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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세상물정의 물리학

[BOOKS REVIEW]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당신의 삶은 세상의 사건 중 한 조각이 아니라 세상의 사건 전체’라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말로 시작되는 노병우 교수의 저서 ‘세상 물정의 사회학’을 읽은 것은 작년이었다. 세상의 이치는 다 깨우치지 못했지만 세속의 물정이야 남들만큼 안다고 큰소리를 치며 살 있는데, 눈앞에 닥치는 소소한 일조차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힘이 부쳤던 시기였다. 그래서 작은 실마리라도 찾고 싶어 열심히 밑줄을 그었다.






그런 노 교수가 ‘세상 물정의 물리학’에 추천사를 썼다. 자신이 쓴 세상 물정의 사회학으로는 세속의 이치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니 그 빈자리의 허전함을 이 책으로 채우라는 뜻이라 생각된다. 사회학을 씨줄, 물리학을 날줄 삼아 촘촘히 엮은 옷이라면 갈수록 혼돈스럽고 각박해지는 세속의 삶을 조금이나마 지혜롭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넉넉한 인심(人心) 말이다. 그 인심이 바로 융합, 혹은 통섭의 근본일 터. 노 교수의 추천사는 이랬다.

‘사회학적 질문의 대상이 되는 인간과 물리학의 질문의 대상이 되는 인간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인간은 동일하다. 단지 각 분과학문이 동일한 대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법과 그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만이 서로 다를 뿐이다.”



지금, 여기서 ‘나’를 찾는 물리학
사회학으로도 충분한 답을 주기 어려운 세속의 삶을 어찌 물리학이라고 쉽게 답을 주겠는가. 저자인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의 말처럼 오히려 표준적이고 전통적인 물리학에는 ‘지금, 여기’란 없고, 물리학 논문에는 ‘나’가 없다. 때문에 물리학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상물정을 모 르는 이상한 괴짜 를 떠올린다.

이 책은 그러한 통념에 대한 반전을 시도한다. 물리학을 통해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고, 그 현상에 둘러싸여 갈 곳 모르는 ‘나’와 ‘우리’를 발견한다. 결국 이 책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이상한 괴짜가 들려주는 속 시원한 세상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또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을 통해 정확한 실험과 통계로 추출한 과학적 결과를 소개하는 한편 그 결과물들이 과학이라는 틀에 묶여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과학적 도구로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판적이며 지혜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것은 가끔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물리적’으로 뛰어넘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뒷담화다. 우리는 통념상 뒷담화를 싫어할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취급한다. 하지만 저자는 뒷담화를 권한다. 잘못된 의사결정과 일방통행식 의사결정 구조가 고착화돼 있는 조직에서는 뒷담화가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저자는 의사소통 구조와 ‘때맞음’의 상관관계를 통계물리학으로 분석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결과, 상명하복 구조에서 다양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한동안은 ‘때맞음’ 정도가 약해진다. 하지만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이 훨씬 더 활발해지면 상명하복 구조였을 때보다 더 강한 때맞음이 발생했다. 다양한 의사소통 구조가 존재하면 최상위자의 일방적인 명령을 전체 집단의 다른 올바른 의견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을 빗대어 뒷담화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국내 대학에서 지도교수가 연구와 관련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도 대학원생이 그것을 지적하기란 여간해서는 어렵다. 지도교수의 헛소리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 답은 ‘뒷담화’의 활성화다. 뒷담화로 바로잡은 나의 헛소리를 대학원생들이 알려주면 금상첨화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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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를 활성화하라
저자는 프로야구팀들의 이동거리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도 내놓았다. 2012년 프로야구팀들의 이동거리를 분석해보니 롯데 자이언츠가 총 9,20 0㎞로 가장 길었고, LG 트윈스가 5,500㎞로 가장 짧았다. KBO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만큼 롯데를 위해 원정 9연전의 예외를 뒀지만 이동거리의 불평등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각 팀에 공평한 경기 일정표를 만들 수 있을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저자는 통계물리학을 전공하는 우수한 대학원생들에게 몬테카를로 방법을 적용해 공평한 경기 일정표를 만들라는 모둠과제를 냈다. 학생들은 단 며칠안에 이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결과를 도출했다. 그렇게 얻어진 경기 일정표에 따라 각 팀의 이동거리를 다시 계산해보니 차이가 상당히 줄었다. 이 실험 결과는 논문으로 출간됐고, 논문의 결과는 과학면이 아닌 스포츠 면에 실렸다.

이미 많 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명절 연휴 고속도로 교통 체증의 원인도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으로 설명한다. 원인은 단순하다. 차량이 많아지면서 교통 흐름이 느려지는 이유는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보통 1초 정도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100대를 한 줄로 연결하면 시속 60㎞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앞 차량이 움직여야 나도 가속페달을 밟는다. 이런 방식으로 100대가 시속 60㎞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운전자의 반응시간과 운전습관의 차이다. 차량이 많아도 모든 차량이 동일한 거리와 속도로 주행하면 정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앞 차가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도 뒤차는 급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차량이 별로 없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차량이 많으면 앞 차의 작은 교란도 바로 뒤차로 전달된다. 이처럼 사고가 난 것도, 야생동물이 도로에 뛰어든 것도 아닌데 차량이 많아서 이유없이 생기는 정체를 ‘유령 정체(phantom traffic jam)’라한다.



목표는 하나, 제대로 된 눈을 갖자
통계물리학자들이 감염, 혹은 전파를 보는 관점은 단순하다. 그것이 SNS를 통해 떠돌아다니는 소문이든, 병원균이든, 컴퓨터 바이러스든, 심지어 옷차림의 유행이든 ‘지수함수’를 적용하면 전파의 위력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지수함수는 엄청나게 빨리 증가하는 함수다. 병원균을 예로 들어보자. 1차 감염자 100명 모두가 100%의 확률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극단적 가정을 하면 6차 감염만 되도 전 국민이 감염된다.

물론 이런 일은 수학적으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우리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는 지수함수의 꼴로 감염자가 발생하는 병원균 전파에서 초기 대응과 투명한 정보공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줬다. 최초 전염이 일어난 병동을 완벽히 격리하고,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말 한다.

‘대중은 쉽게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귓속말로 전해지는 괴담만이 정보의 원천이 될 때 대중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물리학을 통해 세상물정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없다. 저자는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누가 맞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한국인의 성씨 분포를 분석해낸다. 또 영화 ‘인터스텔라’와 허니버터칩의 성공 비결을 통해 ‘문턱값’이 좌우하는 유행의 비밀을 포착하고,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지역감정을 득표율의 거리상관함수로 설명한다. 거대한 사회현상에 더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지 없는지, 왜 예술작품은 아름다운지 등과 같은 심미적·미학적 질문에도 물리학으로 명쾌하게 답을 제시한다.

따지고 보면 사회학이나 물리학이나 목표는 같다.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자는 것이다. ‘집단지성’과 ‘우매한 대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이성적인 지성과 합리적인 판단은 결국 ‘앎’에서 시작된다. 세상물정은 갈수록 복 잡하고 변화무쌍해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지만 그럴수록 그것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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