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하얀 분말이 쏟아진다. 소복이 쌓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밀가루지만 얕잡아보면 큰일. 최루 분말의 따끔함과 메스꺼움에 눈물·콧물 범벅은 어쩔 수 없다.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탄아 탄아 최루탄아/정의의 광장을 넘보지 마라/주책없이 터지는 최루탄 속에/민족의 영혼은 통곡한다'는 노래까지 등장했을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 최루탄은 우리나라 대학생이면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산고(産苦)와도 같았다.
최루탄을 처음 만든 곳은 영국이지만 그로 인해 가장 유명해진 곳은 우리나라다. 우리나라에 최루탄이 처음 들어온 때는 1958년. 1960년 3·15정·부통령 선거에 대비한 시위 진압용이었지만 명목은 '북한 간첩이 민심을 선동하고 폭동을 야기할 우려'로 포장됐다. 이후 최루탄은 시위현장이면 어김없이 등장했고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에는 무려 60만발 넘게 사용돼 외국인에게 '한국=최루탄 공화국'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1993년에는 미국 의회 청문회가 한국의 최루탄 사용과 관련된 조사보고서를 제출할 정도였다.
용도를 확장한 것도 우리나라다. 최루액을 넣은 물대포가 등장하는가 하면 사용이 금지된 후에는 세계로 발을 넓혀 2013년부터 올 8월까지 약 500만발을 터키와 바레인 등에 수출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급기야 국회에도 진출해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며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만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유격전'에 비유할 정도였다.
코소보의 한 야당의원이 정부의 세르비아와의 합의 내용에 반발해 의회에서 회의 도중 최루탄을 던졌다고 한다. 코소보 의회에서 최루탄이 터진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지난해에는 인도에서 하원의원이 집권당의 선거구 확대에 반대해 최루탄을 터뜨린 적도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배워간 것이 아닐까. 우리 국회의원들이 '수출 역군'이라니. 씁쓸하다.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