 ‘인력 분석 도구’를 판매하는 기술 기업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지원자 풀을 늘리기 위해선 프리랜서나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이들의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 때문에 산타클라라 Santa Clara에 본사를 둔 오래된 IT기업 인텔도 최근 창업을 하거나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는 직원들을 위해 다양한 근로제도를 시험하고 있다. IBM 스마트 워크포스 Smart Workforce 사업부(HR 분석 도구를 만든다) 자히르 라드하니 Zahir Ladhani 부사장은 “요즘 직원들은 10년 전과 달리 탄력적 근무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다양한 인재들을 채용하는 것만큼이나 채용한 인재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의 실리콘밸리 기업이 인턴이나 신규직원들을 대상으로 수주간에 걸쳐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페이스북은 엔지니어링 담당 신규직원을 대상으로 6주에 걸쳐 베이스 코드 base code, 기업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데이터 과학, 영업, 마케팅 등 직군에 따라 개별적인 신입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애플의 신입사원들은 2008년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사내연수원 애플 대학(Apple University)에서 ‘제품 디자인에 대한 애플식 접근법’ 같은 기업문화에 대해 배우고 있다. 애플은 최근 30억 달러에 헤드폰 제작사 비츠 Beats를 인수했는데, 비츠 직원들을 융합시킬 때도 같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모든 기업이 구글(또는 페이스북, 스퀘어, 트위터 등)의 방식을 따라할 순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인턴십, 연수프로그램, 유연한 채용 과정, 투명성 제고 등 ‘구글 방식’을 자사 사정에 맞게 조정해 차용한다면 훌륭한 인재를 찾는 일이 조금은 더 수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