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과 공무원집단의 '담합'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이 산으로 가고 있다. 가입기간 1년당 연금 지급률을 보험료 부과 소득의 1.9%(33년 57%)에서 올해까지 임용자에게는 1.25%, 내년 이후 신규 임용자에게는 1%로 낮춰가겠다며 개혁의 고삐를 죄던 여권에서조차 1.65% 타협안(김용하 교수안)이 흘러나왔을 정도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급률 1.45~1.7%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1.7% 굳히기에 들어가자 등장한 타협안 중 하나다. 지급률을 1.5%로 낮추는 정부안보다 훨씬 후하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연금의 수지균형 달성은 요원해진다. 낸 것보다 훨씬 많이 받는 공무원연금의 적자보전에 지난 10년간 15조원, 다음 정권 10년간 86조원의 혈세가 들어가 개혁에 나섰는데 이런 식으로 타협이 이뤄지면 재정절감 효과도 별로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꼬인 데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공무원집단에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자 청와대와 교감하며 다소 과격한 개혁안을 내놓은 새누리당에도 문제가 있다. 1.9%인 재직자의 지급률을 내년 1.35%, 2026년 1.25%(40년 50%)로 11년 동안 총 34%를 깎는 것은 적자보전금을 줄여야 한다는 절박성을 고려해도 정치적 수용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신규자의 지급률은 13년 동안 총 47%가 깎여 더 심하다. 정부여당 원안대로 시행되면 공무원집단 평균과 가까운 월소득 450만원 신규자의 퇴직 후 총급여(연금+퇴직금)는 30년 가입자의 경우 현행 283만여원에서 202만여원으로 81만원(29%)이 깎인다.
이처럼 지급률은 매우 민감하다. 0.1%포인트만 깎여도 월 300만원 소득자가 30~40년 재직 후 받는 연금이 월 9만~12만원 줄어든다. 월 450만원 소득자는 월 13만~18만원이 깎인다. 여야정과 공무원단체가 지급률 삭감폭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다.
그러니 공무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전문가들 중에서도 신구(新舊) 공무원을 차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가세했다. 결국 여당은 보완책으로 김태일 교수안을 띄웠다. 여당은 공무원연금공단이 운용하는 저축계정에 신규자가 보험료 3%를 적립하면 정부가 1%를 지원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450만원 소득자가 퇴직 후 받는 총 급여가 월 283만원(연금+퇴직금)에서 236만원(연금+저축계정+퇴직금)으로 감소한다.
문제는 연금지급률이 1.7~1.65%나 되는 새정치민주연합안과 김용하안이다. 국민연금 방식의 소득재분배와 기존의 소득비례 방식을 혼합한 것인데 김태일안보다 훨씬 후하다. 야당안은 공무원집단 3년 평균소득인 월 438만원, 김용하안은 300만원 소득자의 총 급여(연금+퇴직금)는 지금과 같지만 소득이 이보다 적으면 오히려 늘어난다.
일본 공무원은 오는 10월부터 일반 국민과 똑같은 수준의 연금을 받는다. 연금의 깎이기 전에는 월평균 185만원으로 일반 국민보다 20만원 많았지만 10월부터는 165만원(2012년 기준)으로 같아진다. 그런데 일본 국민소득의 66% 수준인 우리나라 퇴직공무원의 연금은 평균 월 227만원으로 38%가량 많다.
공무원연금 대타협기구 회의에서 김성숙 국민연금연구원장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개혁을 통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지급률을 0.92%로 낮춰가고 있다며 고통분담을 촉구했다. 하지만 야당과 공무원단체에서는 곧바로 "하향 평준화도 반쪽 연금도 안 된다"는 주장만 고수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일본에 지면 무척 원통해한다. 하지만 일본은 해낸 연금개혁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일본은 2100년까지 재정안정 기반을 닦았는데 우리 정치권과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걸까. jaelim@sed.co.kr
임웅재 논설위원 겸 노동복지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