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울트라씬 부문에서 두각 세계 신기록 14개 달성

시계 브랜드 이야기 피아제

피아제는 울트라씬(Ultra-Thin) 시계로 유명한 브랜드다. 지난해 3.65mm 두께의 세계에서 가장 얇은 핸드와인딩 시계 Altiplano 900P를 선보이며 피아제는 다시 한 번 울트라씬 시계 부문 최강자임을 확인했다. 피아제는 1874년 창립 이래 14번이나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피아제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손목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피아제는 2014년 기준 37개 자사 무브먼트를 보유 중인데 이 중 25개가 울트라씬 모델이다. 25개 울트라씬 무브먼트 중에서 14개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록을 세운 월드리코더다. 1960년 탄생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12P(2.3mm) 이래 지난해 ‘주얼 세팅 셀프와 인딩 스켈레톤 투르비용 무브먼트’ 신기록을 작성한 1270D(6mm)까지 피아제 울트라씬 혁신의 역사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피아제의 시작

피아제는 조르주 에두와르 피아제 Georges Edouard Piaget가 1874년 스위스 유라 Jura 지역 라 코토페 La Co^te-aux-Fe′es 지방에서 창업했다. 라 코토페는 산골짜기로 유명한 유라 내에서도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곳이다. 때문에 라 코토페는 겨울이 길었고, 주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11월부터 4월까지 시계 세공업 소일거리를 하며 긴 겨울을 보냈다.

1870년대 초, 진취적이었던 10대 소년 조르주 에두와르 피아제는 겨울 소일거리로만 하던 시계 세공업을 아예 전문 사업화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르주 에두와르 피아제가 19세가 되던 1874년, 마침내 그는 가족을 설득해 농장에 시계공방을 차리고 본격적인 시계 부품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사업이 차츰 커지자 그의 가족들도 시계공방에 합류했고 1880년대 들어 그의 사업은 패밀리 비즈니스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피아제 패밀리는 뛰어난 품질과 기술력으로 업계에서 명성이 대단했다. 사업 규모도 점점 커져 1890년대에는 가족농장을 떠나 라 코토페 중심가 예배당 1층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당시 피아제 패밀리의 시계 부품 제조 사업은 라 코토페 지역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패밀리에서 마을 공동체로, 또 지역 공동체로 피아제 사업장은 계속 규모를 키워나갔다.

피아제가 56살이 되던 1911년, 여러 명의 자식 중 티모시 피아제 Timoth′ee Piaget가 가업 승계의 적임자로 발탁돼 피아제 공방을 이어받았다. 티모시 피아제는 사업을 순탄히 이끌어 1920년대에 이르러선 바쉐론 콘스탄틴, 까르띠에, 오메가 등의 유명 브랜드에도 시계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매우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는 이들 브랜드에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피아제의 이름값도 훌쩍 뛰었다.

1931년 창립자인 조르주 에두와르 피아제가 66세의 나이로 작고했지만, 피아제 공방은 이미 티모시 피아제 체제로 완전히 전환한 뒤였기에 별다른 위기를 겪지는 않았다. 티모시 피아제는 많은 형제가 있었지만 피아제 공방의 경영권을 확실히 장악했고, 1943년에는 자신의 두 아들인 제랄드 피아제 G′erald Piaget와 발렌틴 피아제 Valentin Piaget에게 순조롭게 사업을 이양했다.

전성기를 누리다

제랄드 피아제와 발렌틴 피아제는 현재 ‘피아제’라는 시계 브랜드가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경영권을 물려받은 1943년 피아제라는 이름의 상표권을 처음으로 공식 등록했다. 또 1945년 작업장을 새로 지어 피아제가 완전한 시계 매뉴팩처로 거듭날 수 있게끔 했다. 시계 부품 제조에서 시계 제조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피아제는 시계 부품 제조사를 겸했던 만큼 부품 관련 노하우가 상당했다. 각 고객사의 주문에 맞추려다보니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이는 부품 제조 역량 향상으로 이어졌다. 발렌틴은 이런 피아제의 강점에 주목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작고 가벼운 부품으로 만들 수 있는 시계, 즉 울트라씬 시계 개발에 착수했다.

시계는 무브먼트를 케이스로 덮는 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울트라씬 시계의 핵심은 울트라씬 무브먼트 개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렌틴 피아제 역시 울트라씬 무브먼트 개발에 집중했다. 그는 1957년 2mm 두께의 초박형 핸드와인딩 무브먼트 9P를 개발해 첫 성과를 냈다. 이후 3년 만인 1960년에는 2.3mm 두께의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12P를 개발해 해당 부문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면서 워치메이커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된다.

같은 시기 제랄드 피아제는 시계의 미학적인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이때 그가 내놓은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가 1957년 선언한 ‘시계에 귀금속을!’이다. 제랄드 피아제는 1959년 스위스 제네바에 첫 번째 부티크를 오픈하면서 피아제를 두고 “시계 제조 장인이자 보석 세공 장인”이라 표현할 정도로 피아제에 주얼리 시계의 정체성을 투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피아제는 1960년대에 이르러선 제네바의 유명 귀금속 공방들을 차례로 인수하며 주얼리 워치 제조사로서의 역량을 더욱 키워나갔다. 1964년에는 오팔, 자수정, 산호 등의 하드 스톤을 다이얼 소재로 사용한 주얼리 워치를 출시하면서 ‘가장 독창적인 시계 제조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가족 경영 체제 아래 피아제가 가장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쿼츠 파동과 위기

1974년엔 스위스 뉘샤텔 Neuchatel 대학에서 시계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이브 피아제 Yves Piaget가 회사에 합류했다. 제랄드 피아제의 아들인 이브 피아제의 합류로 피아제는 4대째 경영을 맞이하게 됐다.

1970년대는 쿼츠 무브먼트의 득세에 스위스 기계식 시계 회사들이 굉장히 위축돼 있던 시기였다. 젊은 감각으로 기술 변화에 빠른 적응력을 보였던 이브 피아제는 합류 2년 만인 1976년 당대 최소 사이즈의 쿼츠 무브먼트 7P 개발에 앞장섬으로써 피아제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5년 후인 1981년에는 2mm 두께의 쿼츠 무브먼트 8P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피아제는 쿼츠 무브먼트에 있어서도 울트라씬 강자로 인정받았다.

1982년 제랄드와 발레틴의 완전한 은퇴로 이브 피아제는 오너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당시 피아제는 1970년대 쿼츠 파동기를 거치면서 상당히 쇠약해져 있었다. 이브 피아제는 쿼츠 무브먼트를 출시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장인들을 꾸려 운영하는 고급 시계 제조사가 이미 상당 부분 자동화 공정을 갖춘 쿼츠 시계 제조사와 경쟁하려니 애초에 수지타산이 맞질 않았다. 게다가 피아제는 라 코토페 지역의 운명 공동체나 다름없었던 까닭에 쉽사리 구조조정을 할 수도 없었다. 경영상 운신의 폭이 좁았던 셈이다.

1988년 피아제는 리치몬트그룹(당시 방돔그룹)에 인수되면서 패밀리 비즈니스에 종지부를 찍었다. 비슷한 시기 대형 그룹사에 편입된 다른 브랜드들처럼 이브 피아제 역시 회사 대표직을 유지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고급 기계식 시계 제조사 운영 경험을 리치몬트그룹에서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피아제의 두 심장

시계 부품 제조사로서 높은 역량을 지녔던 피아제는 덕분에 리치몬트그룹 내에서도 매우 중요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피아제가 리치몬트 산하 시계 브랜드에 우수한 품질의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그룹 전체의 브랜드가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피아제 역시 리치몬트그룹의 후광을 많이 봤다. 리치몬트의 거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2001년에는 제네바 외곽 플랑레와트 Plan-les-Ouates 지역에 제2의 매뉴팩처를 건립하면서 양적·질적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피아제는 2001년 이후 특히 울트라씬 시계 부문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게 됐는데 이는 상당 부문 플랑레와트 매뉴팩처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라 코토페 매뉴팩처가 무브먼트의 개발과 제조, 조립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플랑레와트는 보조 역할을 하며 이외의 모든 공정을 도맡았다. 라 코토페와 플랑레와트 두 매뉴팩처는 ‘피아제의 두 심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피아제는 2003년부터 새로운 울트라씬 기록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피아제는 2003년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기능을 장착한 ‘세계에서 가장 얇은’ 플라잉 투르비용 무브먼트인 600P(3.5mm)를 개발한 이후 지난해까지 세계에서 가장 얇은 핸드와인딩 시계 Altiplano 900P(3.65mm)를 포함해 총 13개의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울트라씬 세계 신기록을 보유한 피아제의 무브먼트 및 시계는 1960년 개발한 12P를 포함해 총 14개가 됐다. 이는 세계 시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피아제는 앞으로도 여기에 새로운 울트라씬 기록들을 더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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