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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핵융합 연구 20년




지난 1995년 한국형 인공태양이라 불리는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의 착공으로 본격화된 국내 핵융합에너지 연구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7년 전 가동을 개시한 KSTAR를 필두로 20년간 우리나라는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우수 연구성과를 창출하며 명실공이 핵융합 강국으로서 입지를 다진 상태다.

세계 각국이 핵융합이라는 차세대 에너지원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공태양이라는 별칭에서 연상되듯 태양처럼 청정에너지를 사실상 무한정 생산할 수 있다. 원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리튬)가 무한자원에 가까운 바닷물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는 덕분이다.


또한 핵융합 반응은 핵분열 반응에 기반한 원자력보다 안전성도 탁월하다. 에너지 발생 효율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욕조 하나 분량의 바닷물과 노트북 배터리에 1개에 들어간 리튬만으로 석탄 100톤에 해당하는 에너지 생성이 가능하다.

물론 KSTAR를 짓기 이전에도 우리나라는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핵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중국과 비교해도 많이 뒤처지는 실정이었다. 장치 건설에 막대한 비용 투입이 불가피한 핵융합 연구의 특성상 당시 국내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만 이런 힘겨운 상황에서도 몇몇 선구적 연구자들에 의해 핵융합은 미래 에너지로서 연구의 명맥을 이어 왔다. 1979년 서울대학교에서 개발한 국내 최초의 토카막 ‘SNUT-79’가 그 실례다. 장치 자체의 성능보다는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진이 향후 KSTAR 건설의 주역이 됐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후 1989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만든 토카막 방식의 소형 핵융합 연구장치 ‘KT-1’도 핵융합로 개발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추진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경험으로 작용했다. 또한 1993년 KAIST가 미국 텍사스대학 핵융합연구센터의 ‘프리텍스트(PRETEXT)’를 바탕으로 제작한 ‘KAIST-토카막’의 경우 학생들이 제어 및 진단장치를 개발하고, 플라즈마 운전 경험까지 쌓음으로써 국내 핵융합 연구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핵융합 선진국들의 시각에서 이 같은 연구 경험은 보잘것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때문에 1995년 우리나라가 자신들도 시도하지 못했던 중형 초전도 토카막을, 그것도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나이오븀(Nb)-주석(Sn)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자 놀라움과 함께 우려를 표명했다. 국내에서도 거액의 국가 예산을 공상과학(SF)과도 같은 불확실한 계획에 투자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래 유망기술의 하나인 핵융합 분야에서 더 이상 다른 국가들을 뒤쫓는 추격형 연구에만 머물 수 없다는 절박함이 충만해 있었다.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 참여해 핵융합 선진국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연구를 하고, 주도적으로 연구개발을 이끌어가기 위해선 아직 성공하지 못한 초전도 토카막 기술을 완성해 보여야 했다.

근거 없는 허망한 꿈은 아니었다.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중공업 기술력을 무기로 초전도자석에 필요한 가공과 열처리, 대형 진공용기의 설계와 정밀 조립 기술을 충 분히 확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과 그동안 쌓아온 핵융합 연구의 노하우를 통해 사업 시작 12년 만인 2007년 세계적 수준의 초전도 토카막 장치 ‘KSTAR’를 완공해냈고, 이듬해인 2008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시험가동에 성공함으로써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KSTAR와 같은 중대형 토카막은 일반적으로 완공까지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대형 실험로인 I TER나 실제 발전소와 비슷한 크기인 실증로의 경우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긴 건설시간은 핵융합 연구의 진보를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초고층 빌딩도 뚝딱 건설하는 지금 핵융합 장치의 건설에는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먼저 핵융합 장치가 건설될 곳은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KSTAR를 예로 들면 본체의 지름과 높이가 대략 10m, 중량은 1,000톤에 달한다. 이처럼 거대한 장치를 밀리미터 수준으로 정밀하게 위치시키고, 수많은 실험에서 받게 될 충격을 완벽히 흡 수할 수 있도록 설치하려면 특별한 지지구조가 요구된다.

핵융합 장치가 들어설 건물 역시 일반 건물과는 다르다. 거대한 본체와 장치 가동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배전·접지 설비 등 다양한 부대설비가 내부에서 조립돼야 하기 때문이다. KSTAR만 해도 주장치실의 크기가 축구장 넓이의 4분의 1에 해당하며, 지하를 포함하면 높이가 아파트 11층 수준이다. 단일 실험 공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이런 넓은 공간을 기둥 하나 없이 지탱해야 하고, 핵융합 반응 시 발생되는 중성자를 차폐해야 해 콘크리트 벽의 두께만 1.5m에 달한다. 건물에 들어간 콘크리트가 일반 아파트 1,000세대를 지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될 것이다.



그렇게 1995년 프로젝트가 런칭되고 나서 각종 설계와 준비 작업을 거쳐 2002년 실험동이 완공되기까지 총 7년이 걸렸다. 이후에는 진공 용기를 비롯한 부품들이 속속 제작·조립됐다.


KSTAR 주장치의 하부 구조를 시작으로 진공용기와 3종(D형, 원형, 실린더형)의 초전도 자석, 저온 용기, 진공장치, 가열장치, 진단장치 등의 부대설비와 진공 용기를 플라즈마로부터 보호할 내부 타일까지 조립되는데 다시 5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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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AT의 운용 주체인 국가핵융합연구소에 따르면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된 부분은 초전도 자석의 제작과 시험이었다. 초전도 자석은 가는 선재를 여러 번 감아 하나의 자석으로 완성되는데, 사용된 선재의 길이만 지구의 지름과 맞먹는 1만2,000㎞에 달했다. 특히 초전도 선재 중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나이오븀- 주석을 사 용했기에 더 세심한 공정이 필요했다. 완성된 자석의 열처리 공정에만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초전도 자석이 총 30개 제작됐다.

그동안 KSTAR는 매년 체계적인 장치 성능 업그레이드와 유지보수로 꾸준한 성과를 보여줬다. 2008년 첫 실험에서 단 한 번만에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한 것은 초전도 토카막 중 KSTAR가 유일하다. 이를 통해 핵융합 플라즈마 연구추진 동력을 마련한 KSTAR는 2009년 플라즈마 전류 320㎄, 플라즈마 유지시간 3.6초를 달성했다.

또한 KSTAR는 2010년 초전도 방식 핵융합장치로는 역대 최초로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조건인 ‘ H-모드’의 구현에 성공한 뒤 지속적 기술고도화를 거쳐 지난해 40초 이상의 H-모드 유지와 1MA의 플라즈마 전류를 달성하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 2011년에는 핵융합 연구의 최대 난제 중 하나로 꼽혔던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성 현상(ELM)’의 제어에 최초 성공하기도 했다. ELM이 발생하면 플라즈마 내부의 많은 에너지가 유출되면서 토카막 내벽에 큰 손상을 줄 수 있어 반드시 제어해야만 하는 현상의 하나다.



현재 국가핵융합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지금껏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KSTAR를 활용, 한국형 핵융합 실증로 건설에 필요한 독자 연구를 다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등 7개국이 프랑스 카다라슈 지역에 공동 건설 중인 ITER의 건설 및 운용에 도움이 될 기초실험 자료를 상호보완적으로 제공하면서 국제핵융합 연구에 있어서도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오영국 KSTAR 연구센터 부센터장에 따르면 KSTAR 연구팀의 최우선 목표는 오는 2017년까지 연속 운전시간을 300초 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실험로를 넘어 실증로와 상용로 건설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오 부센터장은 “H-모드는 초전도 방식을 포함한 대다수 선진 핵융합 연구장치와 ITER의 기본 운전모드”라며“지난해 역대 최장기록인 45초(플라스마 전류0.6MA)의 유지에 성공하는 등 매년 목표를 향해 성큼 다가서고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연구팀은 KSTAR가 지닌 우수성을 입증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토카막의 자기장 오차 정밀도 검사를 실시, 여타 핵융합 장치의 토카막 대비 약10배나 정밀함을 확인한 것이 그 실례다.

오 부센터장은 “이는 3차원 자기장의 플라즈마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KSTAR가 독보적이라는 의미”라며 “이런 데이터들을 활용해 KSTAR의 고성능 운전능력을 공인받는 한편 향후 실증로의 최적화 설계에도 반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연속 운전시간 300초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플라즈마의 불안정 요소 대부분을 확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며 “그때는 실증로와 상용로 건설에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플라즈마
고체, 액체, 기체 상태가 아닌 제4의 물질상태를 말한다.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자유로운 형태로 태양을 비롯한 우주의 99% 이상이 플라즈마 상태다. 번개, 오로라, 형광등, 네온사인 등도 플라즈마에 해당된다. 핵융합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생성해야 하며, 이 플라즈마를 가두는 그릇 역할을 하는 핵융합장치와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필요하다. 핵융합 장치는 이 같은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진공용기 속에 넣고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즈마가 벽에 닿지 않게 가두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도록 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때문에 핵융합장치 벽면에 직접 닿는 부분의 온도는 수천℃에 불과(?)하다.

핵융합 발전 단계
핵융합로 안에서 발생시킨 초고온 플라즈마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생성된 중성자의 열에너지가 증기를 발생시키고 그 증기가 터빈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1. 진공용기 안에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주입하고 플라즈마 상태로 가열한다
2. 토카막의 자기력선 그물망으로 플라즈마를 가둔다.
3. 플라즈마를 약 1억도 이상으로 가열, 핵융합반응을 일으킨다.
4. 핵융합반응시 일어나는 질량결손에 의해 핵융합에너지가 중성자 운동에너지로 나타난다.
5. 중성자 운동에너지가 변환된 열에너지로 증기를 가열, 터빈을 구동시켜 대용량의 전기를 생산한다.

71억 1,000달러
우리나라와 미국, 러시아, EU, 일본, 중국, 인도 등 7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의 총 사 업비. 한화로 환산하면 약 9조4,000억원에 달한다.

토카막 (tokamak)
초전도 자석으로 자기장을 생성해 플라즈마가 안정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도넛 모양의 진공용기. 초전도 자석으로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두는 진공용기라 보면 된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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