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 칼럼] 그 많던 '위대한 탈출'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디턴·피케티'는 대립 아닌 보완… 성찰·탐구 뒷전, 진영논리 판쳐

한국 '위대한 탈출' 지속 가능할까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면 경제신문의 야근당직자들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밤늦게 발표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둔 긴장은 유독 심하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오후11시께 나오는 첫 발표를 접하자마자 번갯불에 콩 볶듯 외신을 해석하고 국내 관련학자들과 인터뷰를 따내야 마감 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다.

그래도 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기사 처리는 여느 해보다 쉬웠을 것 같다. 수상자가 익히 알려진 분 아니던가. 스코틀랜드 출생의 미국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 지난해 9월 번역본이 출간된 '위대한 탈출'의 저자다. 디턴이 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접한 순간 단상 하나가 스쳤다. '그 많던 위대한 탈출은 어디쯤 있을까'라는 생각은 아직도 머리를 맴돈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첫째는 수급. 중고서점을 자주 찾는 편인데 중고책 시장의 수급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공급이 많고 가격과 소장가치가 떨어지는 대표적인 사례가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펴내는 자서전이다. '정치인 자서전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나 다름없다'던 한 중고서점주의 말이 떠오른다.

물론 좋은 책이 중고시장에 쏟아지는 경우도 가끔 일어난다. 출판사가 '베스트 셀러'라는 성적을 의식해 매집하거나 특정한 목적 아래 특정 도서를 대거 매입해 뿌릴 때 양서가 중고시장에 대량 유입되는 경우가 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디턴의 '위대한 탈출'도 지난해 가을 중고시장에서 차고 넘쳤다. 대부분 '증정'이라는 고무인이 찍힌 '위대한 탈출'이 어떤 이유와 경로를 통해 중고시장에 왔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빈부 격차 심화를 경고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신드롬이 확산되는 데 대한 부담과 반작용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시장의 반응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발표 이후 중고시장에 깔렸던 그 많은 책의 재고가 급격히 줄고 가격도 올랐다. 당연한 현상이다. 세계적 학자의 화제작을 접하고 싶은 지식 욕구의 합계가 수요를 낳았으니 수급이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은 남는다.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쏠리고 금방 달아올랐다 바로 식어버리는 냄비 근성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미래 행방에 대한 것이다. 디턴은 지난 250여년간 선진국뿐 아니라 오늘날 거대 중국과 인도 역시 '위대한 탈출'의 여정을 걷고 있다고 강조했건만 한국도 현재 진행형에 포함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한국이 보기 드문 고성장을 이룩한 점은 사실이나 성장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민 개개인으로 시각을 돌려보자. '무에서 유'를 이룬 한국의 노년 세대는 분명히 '위대한 탈출'의 수많은 주인공들이다. 영광스러운 탈출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치자. 그 후손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가 지나온 기회를 만날 수 있을까.

올해 노벨 경제학상이 발표된 후 세상의 관심사는 '앵거스 디턴 대 토마 피케티', 즉 '성장과 분배' 일변도로 고착되는 것 같다. 수긍이 가는 측면이 적지 않다. 분명히 경제성장 초반에는 성장과 불평등이 동반해서 나타난다는 '쿠즈네츠 가설'에 대해 두 학자의 견해는 달라 보인다. 정작 중요한 것은 두 학자의 차이가 아니라 누구의 어느 이론이든 우리 경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해외의 유명 경제학자들이 주는 교훈을 제대로 찾아내려면 정확하게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두 학자를 대척점이 아니라 보완적 관계로 풀이한다. 디턴은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이며 최저임금상승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성찰과 탐구는 제쳐 둔 채 진영 논리로만 현대 경제학의 흐름을 해석하고 도서 구입에서도 쏠림과 냄비 현상이 지속되는 와중에서도 한국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 선대로부터 넘겨받은 '위대한 탈출'의 바통을 후대에게 물려주기는커녕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꽃잎과 낙엽이 지는 가을날 한탄의 운율을 섞어 아니 물을 수 없다. 그 많던 '위대한 탈출'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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