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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을 배양하는 여자

CULTURED COUTURE<br>인공육류 제조기업의 연구실에서 섬유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패션 디자이너 수잔 리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인공육류제조기업 모던 메도우의 생물학 실험실로 필자를 안내했다.

패션 디자이너가 생물학 실험실에 무슨 볼일이 있겠나 싶겠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얼마 전 모던 메도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고, 그 실험실은 바로 그녀의 작업실이었다.


연구자들이 입는 흰색 가운을 입은 그녀에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이 무인인지 물었다. 그러자 수잔은 풍뎅이 세 마리로 장식된 자신의 팔찌를 가리키며 답했다.

“자연이야 말로 최고의 디자이너랍니다. 제 임무는 사람이 자연을 입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겁니다.”

신생기업인 모던 메도우는 현재 에이즈 백신 개발업체와 실험실을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실험실 전체가 완벽한 무균실로 운용된다. 이는 수잔의 연구에도 최적이었다.

필자를 안내하던 그녀의 발걸음은 37℃로 온도가 설정된 냉장고 크기의 인큐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그 속에서 소의 세포들이 분열과 결합을 반복하며 소가죽과 유사한 밀도의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쉽게 말해 소의 세포를 배양해 소가죽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상상해보세요.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고 투명한 가죽, 고무처럼 신축성이 탁월한 가죽을요. 혹은 카멜레온처럼 주변환경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섬유가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자연계에서 이런 놀라운 특성은 세포들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통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그리고 모던 메도우는 세포의 배양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소재의 강도와 질감, 중량, 유연성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수잔은 이를 기반으로 섬유와 패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의 창의성과 미생물학의 조우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런던 소재 예술대학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선임연구자로서 과학기술이 패션이 미친 영향을 조사하고 있던 수잔은 우연히 스코틀랜드 출신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헵워스 박사를 만나 생체소재의 개념을 접했다. 그리고 목화 같은 식물들은 물론 박테리아 같은 유기체도 섬유소재인 셀룰로오스를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패션실험을 함께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첫 실험대상은 녹차였다. 녹차에 설탕과 함께 홍차버섯차(kombucha)의 발효에 쓰이는 미생물과 효모를 넣었더니 미생물이 당분을 섭취하고 셀룰로오스를 배출, 그물 구조를 가진 매트 모양의 고밀도 나노 소재를 얻을 수 있었다.

“일반인에게는 젤라틴 덩어리로 보일수도 있지만 기존의 대다수 섬유보다 수십 배는 강했죠. 각자의 집에서 추가 배양한 뒤 건조시켰더니 단단해지면서 가죽과 비슷한 신소재가 만들어졌습니다.”

후속 연구를 통해 수잔은 이 소재의 식물성 염료 흡수력이 기존 섬유보다 뛰어나며, 마르지 않은 소재들을 서로 이어 놓으면 마치 칼로 베인 피부에 새살이 돋듯 이음새가 메워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예전엔 생물 소재로 옷을 만든다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 혼합물 액체 한통이면 옷이 한 벌 나옵니다. 게다가 저는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어요. 스스로 알아서 자라주니까요.”

현재 수잔은 이 신소재로 항공재킷, 바이커 재킷 등 여러 벌의 의상을 제작했다. 디자인은 기존 재킷과 유사하지만 매끄러운 반투명 옷감이 다소 생경한 느낌을 준다. 그녀가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종류의 재킷을 만든 것도 이 소재가 그리 이상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미생물 의복, 혹은 생체 섬유소재의 가능성에 눈을 뜬 사람은 수잔 만이 아니다. 미생물을 유전자 조작해 이른바 ‘거미 실크(spider silk)’를 생산하려 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볼트 스레드를 비롯해 다수의 기업들이 신 섬유소재 개발을 위해 분자생물학적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볼트 스레드의 댄 위드마이어 사장은 자연 소재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강조한다.


“이제 우리는 생명공학이라는 도구로 자연을 모방한 생체 소재를 개발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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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도전은 섬유 업계를 넘어 환경에도 큰 도움이 된다. 기존 섬유소재들은 천연과 인조를 막론하고 환경 유해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목화 재배에는 강력한 살충제가 쓰이고, 합성섬유는 석유가 핵심 원료다.

특히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약 13억㎡의 소가죽이 생산된다. 이를 위해 수백만 마리의 소가 희생되며, 이 소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물과 사료가 소모된다. 또한 소를 키우는 과정에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메탄가스가 다량 방출된다.

반면 수잔의 생체 섬유는 이러한 문제가 전혀 없다. 물도, 에너지도, 화학약품이나 염료도 훨씬 덜 사용한다. 섬유가 완성되고 남은 용액은 정원수로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다. 다만 수잔의 제품이 상용화되려면 고도의 공학적 난제를 해결함으로써 탄력성, 방수성 등 섬유가 가져야 할 필수적 기능성을 한층 강화했다.

그러던 2013년 재생의학 기술을 활용해 소의 세포로 인공 육류를 개발하던 모던 메도우의 안드라스 포르가츠 공동설립자가 그녀를 찾아와 신규 사업인 가죽 생산 부문을 이끌어달라고 요청했다. 수잔은 모던 메도우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홀로 외롭게 진행하던 실험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연구팀을 구성할 기회였죠.”

수잔은 더 우수한 성적을 갈구하는 운동선수들과 첨단 신소재를 찾아 헤매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바이오 섬유소재의 얼리어댑터가 될 것으로 본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생체 섬유가 제2의 피부처럼 인체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의류의 탄생을 이끌 수 있다고 예견한다.

“살아있는 세포로 만들어져 착용자의 죽은 세포를 먹어치움으로써 피부 청결을 유지해주는 의류, 스스로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흠집이 수선되는 의류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체온에 맞춰 조직구조를 변경, 단열성이나 통풍성을 강화하는 의류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봐요.”

이와 관련 작년 12월 미국 뉴욕의 마이크로소프트 사무소에서 ‘바이오 파브리케이트(Biofabricate)’가 개최됐다. 수잔이 조직한 바이오섬유 업체들의 컨퍼런스였다. 회의장 한편에 참가업체들을 위한 전시공간이 마련됐는데, 곰팡이로 만든 벽돌부터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로 염색한 천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도전이 성공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원천기술 단계를 넘어 상용성을 갖춘 생체 섬유 소재가 개발돼야 한다. 그래서 생체 섬유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의 조직공학자 오론 캐츠 박사도 그런 회의론자 중 한사람이다.

“실험실에서 직접 배양해본 결과, 생체 섬유소재가 친환경성과 지속가능성 문제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구기술은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기 보다는 감추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만 제 판단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현재 모던 메도우는 생체 가죽 연구의 진행상황에 대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가 브루클린의 실험실에서 확인한 것 역시 시험관 속에 떠 있던 신발끈 길이의 가죽끈 뿐이다. 그럼에도 수잔은 자신의 앞에 놓인 무수한 난관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생체섬유는 세상을 구할 수도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지닌 소재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결코 멈추지 않을 거예요.”

부엌에서 섬유 배양하는 법
홍차버섯차의 발효에 쓰이는 미생물을 이용하면 누구나 손쉽게 소가죽 느낌의 섬유를 배양할 수 있다. 물론 소의 세포는 전혀 필요 없다.






제작법:



1. 인큐베이터 용액 준비: 물 2ℓ를 끓인 뒤 녹차 티백을 15분간 담가둔다. 티백을 제거하고, 설탕을 넣어 완전히 용해시킨다.
2. 생체섬유 배양: 용액의 온도가 30℃ 이하로 낮아지면 사각형 고무대야 같은 용기에 옮겨 담는다. 사과식초와 홍차버섯 배양균을 넣고 천으로 용기를 덮는다.
3. 생체섬유 수확: 상온이 유지돼는 장소에 용기를 놓는다. 그러면 배양균이 바닥으로 가라앉은 다음, 발효가 되면서 거품이 일어나고 수면에 반투명 막이 보일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배양균이 수면으로 떠오르며 두터운 막이 형성된다. 3~4주일이 지나 막의 두께가 2㎝가량 되면 막을 꺼내서 차가운 비눗물로 씻는다.
4. 건조: 평평한 나무판에 막을 펼쳐놓고 건조시킨다. 완전 건조되면 일반 섬유처럼 자유롭게 재단, 재봉할 수 있다.

NOTE: 이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생체 가죽의 크기는 약 18×15㎝며, 모양은 용기의 모양에 의해 결정된다. 이보다 더 크거나 작은 가죽을 만들 때는 그에 맞춰 재료의 비율을 조절하면 된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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