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팬오션 인수로 새로운 도전 곡물 유통 메이저를 꿈꾼다


하림그룹이 인수한 해운업체 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팬오션을 ‘한국판 카길’로 만들겠다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계획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곡물 원료부터 식품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하림그룹은 이제 더 큰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 한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을 만나 그의 사업 구상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에 위치한 NS 홈쇼핑 빌딩 8층. 1개 층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널찍한 하림그룹 회장실 로비에는 커다란 선박 모형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해운사 팬오션이 소유한 40만 톤급 벌크선(곡물 · 원자재 수송선)을 200분의 1로 축소한 것이었다.

하림은 닭고기 가공사업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하지만 그룹의 컨트롤타워 중앙에는 ‘닭’ 대신 '배'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현재 하림그룹 무게중심이 어느 곳에 있는지 짐작케 하는 상징물이었다. 집무실에서 만난 김홍국 회장은 매우 건강해 보였다. 올해 59세인 그의 단단해 보이는 건강미는 새로운 사업을 정열적으로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 운명처럼 다가온 팬오션 인수
하림그룹 지주회사인 제일홀딩스와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지난 6월 12일 팬오션을 인수하는 본계약에 서명했다. 인수대금은 총 1조 79억 5,000만 원으로, 이 가운데 제일홀딩스는 8,380억 원을 부담했다. 인수 본계약 체결 후 김홍국 회장은 “팬오션 인수는 하림그룹의 주요 사업인 축산, 식품가공, 사료 등과 시너지를 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팬오션을 ‘한국판 카길’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림그룹이 인수한 팬오션은 지난 7월 30일 기업회생 절차를 완료했다. 김홍국 회장은 옛 STX팬오션과 (주)STX 대표를 지낸 추성엽 씨와 함께 팬오션 각자대표에 취임했다.

김홍국 회장은 사업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춘 것처럼 보인다. 최근 정부는 해외 곡물 조달사업을 다시 추진키로 결정하고 사업 주도권을 민간에 넘기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하림그룹과 연계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말한다. “정부와 하림그룹은 사전에 교감을 갖거나 공식적으로 접촉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어떤 정책이 구체적으로 추진되는지 저희도 궁금해요. 하림그룹의 해외 곡물 조달사업은 처음부터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게 기업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해 왔습니다.”

축산업을 하고 있는 김 회장은 누구보다 곡물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림은 전체 그룹 매출액의 35%를 사료 사업에서 올리고 있다. 나머지는 양계(29%)와 양돈(18%), 유통(10%)이 차지한다. 그리고 그룹 매출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료는 곡물로 만들어진다. 한국은 사료 곡물 중 96%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림그룹 역시 연간 300만 톤에 달하는 곡물을 수입해 사료를 생산하고 있다. 김 회장은 설명한다.

“현재 한국의 곡물 자급률이 24%라고 하는데, 이 중 대부분은 쌀입니다. 나머지 곡물은 모두 수입을 하고 있어요. 하림도 카길이나 일본 곡물 유통사를 통해 사료용 곡물을 사들이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유통비용을 전부 내야 하는 상황이에요. 하림에서 생산하는 사료 원가 중 유통비용이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10여 년 전부터 해외 곡물 생산지와 유통기지 등을 돌아보면서 관련 사업을 구상해왔다. 벌크선 인프라만 갖추면 사료 운송 비용을 절감하고 유통망도 안정될 것이라는 게 김 회장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으로 발전시키긴 어려웠다. 김 회장은 말한다.

“곡물 메이저인 카길은 배를 600척 정도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가 새로 해운회사를 만들려면 돈도 시간도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죠. 그런데 곡물 운송 능력을 갖추고 있는 팬오션이 매물로 나온거예요. 인수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 해외 곡물 유통사업 “자신 있다”
팬오션 인수 추진 초기에는 관련도 없는 축산 업체가 해운사를 인수해 곡물 유통을 한다는 것에 논란도 일었다. 하지만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대로 정부는 지난 2011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주도하고 삼성물산, STX, 한진그룹 등 민간회사 3곳이 합작한 곡물 조달 전문회사(aT그레인)를 세운 바 있다. 이를 ‘ 한국형 카길’ 로 키워 국내에 필요한 해외 곡물을 수월하게 조달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였다. 하지만 2년간 애만 쓰다가 실패했다. 바로 이 점이 하림의 팬오션 인수를 갸우뚱하게 보는 시각이었다. 정부가 주도하고 쟁쟁한 대기업이 모였는데도 실패한 사업을 과연 하림이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시선에 대해 김 회장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말한다.

“곡물시장은 변동성이 심한 곳입니다. 시카고 곡물시장에서 매일 경매로 곡물 가격이 결정되니까요. 이런 시장을 정부가 나서서 컨트롤 할 수는 없습니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그나마 매년 예산을 따내기 위해 심의를 받아야 하잖아요. 컨트롤은 정부가 하고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이니 누군가 책임지고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없는 구조였죠. 몸은 무겁고, 당장 쏴야 할 실탄을 받는데도 부지하세월이니 일이 잘 될리가 없죠.”

김 회장은 곡물 유통사업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곡물시장의 규모와 유통 수요가 더 늘어나고 있어 하림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림은 글로벌 시장 중에도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 곡물 유통에 힘을 집중할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식품시장 규모가 유럽시장을 앞지를 정도로 성장세가 좋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국과 일본은 곡물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이고, 중국 등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여러 나라들도 자국 내 곡물 수요가 증가해 수입량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김 회장은 말한다. “이처럼 좋은 시장 여건이 동북아를 무대로 한 곡물 유통사업의 매력이자 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은 공정한 경쟁룰이 작동하기 때문에 곡물메이저들이 우리를 견제하거나 방해할 필요도 없고요. 또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쟁력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생리니까요. 이 시장에서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해외 곡물시장 진출에 실패한 사이 중국은 곡물 조달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영기업인 중국곡물식품공사(COFCO)는 지난해 네덜란드 대형 곡물업체인 니데라를 인수했다. 홍콩 노블그룹과 합작해 곡물 전문회사도 설립했다. 중국은 곡물 관련 업체 인수합병에만 100억 달러를 쏟아붓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연5,000만 톤인 곡물 가공 처리 규모를 7,700만 톤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국제 곡물조달 분야에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건 비단 COFCO같은 곡물 전문회사뿐만이 아니다. 일본 종합상사들도 앞다퉈 전 세계 곡물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곡물 자급률이 우리와 비슷했던 일본의 경우, 약 50년 전부터 세계 곡물 유통사업에 뛰어들어 수입량의 96%를 자국 곡물 유통회사가 공급하고 있다. 마루베니는 미국 내곡물 저장능력 3위 업체인 가빌론을 사들여 연간 곡물 취급 규모를 2,500만 톤에서 4,500만 톤까지 확대했다. 브라질 세아그로 지분 80%를 확보한 미쓰비시, 브라질 멀티그레인을 인수한 미쓰이도 일본 곡물 유통사업에서 한 몫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앞다퉈 세계 곡물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곡물 확보 · 저장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은 옥수수의 99.2%, 밀의 99.3%를 수입하고 있다. 만약 큰 가뭄이나 투기자본유입 등으로 국제 곡물가가 오르면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수출국들이 자국 수요 충족을 위해 수출을 통제하거나, 곡물 메이저들이 가격 유지를 위해 보유한 곡물을 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예전 사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과거 곡물파동이 일어났을 때 곡물메이저와의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어 국제 시세의 2.5배에 달하는 돈을 주고 곡물을 사들여온 적이 있다.

한국도 장기적으로 곡물 조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구체적인 결실로 나타난 건아무것도 없었다. 팬오션을 통해 미국과 남미 등으로부터 수입한 곡물을 동북아에 공급해 하림을 세계 최대 곡물회사 카길에 버금가는 글로벌 곡물 유통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김 회장의 구상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회장은 말한다. “곡물은 식량으로 쓰이지만, 에너지의 기초소재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어느 나라건 정부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곡물사업은 그 본질이 비즈니스입니다. 정부가 직접 참여해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요. 곡물 조달사업은 우리나라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팬오션 인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김 회장은 팬오션을 인수하면서 ‘행운이기도 운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팬오션이 아니었다면 하림이 곡물사업을 추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상운송업체 팬오션은 2007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곡물을 운송했던 기업이다.

현재 김홍국 회장은 이 같은 팬오션에 다양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선 곡물사업실을 새로 만들었다. 지난 9월 11일에는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팬오션의 미국 법인 ‘Panocean(America) Inc.’가 미국농무부(USDA)로부터 곡물수송업 인가를 취득했다. 팬오션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글로벌 곡물유통 경험을 가진 인재들을 물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림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가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신사업분야가 되는 해운업과 기존 사업모델인 곡물업에서 모두 승자가 돼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패할 경우 하림이 떠안게 될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엄연히 존재한다.

지난 6월 하림이 팬오션 인수계약 체결을 발표하자 하림과 팬오션의 주가는 동반 상승했다. 하지만 발표 다음날 NICE신용평가는 하림의 장기신용등급(A-)을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으로 분류했다. 일각에선 하림그룹이 해운업을 해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팬오션 경영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림의 팬오션 인수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인수를 통해 그룹 전반의 재무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팬오션은 법정관리를 거치며 비싼 용선 계약을 대부분 해약해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운 업황이 현재 바닥이어서 더 좋아지긴 쉬워도 나빠지긴 어렵다는 것도 하림에겐 기회”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설명은 이어졌다.

“현재 팬오션은 국내 해운사 중에서 가장 좋은 재무구조를 갖고 있어요. 올 상반기 부채비율이 110%인데 올해 말까지 75% 수준으로 낮아질 겁니다. 이 정도면 글로벌 기준으로 봐도 최상위 수준의 재무구조입니다. 지난해 말 140척이었던 운용 선대가 현재 200척으로 늘었어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1,150억 원인데 올해 말까지 2,300억 원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운 업황은 사상 최악의 침체기다. 때문에 팬오션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팬오션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하림그룹 곡물사업에서 나오는 물동량 30%를 제외한 나머지를 외부 영업으로 채워야 한다”며 “하림이 수입하는 곡물이 연 300만 톤인데 현재 팬오션이 연간 수송할 수 있는 물량은 약 5,000톤 정도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른 화물을 운송하면서 돈 벌 궁리를 따로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하림그룹은 우선 시카고 상업거래소 같은 공개 시장에서 곡물 매입 물량을 늘리고, 장기적으론 팬오션을 통해 해외 농장과의 직접 거래를 늘려나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 회장은 말한다. “과거 팬오션은 운송만 담당했어요. 이젠 곡물을 직접 사다가 팔게 됩니다. 5년 뒤 팬오션 매출 목표액을 7조 원 정도로 잡고 있어요. 이 중 2조 원을 곡물 유통사업에서 올릴 겁니다.”


■ ‘삼장 통합경영’으로 일군 하림그룹
하림그룹은 카길과 비슷한 면이 많다. 카길은 글로벌 곡물 시장의 40%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 곡물회사다. 세계각지에서 곡물을 생산한다. 600여 척에 이르는 자체 보유 벌크선으로 유통사업까지 수직계열화해 연 매출 140조 원대를 올리고 있다. 하림그룹도 팬오션 인수를 통해 곡물 유통업까지 수직계열화 함으로써 규모는 작지만 카길과 흡사한 사업구조를 갖추게 됐다.

하림그룹은 자신들이 이룬 수직계열화를 ‘ 삼장 통합 경영’이라고 부른다. 삼장 통합경영은 생산(농장)-가공(공장)-판매(시장)가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관리 경영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1차 산업인 농업을 2, 3차 고부가가치 농식품산업 모델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한국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업모델로도 볼 수 있다. 하림그룹이 ‘삼장 통합경영’을 시작하고 완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김 회장은 농장을 운영하던 젊은 시절 가축가격 폭락으로 인해 말 그대로 ‘폭삭 망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김 회장이 회상한다. “어느 날 슈퍼마켓에 갔다가 진열된 소시지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돼지 가격은 폭락했는데 소시지 가격은 변동이 없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그 때의 깨달음을 발전시켜 농장-공장-시장을 통합하는 삼장 통합경영을 구상했고, 닭고기 사업에 접목시켰습니다.”

두 번째는 인수합병이다. 하림그룹은 2001년과 2008년에 사료 생산 회사인 천하제일사료와 팜스코를 인수한 바 있다. 천하제일사료는 하림에 인수된 후 매출 규모가 5배 이상 커졌다. 팜스코 역시 10배 이상 매출이 늘었다. 하림은 파산한 미국의 육계회사 알렌하림푸드를 인수해 흑자로 돌려놓기도 했다.

김 회장은 하림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회사만 인수해왔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의 회사들만 인수 대상에 올려 놓고 따져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림그룹의 계열사들은 모두 축산 식품과 관련된 업체들이다. 당연한 듯 들리는 얘기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김 회장은 말한다. “저는 기업을 인수할 때 ‘마른 소를 산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송아지를 300Kg 이상 키우려면 3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영양 상태가 나쁘거나 조금 병든 어른 소는 6개월만 잘 보살피면 회복시킬 수 있어요.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회사나 조금 병든 회사는 잘 치료하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림그룹이 가지고 있는 경영철학이나 정신들을 잘 접목시키면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정상을 찾고 가치도 금방 회복된다는 겁니다.” 김 회장은 자신이 했던 인수합병 중 가장 잘한 것이 ‘팬오션 인수’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 그룹의 한 축 담당 할 종합식품 사업
하림그룹은 NS홈쇼핑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곳도 바로 NS홈쇼핑 건물이었다. NS홈쇼핑은 2001년 하림이 창업한 회사다.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하림이 NS홈쇼핑을 인수해서 계열사로 편입했다는 잘못된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김 회장이 이에 대해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NS홈쇼핑이 하림 계열사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잘못된 기사가 나오기도 하죠. 처음 2년간 흑자였다가 3년째 되던 해에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올해 초에는 코스피에도 상장했어요.”

김 회장은 하림그룹이 만드는 각종 식가공품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NS홈쇼핑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것 역시 수직계열화인 셈이죠. 방송시간의 60%를 식품으로 편성하고 나머지 시간에 일반 상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원재료에서 소비자 식탁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 과정을 책임 있게 관리해서 최상의 품질과 안전을 추구한다는 하림그룹의 철학이 NS홈쇼핑에서도 공유되고 있어요.”

NS홈쇼핑은 하림그룹에게 꽤 쓰임새가 좋은 회사다. 하림그룹 계열사인 하림식품은 유상증자 자금 200억 원을 비롯해 총 1,100억 원을 투자해 이르면 내년 2월까지 전북 익산에 종합식품가공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은 NS홈쇼핑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NS홈쇼핑이 하림식품 지분 100%를 갖고 있다).

김 회장은 말한다. “익산공장에서 천연액상 조미료는 물론 냉장 · 냉동식품, 가정간편식, 레토르트 식품 등 현대인의 식생활에 맞춘 다양한 편의식품을 제조할 계획이에요. 하림이 종합식품서비스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전초기지가 될 겁니다. 하림그룹이 가지고 있는 식품소재 조달 능력, 통합경영을 통해 다져진 생산-가공유통의 연계능력, 품질관리능력등을 발휘한다면 가정 간편식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림은 지난해부터 쌀 가공 식품과 계란 유통 등 신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밀가루 음식과 육류 소비가 늘면서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감소하고 있지만, 1인 가구증가로 인해 햇반 · 컵밥 등 쌀 가공 식품 소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림은 이를 위해 익산공장에 쌀 가공 식품 생산 라인도 포함시켰다. 하림그룹이 기존 강자인 CJ제일제당, 동원F&B, 풀무원 같은 식품 대기업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가정간편식시장은 최근 맞벌이 가정과 1인 가구가 늘면서 2009년 7,1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7,000억 원 수준으로 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올해의 경우도 지난해보다 15~20% 정도 성장할 것으로 보여 식품회사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하림은 지난해 7월부터 미국에 삼계탕 제품도 수출 하고 있다. 미국 유통업체 2곳과 손잡고 미국 전역 1,500개 마트에서 냉동 식품과 레토르트 2가지 형태의 삼계탕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 축산물을 미국에 수출한 건 하림이 최초였다. 지난 2004년 4월 미국 수출길을 열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지 10년만에, 한 · 미 FTA가 비준된 지 5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하림은 한인 교포와 동양계 미국인, 히스패닉 등을 주요 타깃으로 공략해 올해 300만 달러, 5년 내 1억 달러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 대기업 반열에 오르다
일반인들 머릿속에 ‘ 하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닭고기다. 기업 규모에 대해서도 일반 중소기업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기업인 (주)하림은 우리나라 육계업 시장 점유율 31.1%인 업계 최대 기업이다.

현재 하림의 자산 총액은 4조8,000억 원 규모. 계열사는 닭 가공업체인 (주)하림과 사료전문업체 천하제일사료, 양돈 전문업체 팜스코, 홈쇼핑 업체 엔에스쇼핑(NS홈쇼핑) 등 모두 31개사다. 하림그룹은 팬오션 인수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에 편입된다. 대기업 집단이란 흔한 말로 하면 재벌이다. 대기업집단의 요건은 대략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이다. 팬오션 인수로 자산 규모가 9조 원 이상으로 커지는 하림그룹은 내년부터 당연히 30대 그룹에 진입하게 된다(현재 하림그룹(자산 총액 4조8,000억 원)과 팬오션(4조4,000억 원)이 합쳐지면 자산 규모가 9조2,000억 원대로 확대된다).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같은 중후장대 산업으로 규모의 경제를 키워온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축산 전문대기업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림그룹 입장에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집단이 되면 사업상 여러 규제에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림그룹은 2년의 유예기간 동안 대기업 규제에 모든걸 맞출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홍국 회장은 말한다. “현재도 지주회사법에 위배되는건 전혀 없어요.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하나의 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걸 목표로 통합 작업을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되면 이런저런 규제가 180개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팬오션과의 시너지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김 회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기업의 모든 활동 자체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공헌은 기업 규모가 크건 작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입니다.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책임은 사회에 유익한 가치를 제공하고, 가능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치를 만들어 키우고 나눌 수 있어야 기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게 해야 세금도 많이 낼 수 있고 사회공헌 사업도 많이 할 수 있어요.”


■ 김홍국 회장이 말하는 기업가 정신
김 회장은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을 품고 있다. 김 회장은 맨손으로 국내 축산업계 1위 업체를 일군 자수성가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하림그룹은 1978년 김홍국 회장이 고향인 전라북도 익산에서 시작한 육계농장에서 출발했다. 김 회장은 1990년 축산가공업을 업종으로 하는 육계 전문업체 (주)하림을 세우면서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하림은 1995년 농축산물 업계 최초로 KS마크를 획득하고, 1997년 코스닥 시장에 주식을 상장하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정성껏 길러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닭을 사고, 또 되팔아 돼지를 사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18살에 씨닭(종계) 5,000마리, 돼지 700두를 기르는 농장주가 되었다. 1982년 돼지와 닭값이 폭락하면서 빚더미에 앉기도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모색해 굳건히 사업을 지켰다.

김 회장은 말한다. “기업가들은 늘 위기와 마주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난관들을 헤쳐나가는 건 기업인들의 숙명이죠.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첫 번째 요소가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모든 상황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합니다.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기회는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기회를 움켜쥐고 도전하려면 먼저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상황이 펼쳐져도 안주하지 않아야 합니다. ‘안전지대를 떠나라’는 명제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임직원들에게도 이 같은 정신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도전의 노정이니까요.”

마침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기간에 불어닥친 양념치킨 열풍으로 닭고기 수요가 폭발하면서 하림은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하림이 그룹사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건 2001년부터였다. 2013년부터는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해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였다. 김 회장은 “사업적인 측면에선 계열사들이 독자적인 사업영역을 갖고 독립적인 경영을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결속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의 하림이 있기까지의 과정도 담담하게 설명해주었다.

“꿈이 커지듯 회사가 저절로 커져 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한 사업이 어느새 대기업으로 성장했는데, 치밀한 계획을 갖고 회사를 이렇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작은 목표를 이루고, 목표가 이뤄진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도전하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키워 간다기보단 ‘끝없는 도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팬오션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두려움보단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레임을 더 느꼈습니다.”

김 회장은 자신이 가진 ‘ 기업가 정신’ 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애덤 스미스가 설파했듯이, 지위와 부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또 그것이 곧 기업가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가 정신은 강제적으로 막지만 않는다면 본능적으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는 기업에 대한 규제가 철폐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규제를 없애면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대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개개인들의 야망’, 즉 기업가 정신에 의해 시장이 확대되고 자본이 증대합니다. 그 결과 사회가 번영하는 거예요. 기업가 정신은 기업인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자영업자, 소상공인, 농업경영인, 중소기업인 등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 등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과감하게 폐지한다면, 경제가 발전하고 청년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세수가 늘어날 겁니다.”

하림그룹은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기업이다. 축산업 한 우물을 판 결과, 6개 국내 주력기업과 관련 자회사를 운영하고, 중국, 필리핀, 베트남, 미국 등 해외 10개 사업장에 진출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림그룹이 글로벌 곡물 유통사업과 종합식품 회사의 양 날개로 어디까지 성장을 이룰지 앞으로의 도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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