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유니콘의 시대] 비상하는 상상의 동물

The Age of Unicorns

  •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생업체는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나 존재한다고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업체가 넘쳐나고 있다.
    By Erin Griffithand Dan Primack

  • 난해 가을, 자신의 신생업체를 위해 투자유치를 준비하던 스튜어트 버터필드 Stewart Butterfield 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10억 달러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샌프란시스코에 본사 를 둔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업체 슬랙 Slack에 대해 10억 달러의 가치평가를 받을 생각이었다. 당시 슬랙에는 현금이 부족하지 않았다. 로켓 달린 우주선처럼 성장하는 중이었다. 슬랙의 업 무용 협업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매주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었다. 버터필드는 10억 달러라는 상징적인 금액이 주는 명성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 버터필드(41)는 “물론 엄청난 금액이기 때문에 작위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며 “그러나 심리적인 차이가 있다. 10억 달러는 8억 달러보다 더 낫게 마련이다. 잠재고객 확보나 직원 영입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에 있어서도 심리적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 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슬랙은 1억 2,000만 달러로 투자유치를 마감한다고 발 표한 바 있다. 당시는 기업명과 똑같은 이름의 제품을 출시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슬랙의 가치평가는 얼마였을까? 정확히 10억 달러였다. 그렇 게 버터필드의 희망 사항은 현실이 되었다. 슬랙은 IT업계의 최신 ‘유니콘’이 될 수 있 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상장 신생업체에 대한 가치평가 10억 달러는 꿈 같은 이 야기였다. 구글도 상장 전까지 10억 달러의 가치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아마존은 물론 원조 닷컴기업 중에도 그런 업체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IT업계에 10억 달러 규모의 신생업체가 차고 넘친다. 2013년 카우보이 벤처 Cowboy Ventures의 설립자 에일 린 리 Aileen Lee가 테크크런치 TechCrunch의 블로그에 이런 업체를 지칭하며 처음으로 ‘유니콘’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2000년대에 벤처자금을 유치한 미국 소 프트웨어 신생업체 중 오직 39개만이 10억 달러의 가치평가를 받고 있었다. 포춘이 더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현재 벤처투자자로부터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평가를 받은 신생업체 수는 80개를 넘어선다. 이들이 비공개기업임을 고려한다면, 포춘의 조사 에 포착되지 않은 업체 수도 상당할 것임이 분명하다. 다수의 유니콘이 아무런 경고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면서 몇몇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야머 Yammer(12억 달러에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됐다)에 투자한 바 있는 이머전스 캐피털 파트너 Emergence Capital Partners의 벤처투자자 제이슨 그린 Jason Green은 “예전에는 유니콘이 신화에나 등장하는 존재였다”며 “그러나 이젠 거대한 무리가 됐다” 고 지적했다. 집단화된 그룹-유니콘 무리를 통칭해 ‘축복(Blessing)’이라고도 한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벤처투자자들은 이제 더 거대한 사냥감을 찾기 시작했다. 곧바로 가치평가 100억 달러를 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업체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린은 이런 업체를 “데카콘 decacorn *역주: 유니콘은 뿔이 하나, 데카콘은 뿔이 10개 있다 ”이라고 부른다. 2013년 말 이 기준을 충족했던 비공개업체는 딱 하나 있었다. 바로 페이스북이다. 이제 이 기준에 맞는 업체는 최소 8개에 이른다. 412억 달러의 가치평가를 받은 주문형 차량 서비스 우버 Uber도 여기에 포함된다. 현재 우버의 가치평가액은 최소한 포춘 500대 기업 70%의 시가총액보다 높은 상황이다.

    기술의 발전이 이런 현상을 선도하고 있다. 스마트폰, 저렴한 센서,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 등장하면서 예전에는 첨단기술과 가장 동떨어져 있던 산업에 수많은 인터넷 기반 서비스가 보급되고 있다. 우버는 택시 산업을 뒤흔들고 있고, 에어비앤비 Airbnb는 호텔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투자자들도 이러한 급변 속에서 큰 기회를 노리고 있다.

    금융권의 전반적인 경향도 일조하고 있다. 공개주식시장이 거의 6년 동안 활황세를 이어왔기 때문에 비공개기업의 가치평가에도 순풍이 불고 있다. 최근 IT 분야 창업가들은 원할 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기록적인 저금리 또한 몇몇 거대 기관투자가들을 부추기고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추구하는 벤처투자자들이 수익을 쫓아다니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규제도 느슨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잡스법(JOBS Act)이 통과된 2012년 이후, 신생업체들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실질적인 기업공개 압박이 시작되기 전 훨씬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인식도 한몫을 하고 있다. 신생업체 세계에서 가치평가 10억 달러는 남다른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유명세를 타서 곧바로 구글이 인수해주길 원하는 업체가 아니라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업 시작 2년 만에 20억 달러의 가치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주문형 식료품 배달 서비스 인스타카트 Instacart의 CEO 아푸르바 메타 Apoorva Mehta(28)는 “매우 중요한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절대적 신뢰와 능력을 얻게 된다”며 “인수합병이 아니라 지속적인 글로벌 브랜드구축이 목표임을 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벤처투자자들은 과거를 떠올리며 치솟는 가치평가 금액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닷컴붕괴 이후,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실리콘밸리를 뒤덮은 적이 있다. 투자자들은 가치평가를 계속 낮게 유지했고, 업체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피하려 했다. 이러한 전략은 페이스북이라는 강력한 태풍이 등장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소위 신중한 투자자들은 2억 5,000만 달러, 혹은 5억 달러라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이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투자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5월 페이스북이 시가총액 1,040억 달러로 기업공개에 성공하자, 큰 타격을 받고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신생업체가 몇 년 만에 수십억 달러의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수백만 달러에 불과한 진입가격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로펌 쿨리 Cooley LLP의 조사에 따르면, 그 결과 시리즈 에이 Series A 펀딩의 가치평가 중간값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135% 치솟았다. 이는 메아리 효과를 일으켜 뒤이은 펀딩의 기준을 높였다. 그 결과 벤처투자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파트너를 새로 영입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자금관리업체들을 끌어들여 유니콘 규모의 업체를 지원한 것이다. 최근 우버 투자를 이끌었던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Fidelity Investments나 도큐사인 DocuSign과 모더나 테라퓨틱스 Moderna Therapeutics를 지원한 웰링턴 매니지먼트 Wellington Management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를 ‘분수경제(Trickle-up Economics)’라 고 부른다.

    대차대조표에 기록적인 규 모의 현금을 쌓고 있는 미국 기업의 상황도 도움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3월 인스턴트 메시지 신생업체 왓츠앱 WhatsApp 인수에 190억 달러를 지출했다. 또 불과 1개월 뒤 20억 달러를 들여 가상현실 헤드셋 제조업체 오큘러스 브이알 Oculus VR을 인수하며 관심을 끌었다. 2014년 구글은 스마트 온도조절기 제조업체 네스트 Nest 인수에 32억 달러를 썼으며, 애플은 30억 달러를 들여 헤드폰 제조업체 비츠 Beats를 인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5억 달러에 마인크래프트 Minecraft를 개발한 스웨덴 신생 게임개발업체를 사들였다.

    보건의료분야 벤처투자업체들까지도 제넨텍 Genentech에 세라곤 파마수티컬 Seragon Pharmaceuticals을 매각하면서 17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이런 상황 모두가 거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번 경기 사이클을 겪어 본 사람들에겐 특히 더 그랬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투자에 임하고 있는 벤처 투자자 마크 앤드리슨 Marc Andreessen은 “현재 35세 이하이면서 2000년을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CEO라면, 자본시장의 몰락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을 경험한 사람은 이미 심리 적인 타격을 입어 지난 15년 동안 모든 리스크를 기피해왔다. 그런 상황을 겪 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높은 가치평가를 통한 자금 마련이 언제나 가능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생업체에 40년 이상 투자해 온 그레이코로프트 파트너스 Greycroft Partners의 설립자 앨런 파트리코프 Alan Patricof는 이를 경계한다. 그는 “사람들이 거래량과 매출 증가를 보고 투자하지만, 그건 ‘임금님은 벌거숭이 이론 (emperor has no clothes theory)’에 해당한다”며 “언젠가 모든 기업은 여러 가지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현재의 상장시장 분위기가 사라지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전망이 어두워진다면, 후회할 만한 재고를 떠안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니콘의 부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다르다고 믿 고 있다. 그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여러 신생업체에 실제 고객과 매출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과거 닷컴 시대의 업체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벤처투자업계에서 앞으론 절대 시장 불황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당수의 벤처투자자가 자신의 포트폴리오 업체에 주의를 주기 시작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업계 전체에서 한 차례 경고신호가 울렸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공개 거래되는 IT 주가는 지난 해 4월 중소기업 주를 중심으로 잠시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곧 신생업체들이 ‘경비지출 비율(Burn Rates)’을 스스로 통제하고, 향후 자금조달 가뭄에 대비해 새로운 자금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신호라 볼 수 있다. 신생업체들은 최소한 두 번째 부분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미 벤처캐피털협회(National Venture Capital Association)에 따르면, 미국에 본사를 둔 업체들의 2014년 4분기 벤처자금유치 규모는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인스타카트 같은 기업이 갑자기 막대한 투자를 유치한 이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준다. 회사는 2월 초 20억 달러의 가치평가를 받으며 1억 2,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신규 유치했다. 당시는 4억 달러 가치평가를 통해 4,400만 달러를 유치한 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핀터레스트 Pinterest의 경우, 2013년 2월부터 2014년 5월까지 3차례 펀딩을 통해 6억 2,500만 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가치평가는 25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로 2배나 커졌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투자를 유치한다고 해서 유니콘이 가치평가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린은 “매출이 0달러에서 5,000만 달러로 뛰는 건 5,000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로 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라며 “많은 업체가 그런 변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이 그렇다. 아마도 그들 중 절반은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돌파구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신생업체의 사례를 확인하려면 조본 Jawbone에 대한 기사를 확인하라).

    팹 Fab의 사례도 있다. 디자인에 주력하는 이 전자상거래 사이트는 2013년에 매출 2억 5,0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미리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1억 달러밖에 기록하지 못했다(매월 1,4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출한 시기도 있었다). 팹의 직원규모는 750명에서 150명으로 축소됐고, CEO 제이슨 골드버그 Jason Goldberg는 주요 사업을 맞춤형 가구 쪽으로 조정했다.

    팹은 10억 달러의 가치평가를 받으며 3억 3,6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골드버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팹의 가치평가가 실제론 8억 7,500만 달러를 넘겨본 적이 없다고 시인했다. 현재 팹이 그 수준의 가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고 2~3년이 지난 후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라고 확신한다면, 분명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시기라고 해도 신생사업 투자는 리스크가 크다. 유니콘의 시대가 순식간에 도래했던 만큼, 이 시대에 조성되었던 상황 또한 빠르게 반대로 흘러갈 수 있다. 신생업체와 투자자가 과거를 애석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버에서 이사를 맡고 있는 벤치마크 캐피털 Benchmark Capital의 파트너 빌걸리 Bill Gurley는 “올해 수많은 기업이 실패를 맛볼 것”이라며 “가치가 30 억달러에 달하는 공개기업이라면, 주식이 10억 달러로 떨어진다고 해도 옵션 발행을 통해 신규 직원 채용 등을 계속할 수 있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비공개기업이 유사한 상황에 놓이면 채용도 투자증액도 금세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생업체가 더 많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걸리는 “게임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며 “신생업체 분야에 몸담고 있으면서 경쟁자들이 높은 가치 평가를 통해 1억 5,000만 달러를 유치해 이를 영업에 쏟아 붓는 것을 보게 된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든가, 아니면 보수적인 결정으로 물러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몇몇 벤처투자업체가 실패를 예상하면서도투자를 계속하는 이유다. 성공한 몇 몇 유니콘 업체로부터 창출한 가치가 실패한 유니콘으로 인한 손실을 상쇄해줄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버터필드는 언젠가는 쉽게 벤처자금을 유치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유치한 투자금의 1%만을 지출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슬랙이 사업상의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은 운석과 지구가 충돌할 가능성만큼이나 적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절약은 명석한 전략이다. 분기가 지날 때마다 유니콘의 특권은 줄어들 것이다. 이 특권이 모두 사라지면, 버터필드는 완전히 새로운 환상을 좇을 것이다. 그건 바로 수익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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