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면세점 대전에서 가장 주목받은 사건 중 하나는 삼성가(家)와 현대가의 결합으로 상징되는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의 합작법인 HDC신라면세점의 출범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두 기업은 왜 같은 삼성가의 신세계그룹, 같은 현대가의 현대백화점그룹을 놔두고 이런 이질적인 결합을 선택했을까?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HDC신라면세점의 출범이 논의 되기 시작한 건 올해 3월 초의 일이라는 게 정설이다. 2월 관세청의 시내면세점 특허 신청 공고 이후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발 빠르게 파트너 기업을 물색하고 다녔다.
10조 원대 규모로 성장한 면세점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현대산업개발은 실력 있는 파트너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면세점 운영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관세청은 시내면세점 특허 신청 공고 때부터 면세점 경영 능력과 관리 역량을 유독 강조해왔다. 이후 나온 배점표에서도 두 항목의 점수가 각각 250점, 300점으로 나타나 전체 점수 (1,000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현대산업개발 단독으로 입찰해선 시내면세점 입찰을 받을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던 상황이었다.
업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몽규 회장은 워커힐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SK네트웍스에 먼저 오퍼를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단독 입찰을 준비했던 SK네트웍스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합작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현대산업개발의 눈에 띈 곳이 호텔신라였다. 호텔신라는 어떤 면에선 SK네트웍스보다 더 궁합이 잘 맞는 상대였다. 호텔신라는 면세점 운영 능력은 탁월했지만 독과점 논란과 부지 선정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이는 현대산업개발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였다.
정몽규 회장은 이 같은 판단 아래 바로 호텔신라에 제안서를 보냈다. 이때가 3월 초의 일이었다. 호텔신라로서도 현대산업개발의 제안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 결과 3월 말 이부진 신라호텔 대표이사 사장과 정몽규 회장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일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두 사람이 만난지 2주 만인 4월 12일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합작법인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시장에선 왜 호텔신라가 범삼성 계열인 신세계그룹을 놔두고 현대산업개발과 손잡았는지, 또 왜 현대산업개발은 같은 현대가인 현대백화점그룹을 놔두고 호텔신라와 손잡았는지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둘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계산해 보고선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기업가들 사이의 비즈니스였다. 호텔신라는 현대산업개발의 용산 부지를, 현대산업개발은 호텔신라의 운영 노하우를 얻은 것만 해도 두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말한다. “혈육 관계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 관한 한 둘 다 프로들인데 당연히 시너지 효과를 더 고려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호텔신라의 소프트웨어와 현대산업개발의 하드웨어가 결합함으로써 신규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결합 목적에 부합한 거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전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시장관계자는 말한다. “사업적인 목적의 협업이었다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합작사의 키를 쥔 호텔신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신세계가 면세 사업을 하고 있다곤 하지만 영세한 규모이고, 또 신규 면세점 입지를 명동에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바로 근처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면세점과의 경쟁도 껄끄러웠을 겁니다. 합작 제의도 없었지만 있었다고 해도 같이하기는 어려웠다는 얘기죠. 오너가 사촌지간이라고 해도 기업 내용이나 성격이 전혀 다른 회사이고요. 또 사실 신세계가 삼성과 교류가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잖아요.”
다른 시장관계자는 말한다. "현대산업개발은 분명 파트너가 필요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대백화점그룹을 파트너 물망에 올려놓지는 않았을 겁니다. 현대산업개발이 가장 부족한 부분이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다는 거였는데, 이건 현대백화점그룹도 마찬가지였거든요. 현대백화점그룹이 유통업계 강자이긴 해도 면세업은 엄연히 다른 사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