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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INTERVIEW] 이혜정 한국한의학연구원장

“한의학의 우수성을 입증,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것 ”




한국한의학연구원 설립 20주년인 2014년 부임한 이혜정 원장은 기관 최초의 여성 기관장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과학자로서 쉼 없이 달려왔다. 지난 1년간 한의학적 통합 예방관리 시스템 구축과 노인성·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 등 한의학 예방·치료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해왔으며 융합형 한의의료기기와 한약제제 활용 기술 개발 등 임상 수요 해결형 연구개발을 통한 한의학의 가치 제고에도 다각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Q.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의학의 효능은 우리 선조들에 의해 이미 증명됐습니다. 쉽게 말해 선조들이 수천년 동안 수행한 임상 연구 결과가 문헌으로 기록·정리 돼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현대의 과학 이론이나 통계기법이 없었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어요. 한의학의 과학화는 바로 이처럼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된 한의학의 우수성을 현대 과학이라는 언어로 설명하고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과학화가 바탕이 돼야만 한의학의 표준화와 산업화, 세계화도 가능해집니다.

전 세계 전통의학 시장은 2050년 5,000조원으로 정도로 예견되고 있는데, 표준화가 이뤄져야 이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Q. 중국의 중의학, 일본의 한방의학과 비교해 한의학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한의학의 뿌리는 고대 중국대륙을 포함한 동아시아 의학입니다. 고대 중국의 영역에 대해 일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중국 전통의학은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베트남, 티베트 등 아시아권 전체에 영향 을 미쳤습니다.

이후 한·중·일 3국에서 체계적으로 발전돼 왔고, 한의학도 조선시대 이후 독자 발전의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 땅 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향약(鄕藥)이 강조됐고, 광해군 시절에는 기존 중국 의서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집대성한 동의보감이 출간됐죠. 또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이 정립되면서 한의학은 독창적이고 우수한 이론체계를 갖춘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의학으로 발전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제도적으로 한의사 제도가 사라지고, 중국도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유물론적 입장에서 전통 의학이 실용주의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가 있었지만 유불선의 전통이 비교적 잘 보존·계승되면서 한의학이 대중의 생활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한의학 이론이나 임상이 전통적 동양 철학과 전통 의학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한·중·일 간의 전통의학 국제표준 경쟁은 어떻습니까?
한·중·일의 전통의학은 각국의 특성에 맞춰 임상에 쓰이고 있지만 공통 협의가 가능한 아이템에 대해서는 국제표준화기구(ISO)를 통해 국제표준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각국이 제안한 표준안들은 ISO의 전통의학기술위원회인 TC249 소속 20개 회원국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국제표준안으로 제정됩니다.

주지하다시피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주로 한·중·일에 의해 표준안이 활발히 제안됐지만 최근 들어 추세가 변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독자적 제안에서 벗어나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혹 은 캐나다 등의 국가까지 상호 협력해 공동 프로젝트 형태로 국제 표준안 기획을 진행합니다. 각국이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침술 기구와 의료기기, 한약 관련 시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발맞춰 한의한연구원도 한의학의 국제표준화를 위해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국제표준을 선점하면 한의학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 막대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Q. 표준화 경쟁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는 어느 정도입니까?
한의학연구원은 한의학의 표준화를 위해 ISO TC249 국내 간사기관으로 지정받은 한의기술표준센터를 중심으로 산·학·연·관을 총망라한 전문위원회를 운영 중입니다. 연구원 자체적으로도 우수 연구성과를 창출, ISO에 국제표준안을 활발히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한이학연구원은 의료기기나 의료정보 등과 관련한 뜸, 피내침, 맥진기, 설진기, 전침기, 전침용 침 시험법, 부항, 뜸 정보 표현구조 등 8건의 국제표준안 개발 리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Q. 양방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한의학계와 의료계의 대립을 해소할 해법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의료 소비자인 동시에 수혜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한의학이든 서양의학이든 국민 입장에선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고 치료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상호간의 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각각의 장점을 활용한다면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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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이원화된 의료 체계 속에서 의료기기의 사용에 대해 한방과 양방이 대립한다면 의료기기를 개발한 분들이 너무나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한방과 양방을 떠나 의료계가 앞으로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분명히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국민의 건강한 삶, 국민의 보건 향상을 위해 상생할 수 있는 방 안을 도출해내리라 생각합니다.

Q. 최근 제주도에서 개최된 ‘ICCMR 2015’의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한의학연구원은 지난 5월 제주도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보완의학연구학술대회(ICCMR 2015)를 개최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데니스 노블 교수를 비롯한 세계적 석학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 독일 등 25개국 580여명의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미래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전통의학 및 보완·통합의학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논의한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아직은 한의학이 가진 우수성과 한의학의 수준을 전 세계에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전통의학분야의 국제학술대회가 많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ICCMR 2015는 한의학연구원이 세계 각 국에 한의학의 우 수성과 국내 연구개발 수준을 보여준 무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한의학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입니다.

Q. 향후 주요 추진 사항과 연구개발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임기 동안 100세 시대에 대비한 국민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한의학적 통합 예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인성·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등 한의 예방·치료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할 방침입니다.

또한 한의 임상기술에 대한 근거를 확보하고, 융합형 한의의료기기 개발과 한약제제 활용 기술 개발 등 임상 수요 해결형 R&D를 통해 한의약 가치를 제고하는 데에도 힘쓸 것입니다. 덧붙여 한의 이론의 과학적 규명이나 안정적 한약 자원 확보 기술 개발, 지식자원 확보 및 활용 기술 개발로 지속가능한 한의 의료 서비스의 기반을 구 축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의학적 검사로는 몸의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 없지만 다양한 형태의 자각증상을 가지고 있는 반 건강 상태를 한의학적으로 미병(未病)이라고 합니다. 이런 미병을 관리할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 한의학 기반의 질병 예방·관리 체계를 구 축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한의 임상 및 산업계 등 의료현장의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임상진료지침 보급 등 한의 임상기술의 질 높은 근거를 확보·확산하고 한약의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국민 신뢰도 향상에도 집중할 계획입니다.

Q. 여성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저는 1980년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1987년 한의대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이후 2003년 한의계 처음으로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침 연구와 관련해 연구비를 지원받았고, 2006년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작년에는 1994년 설립된 한의학연구원 역사상 최초의 여성 기관장으로 부임해 지금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한의대 교수로 임용될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진출은 지금처럼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 몫 했다고 봅니다. 저 역시 여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출산과 육아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여성 과학자들은 섬세함과 통찰력, 포용력 등의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여성 과학자들이 이같은 장점을 차별화시켜 꾸준히 키워간다면 미래 과학기술계를 이끌어갈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혜정 원장 프로필
학력
1974~1980 경희대 한의학 학사
1980~1982 대만중의약대 침구학 석사
1983~1986 경희대 대학원 침구학 박사

경력
1987~현재 경희대 한의과대학, 대학원 기초한의과학과 교수
1999~2001 보건의료기술연구기획평가단 평가위원회 위원
1999~2002 중화민국대만 립부의약연구문교기금회 학술상심의위원회 위원
2004~2010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2005~2014 미래창조과학부 지정 우수연구센터 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 소장
2008~2009 중화민국대만 중 국의약대학 객좌교수
2011 국가연구개발사업 상위평가위원회 위원
2013~현재 미래창조과학부 지정 한의학융합연구정보센터 소장
2014~현재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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