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연쇄살인을 저지른 강력범죄자들은 범행 진술과정에서 한결같이 자신은 '사회적 약자'였다고 강변한다. 학교폭력이나 이른바 갑질 행위들도 과거를 따져 살펴보면 어김없이 가해자가 다른 강자로부터 입은 상처·피해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강자·약자는 극히 상대적인 셈이다. 그래서 표창원(49·사진) 범죄과학연구소장은 우리가 언제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성남시가 마련한 '행복아카데미' 강연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배려하고 이를 관습·문화로 정착시키지 않으면 약자가 강자가 되고 또 다른 약자에 해를 끼치는 불행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13년간 경찰대 행정학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대표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로 활동한 표 소장은 수많은 강력범죄자들의 대면조사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범죄자들은 자신이 가장 억울하고 사회에서 공평한 기회를 받지 못했다고 여긴다는 것. 이 같은 심리는 불안·불행으로 이어지고 피해의식으로 발전한다. 표 소장은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도 다수를 위해 자신이 희생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깔려 있고 이것이 사회적 약자에 비해 안전한 강자의 위치에 오르도록 하는 강박감으로 작용한다"며 "자녀에게 억지로 공부시키고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겨냥한 일부 갑질들이 나타나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폭력·따돌림이나 아동학대·갑질의 원인을 범죄심리학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는 "대게 가해자들은 평소 분노에 차있으며 자신이 '약자'임이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심리상 강자로 위장해 약자를 괴롭히는 행태를 보인다"며 "어릴 때 가해자로부터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학습효과 때문이거나 합리적 판단으로 이익을 위해 통제·착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평범한 사람도 권위와 복종으로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표 소장은 지난 1961년 미국 예일대 스탠리 밀그램 심리학과 교수가 진행한 실험에서 근거를 찾는다. 실험은 범죄경력이 없는 보통사람 40명을 대상으로 학습문제를 답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물론 실험의도를 숨기고 가짜 전기충격기로 괴로워하는 학생 역할은 연기자들이 맡았다. 피실험자들은 처음에는 약간의 전기충격만 가하고 점차 높아지는 강도에 연기자들이 비명을 지르면 멈칫했다. 하지만 전기충격을 멈추면 실험 참가비를 줄 수 없고 실험 자체를 망칠 수 있다는 감독관의 강압에 전압을 계속 올리며 충격 버튼을 눌렀다. 결국 실험전 치사 수준이라고 미리 알려준 450V 3번을 누른 피실험자가 무려 26명에 달했으며 13명은 이럴 순 없다며 항의하면서도 실험을 끝까지 마쳤고 나머지 한 명만이 250V에서 중단하고 뛰쳐나갔다. 실험은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일본 도쿄에서도 이뤄졌는데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표 소장은 "자신만을 위해 약자를 가해하는 '26명'은 어느 사회에서든 존재한다"며 "다만 나머지 '13명'처럼 사회정의와 양심에 갈등·번민하는 사람들이 옳은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끌고 홀로 저항한 '1명'의 용기를 칭송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인간적인 사회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만 도태된다면 그 사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약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현재 열심히 사는 이유가 나의 행복뿐 아니라 행복의 기회를 박탈당한 약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