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22> ‘무림고수’ 상사에게 배우고 싶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직도 회사에서 직원의 ‘인사 배치’를 부서장 자신의 자존심 문제로 여기는 리더가 있다니. 얼마 전 필자의 지인 K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한 금융지주사의 연구소에 근무하는 K는 최근 신흥 시장을 연구하는 팀으로 옮기게 됐다. 영어와 중국어·일본어 구사력을 겸한데다 시장 분석 능력까지 탁월한 K가 신흥 시장팀에 꼭 필요했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그런데 웬걸,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다른 부서로 떠나야 하는 지인을 상사가 좀처럼 ‘쿨’하게 놔주지 않았다는 거다. 꼭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며 굳이 마지막까지 잔업을 시키고, 전보 전에 필요한 다양한 절차를 미루면서 ‘꼭 보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는 태평한 말만 늘어놓았단다. 직장의 동료들은 여기저기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실장의 ‘꼰대짓’이 또 시작됐다고 말이다. 팀 내에서 동정론도 확산됐다. “재수 없이 걸려든 K가 짐을 싸서 다른 부서로 옮겨가는 그날까지 실장의 감정을 받아주는 일종의 ‘정서적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가 됐다”고.

우리나라 기업들을 보면 아직도 부하직원의 행동을 좌지우지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이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찌질한 ‘갑’이 너무도 많다. 바로 그런 후진적 문화가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협요인이라고 일갈한 어느 경제학자의 주장을 그냥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그의 주장처럼 우리 경제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경제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채 운신하지 못하는 처지가 아니라 직장 내 찌질한 상사들의 횡포일 수도 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후배나 동료가 더 잘하게끔 격려해 주고, 이끌어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발 밑에서 예측된 범위에서 움직이며 ‘영을 받드는’ 존재로 살기나 바라고 있으니 조직의 발전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스스로 힘을 행사하는 상사든 부하든 특정 행위의 원천이 기쁨과 보람 보다는 ‘울분’에서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이 기대했던 것에 비해 훨씬 못미치게 대접받고 있다는 서운한 감정, 치열한 승진 레이스 한복판에서 유독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 등이 상사를 ‘꼰대’로 돌변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등감은 대상과 방향을 모를 분노로 치환되고, 때에 따라서는 부하 직원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모습으로 비화되곤 한다. 어쩌면 K의 상사도 조직에서 근무해 왔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숱한 분노와 슬픔에 시달렸던 인물일지 모른다. 사람은 상처 입은 만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는 것은 절대 법칙인가. 만약 그렇다면 세상은 온통 난장판이 되고 말 텐데 참으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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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직원은 그런 꼰대 상사가 어떤 심리적 이유로 자기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당장 내 앞길을 막는 윗사람에 대해 분노가 쌓여갈 뿐이다. 그러니 “더는 더러운 꼴 못 보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이직하는 직원을 참을성이 없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K가 피해를 당한 경우처럼 개인적인 울분에 사로잡혀 조직의 발전을 저해하는 상사야말로 맑은 연못을 흙탕물로 망치는 미꾸라지다.

물론 도를 넘은 부하직원의 행태도 종종 목격되긴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인이 당했던 부당한 대우를 퍼뜨리면서 탐탁지 않은 상사에게 ‘빅엿’을 먹이는 직원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천박한 분풀이식 묘사에 인신공격적 실명공개는 자충수일 뿐이다. 글 쓴 사람에게 손가락질이 돌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정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정정당당하게 바로잡을 방법을 찾아라. 무차별적인 신상공개는 필시 비난하는 자와 비난받는 자를 모두 망치는 결과를 낳고야 만다. 직장 내에서 상사와 직원 간 진흙탕 싸움이 불거지면 둘 다 불명예 퇴직의 멍에를 짊어질 공산이 큰 것은 물론이다.

혹시 당신은 부하직원이 겪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담아낸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라고 추억에 젖는 리더인가. 그렇다면 하수다. 진짜 고수는 우리 조직이 그런 병폐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전심전력으로 해법을 찾는 리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눈빛만으로 주변을 파악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진 무림고수 같은 상사에게 배우고 싶은 법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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