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국의 유명 피자 체인인 도미노피자 Dominos Pizza가 큰 위기에 처한 일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도미노피자의 한 매장 조리실에서 직원 둘이 피자 재료를 던지거나 발로 짓밟는 등의 장난을 친 후 이 재료로 피자를 만드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것이었다. 문제의 동영상에는 이렇게 만든 피자를 심지어 고객에게 전달하는 장면까지 포함돼 충격을 던졌다. ▶
이 동영상은 이틀 만에 100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동영상을 본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해당 동영상의 댓글 칸과 도미노피자의 홈페이지에는 ‘ 저렇게 만든 음식을 우리가 먹었는가?’ 같은 불만의 글이 쇄도했다. 도미노피자의 매출이 급전 직하한 건 당연지사였다. 이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도미노피자 가맹점에 공통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일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패트릭 도일Patrick Doyle 도미노피자의 CEO가 직접 나서서 사건을 진화했다. 그는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를 2분짜리 영상으로 제작해 직접 유튜브에 올렸다. 사건이 벌어진지 3일 만의일이었다.
도일 CEO는 이 영상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직원 채용을 좀 더 신중하게 할 것이며, 기존 직원들에 대한 윤리교육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CEO의 이 같은 신속한 대응에 소비자들의 반응은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매출은 반등하지 못한 채 하락한 상태로 굳어져 갔다. 떠난 고객들이 되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 떨어진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일 CEO는 이 같은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극약 처방을 내렸다. 그는 피자 턴어라운드Pizza Turn Around라는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광고 캠페인은 소비자들이 도미노피자에 제기한 여러 불만을 여과 없이 보여줘 화제가 됐다. 당시 도미노피자가 TV에 방영한 자사 광고에는 ‘최악의 피자다’ ‘피자 도우가 마치 종이를 씹는 것 같다’ 등 도미노피자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내용까지도 포함됐다. 이런 불만들이 소개된 후 도일 CEO가 등장해 “변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There comes a time when you know you’ve got to make a change)”라는 말로 도미노피자의 진심 어린 각오를 전했다.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었던 탓에 이 광고 캠페인의 시행 여부를 놓고 도미노피자 내부에서 엄청난 반대가 나왔다. 그러나 도일 CEO는 ‘ 이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며 반대론자들을 설득해 광고 캠페인을 강행했다. 도미노피자의 여러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고 반드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해에 가까운 이 광고 캠페인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도미노피자의 직원들은 자율적으로 결집해 회사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도미노피자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또 회사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경영진이 보여준 진정성과 직원들의 합심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고, 이런 노력이 계속된 결과 도미노피자의 매출도 반등에 성공할 수 있었다.
도미노피자의 사례는 회사의 경영방침이나 제품 개선에 고객의 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경영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유용하다. 특히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탁월한 면모를 보인다. 쵸바니Chobani의 성공이 좋은 예이다.
쵸바니는 2007년 미국 요구르트 시장에 뛰어들었다. 쵸바니 요구르트는 현재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쵸바니 요구르트의 전체 시장점유율은 15% 정도로 미국 요구르트 시장에서 요플레 Yoplait와 다논Danone 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요플레나 다논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테디셀러 요구르트 제품들이다. 이들 제품에 비하면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쵸바니 요구르트가 불과 몇 년 만에 이들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놀랄 말한 일이다.
쵸바니의 창업자이자 아직도 CEO 직함을 갖고 있는 함디 울루카야 Hamdi Ulukaya는 소비자 의견을 가장 중요시하는 경영활동으로 유명하다. 그는 소비자 의견을 중간 필터링 없이 모두 직접 확인한다.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소비자 의견이 그의 휴대폰에 바로 전송되도록 만든 특별한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울루카야 CEO는 상당수의 소비자 의견에 자신이 직접 답을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합리적인 불만 사항을 지적한 소비자를 특채하기도 했다. 그는 “불만사항이 들어왔다면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좋은 기회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덕분에 쵸바니 요구르트는 2010년 이후 매년 100%가 넘는 매출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요플레나 다논을 제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카드가 단연 돋보인다. 현대카드 본사 로비에 위치한 카페 벽면에는 여러 개의 컴퓨터 스크린이 붙어있다. 이 스크린은 고객의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홈페이지와 콜센터에 접수된 고객의 요구 사항과 불만을 직원들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스크린 벽은 고객의 생각을 회사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여 직원들이 직접 문제를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을 직접 담당하는 부서가 아니면 고객들이 어떤 니즈와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카드에선 이 스크린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 직원 모두가 스크린 벽에 올라오는 고객의 니즈와 불만을 사전에 알아채지 못한 것을 통곡하며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필자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스크린에 올라오는 실시간 불만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온건한 내용의 건의사항도 있었지만, 때로는 욕설로 가득 찬 불만도 있었다. 현대카드는 고객의 의견을 가감하지 않고 모두 있는 그대로 올리고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현대카드는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현대카드가 최근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도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본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 대다수 기업은 고객들의 불만이나 서비스 개선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혹여나 그런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라도 하면 쉬쉬하며 지워버리기에 바쁘다. 이런 모습을 보다 보면 ‘ 문제가 되는 내용을 다른 고객들은 물론 회사 상사들에게도 알리지 않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종종 든다. 고객 불만이나 서비스 개선 요청을 ‘실패’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들 내용을 인지하고 공론화하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앞의 기업들처럼 이런 과정이 기업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잘못된 것이 있는데도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잘못된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 한다면 사태는 더 악화할 뿐이다. 이번엔 숨기고 넘어가더라도 다음에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남긴 ‘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한다면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내가 속한 조직은 고객의 소리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CEO나 관리자라면 고객 외에 조직원들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자. 조직원들의 생각도 고객의 소리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적절한 대응과 대처를 하는 것이 기업이나 나 자신의 발전에도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