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소통 문화를 살찌우는 진정성 리더십


흔히 우리는 기업의 발전을 위해 ‘ 소통 문화’ 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소통은 조직 내에서 정보가 잘 공유될 수 있도록 돕고 임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해 기업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좋은 기제임에 분명하다. 여러 경영학 교과서에서도 ‘ 소통의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선 일반론적인 설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실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추상적인 ‘ 기업의 소통’ 개념을 좀 더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주변의 소통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가까운 주변에서도 소통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BS의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 ‘ 아빠를 부탁해’ 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부모, 자식 간 소통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빠를 부탁해’에선 4인의 인기스타(강석우, 이경규, 조민기, 조재현)가 딸과 함께 출연해 현실의 가족생활을 보여준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접했을 때 필자는 퍽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했었다. 이들 스타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 터이니 가족 간 대화도 많고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 스타가 TV 화면에서 보여주는 다정다감한 모습과 유창한 대화 능력이 집 안에서도 동일하게 발휘될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을 보니 여느 가정집처럼 아버지와 딸 사이에 서먹서먹한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어떤 일을 함께 할 때에도 매우 어색해 보였고 대화조차 많지 않았다. 어떤 가족은 ‘평소에 잘 지내왔다’는 아버지의 생각과 달리, 딸은 ‘아빠와는 원래 말을 별로 안 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가족 간의 소통도 쉬운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빠를 부탁해’를 보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TV 속 연예인 가족의 어색한 모습이 내 가족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서로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고 나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경영학과 교수인 까닭에 ‘가족 사이의 소통이 이렇게 힘들 진대 기업 내 조직원 간 소통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하는 생각도 뒤따랐다. 심지어 기업의 조직원들은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 않은가?

실제 기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기업 내 소통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사내 소통을 시스템화 하려는 시도를 많이 진행하고 있지만, 그런 시스템적인 접근이 과연 얼마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소통이란 것이 제도로 해결될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의 몇몇 사례를 보면 오히려 소소한 방법이 소통에서 더 큰 빛을 발하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특히 편지나 이메일 주고받기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유수의 컨설팅사인 딜로이트 코리아의 김경준 대표 사례가 좋은 예이다. 김 대표는 과거 일에 치여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대표는 직원들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느낀바가 많았던 김 대표는 2012년 가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편지의 제목은 ‘MP(Managing Partner)의 편지’였다.

김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글들을 모아 2014년 발간한 책이 ‘통찰로 경영하라’ 이다. 이 책은 발간 당시 경영·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딱딱한 업무지시가 아니라 김 대표의 가치관과 세상 살아가는 방식, 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직원들이 김 대표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김 대표가 사고하는 방향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것이라 추측된다. 김 대표의 이런 노력 덕분에 딜로이트 코리아는 회사 내 소통문화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사내 토론이 활성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제시되어 회사의 성과를 높일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다른 사례도 많다. 지금은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긴 권영수 사장이 LG디스플레이 사장으로 재직할 때의 이야기다. 권영수 사장은 2008년부터 2011년 회사를 떠날 때까지 매달 2~3회 사내 인트라넷과 이메일을 통해 회사 임직원들에게 ‘CEO 노트’를 발송했다. 위에서 소개한 김경준 대표가 쓴 ‘MP의 편지’와 비슷한 것이었다. 이 노트에는 권 사장이 경영활동이나 일상생활에서 느낀 진솔한 생각과 경영 방침이 담겨 있었다. 회사 일을 수행하다가 다친 직원에 대한 위로에서부터 사회 현상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망라되어 권 사장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했다. 박성훈 전(前)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부사장의 예도 주목할 만하다.

박 부사장도 삼성토탈에서 물러나면서 재직 기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글과 그 편지에 대한 직원들의 답글을 모아 ‘ 눈길, 손길, 소통길’ 이라는 책으로 펴낸 바 있다. 책을 읽어보니 박 부사장이 회사의 여러 현안외에도 직원 개개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답글들을 읽어보았더니 직원들이 박 부사장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편지라는 작은 장치를 통해 쌍방향 소통이 잘 일어나는 기업문화를 만든 셈이었다. 이런 문화 덕분에 삼성토탈이 상생의 노사문화로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에서 열거한 ‘편지를 이용한 소통 활성화’ 사례에선 한가지 공통된 내용을 발견할 있다. 바로 진정성이다. 위 사례의 편지 쓰기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바탕에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편지는 진정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매개체였을 뿐이다. 결국 소통의 핵심은 진정성 있는 태도라는 얘기다.

다음으론 필자가 직접 모신 리더들을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필자가 소속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은 약 60명의 교수와 비슷한 수의 행정직원이 함께 일하는 곳이다. 이들은 맡은 부분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수천 명의 학생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리더는 임기 2년의 ‘학장’이다. 좀 더 위로는 약 3,000명의 교수와 직원을 이끄는 서울대학교 총장이 있다. 회사로 치자면 총장은 CEO, 학장은 필자가 소속된 부서의 담당 임원 정도가 될 것이다.

필자가 모신 어떤 리더는 매주 일요일 정성 들여 쓴 장문의 이메일을 전 교수와 직원에게 보냈다. 이메일에는 지난 1주일간 리더가 어떤 일을 했는지와 함께 앞으로 1주일 동안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거기에 더해 현재 우리 조직이 당면한 주요 현안은 무엇이며, 이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떠한지, 또 어떤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상세히 소개돼 있었다. 작성하는데 최소 한두 시간 이상은 걸렸을 것이라 생각될 만큼 정성이 들어간 이메일이었다.

덕분에 교수와 직원들은 학교의 사정과 리더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리더를 모시고 일할 땐 중요 안건을 결정하는 회의 시간이 매우 짧았다. 이미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은 상태였던 데다가 리더가 이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사전에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과된 안건은 실행도 일사천리였다. 그 안건이 통과된 이유와 필요한 이유를 조직원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에 반해 조직원들을 향한 진정성이나 소통을 위한 노력이 전혀 없는 리더도 있었다. 이메일은 고사하고 학교와 관련된 중요 의제들도 회의에 참석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강의 내용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마저도 일방적인 지시와 훈계로 내용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아 황당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 리더는 임기 내내 조직원들과의 불화에 시달렸다. 그나마 형식적으로 통과된 안건들도 실행 단계에서 제대로 진척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교적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학에서 이러할 진데 일반 기업에선 어떨지 생각해보니 머리가 무거워진다. 현재 내가 어떤 조직의 리더를 맡고 있다면, 나는 조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부족한 면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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