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지난 70년간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과학기술 대표 성과 70선’을 선정, 발표했다. 1950년대 참치잡이 기술부터 2010년대 우주발사체 나로호에 이르기까지 국력신장의 디딤돌 역할을 한 70가지 기술의 파노라마를 들여다본다. 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벌건 민둥산이 흔했다. 한국전쟁의 포화로 전 국토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대 농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육종학자 현신규 박사는 미국이 원산지인 리기다 소나무와 테다 소나무의 교잡을 통해 리기테다 소나무라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했다. 리기테다 소나무는 해충과 추위에 강한 데다 재질이 우수해 미국에서 ‘기적의 나무’라는 극찬을 받았다. 현신규 박사는 나아가 은백양나무와 수원사시나무를 교잡해 은수원사시나무라는 품종을 개발한다. 이 나무는 매우 빠르게 자라 산림 녹화와 목재 자원 확보에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산림의 성쇠가 국력의 성쇠와 비례한다”는 산림국부론의 신념을 가졌던 현신규 박사의 두 걸작 나무 덕분에 국토의 60%가 넘는 산이 푸른 산림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 중에서 네 번째로 숲이 많은 나라다.
1960년대 공업화 기초기술 확보 우리나라는 1960년대 들어 서서히 공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시멘트 소성 기술, 나일론 생산 기술, 화약 제조 기술 등이 개발된다. 또 국내 최초의 라디오, 국내 최초의 원자로도 이때 탄생했다.
산업화 초창기 시절 나일론 생산 기술 확보는 큰 의미가 있었다. 우선 국민 의생활과 산업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수 많은 고용을 창출했다. 나아가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외화 획득의 최일선을 담당했다.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당시 코오롱 전무로서 한국 최초 나일론 원사 생산공장 건립에 앞장섰고 공장 건설을 위한 차관 도입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60년에는 국산 라디오가 처음 선을 보였다. 당시 금성사(현 LG전자)가 국내 최초로 출시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외국산 라디오의 20분의 1 가격에 판매되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중매체로 단숨에 부상했다. 특히 금성사의 라디오 개발은 한국 전자산업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한국화약(한화그룹의 모기업)이 화약 제조 기술을 확보하고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성공한 것도 1960년대의 주요 과학기술 성과로 꼽힌다. 다이너마이트는 도로 공사, 터널 공사 등 각종 토목 공사에서 발파 작업을 위한 필수품이다. 한국화약의 다이너마이트는 수많은 국토 개발 공사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한 윤활유 역할을 했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 국산차 탄생1970년 7월 준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가속화하는 혈맥 구실을 했다. 경부고속도로는 수도권과 영남권 공업지역, 인천항과 부산항의 양대 수출입항을 연결하는 국가 대동맥으로서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탈바꿈시켰다.
1974년 현대자동차는 국내 최초의 고유 국산차 모델인 포니를 개발했다. 포니 개발로 한국 자동차 산업은 기술 자립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포니 이전만 해도 국내 자동차 생산 기술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였다. 하지만 포니 개발을 통해 자동차 설계 및 생산 기술의 자립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한국은 포니 개발로 고유 자동차 모델을 보유한 세계 16번째 국가가 됐다. 나아가 오늘날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다졌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식량난에 허덕였다. 하지만 국립식량과학원이 10여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개발한 통일벼는 일거에 우리나라를 보릿고개에서 해방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다수확 쌀 품종인 통일벼 개발로 우리나라는 1977년 ha당 쌀생산량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는 동시에 식량 자급자족이라는 숙원을 풀게 됐다. 통일벼 개발 성공에 즈음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녹색혁명 성취’라는 휘호를 남겼고, 통일벼 기념탑도 세워졌다.
1980년대 전자 · 통신산업 발전 가속 1980년대에는 전자 및 통신 분야에서 큰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과로 D램 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꼽을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주관하고 주요 전자업체들이 참여한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 사업은 투입 인력만 2000여명이 넘는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1986년 마침내 4메가 D램 개발에 성공을 거뒀다. 이후 16메가 D램, 64메가 D램을 잇달아 개발하며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1985년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에 성공한 전(全)전자식교환기(TDX)는 우리나라 통신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업적이었다. 당시 TDX-1 상용화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0번째로 디지털 전화교환기 자체 개발 및 생산국이 됐다. 또한 막대한 수입대체 효과와 함께 만성적인 전화 적체 현상을 해소함으로써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계식 교환기와 아날로그 교환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디지털 교환기를 개발한 유일한 국가로 기록됐다.
1980년대에는 의학 분야에서도 큰 업적이 탄생했다. 의사이자 바이러스 학자인 이호왕 박사가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균인 ‘한탄 바이러스’를 발견한 데 이어 예방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유행성 출혈열은 선진국에서도 오랜 연구를 했지만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감염병이었다. 한탄바이러스 백신 개발로 당시 매년 전 세계적으로 1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그중 7%가 사망하는 무서운 감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
1990년대 CDMA·한국형 원전 개발 1990년대는 개인용 휴대전화 보급이 확산되기 시작한 시대다. 우리나라는 이동통신 수요 증가에 맞춰 독자적 방식의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기술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시스템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방식보다 통화 품질 및 용량이 더 우수한 CDMA 방식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로 주목받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이동통신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구축했다.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해 1970년대 원자력 발전을 도입했다. 1978년 가동에 들어간 고리 원전 1호기가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다. 하지만 독자적인 원전 기술 확보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1984년 원전 기술 자립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고 안전성을 향상시킨 원자로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 마침내 한국 표준형 원전 설계기술 확보에 성공했다. 기술 자립도는 95%에 달했다. 현재 한국 표준형 원전은 저렴한 양질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국내 에너지 수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국산 원자로 모델 확보로 해외 원전 시장 진출의 기반도 마련했다.
1990년대는 우주 과학기술 개발 노력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첫 번째 신호탄은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개발이었다. 우리나라는 1992년, 1993년, 1999년 잇달아 우리별 1, 2, 3호를 개발했다. 우리별 1호는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효시로 기록됐다. 또 우리별 1, 2호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로 탄생시킨 우리별 3호는 선진국과 대등한 기술 사양을 자랑했다. 우리나라는 우리별 시리즈 개발을 통해 소형위성 개발을 위한 전체 설계기술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위성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 우주·항공산업서 큰 이정표 G생명과학은 2003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았다. 그 신약은 호흡기 질환자들에게 사용되는 팩티브(Factive)라는 이름의 항균제였다. 팩티브는 100여년의 국내 제약 역사상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한 글로벌 신약으로서, 선진국이 주도하던 신약 개발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전기를 마련해줬다. 아울러 한국 바이오 산업의 가능성과 자신감을 고취시킨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 항공산업에서도 큰 이정표를 만들었다.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T-50은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위한 훈련기다. 우리나라는 T-50 개발 성공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나라가 됐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이라크, 필리핀 등 여러 국가에 T-50을 수출함으로써 세계 6번째 초음속 항공기 수출국 기록을 남겼다.
2000년대에는 로봇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가 탄생했다.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가 개발한 인간형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가 그 대표작이다. 오준호 교수 연구팀은 이족(二足) 보행 로봇에 필수적인 구동모듈과 센서를 자체 개발했고, 보행 알고리즘과 각종 자세 안정 제어 기술도 개발했다. 우리나라는 휴보 개발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휴머노이드 로봇 설계 기술을 확보했다. 아울러 로봇 분야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위상을 갖게 됐다.
2013년 1월 30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우주발사체 나로호가 굉음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았다. 나로호는 소형 인공위성을 지구 상공 저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다. 나로호 발사는 두 차례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세 번째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마침내 세계 11번째로 스페이스클럽 (Space Club)에 이름을 올렸다. 스페이스클럽은 자국의 발사장에서 자국의 발사체로 자국의 위성을 쏘아 올린 국가를 뜻한다. 우리나라는 나로호 개발을 통해 국내 발사체 기술 수준을 선진국 대비 83%까지 끌어올리면서 발사체 독자 개발을 위한 기반 확보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