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사 내부 기류가 심상찮다. 사분오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업계 내부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이달부터 평균 2.5% 인하되는 자동차보험료가 가져온 결과다.
자동차보험 중심의 중소형사들은 대형 업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기 급급한 탓에 자신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선거정국 속에서 관료를 얼굴로 내세운 정치권에 의해 강압적으로 자동차보험료 인하가 추진되면서 업계에 내재돼 있던 갈등이 본격적으로 내연하고 있는 셈.
온라인 자동차보험 업체의 한 관계자는 1일 "장기보험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갖춘 대형사들이 자동차보험료를 낮추라는 정부 압박을 들어주고 뒤로는 자신들의 캐시카우라 할 장기보험 분야에서 이득을 챙기는 것 아니냐"며 거북한 속내를 토로했다. 그는 "올해는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 2월 금융감독당국이 4개 대형사 관계자만을 불러 보험료 인하를 논의했다"며 "방침이 정해지면 그냥 따라가라는 뜻으로 작은 업체는 배제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극화로 동상이몽 노골화=같은 손보사라고 해도 최근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에 이해관계는 판이하게 엇갈리고 있다. 대형사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장기보험 60% ▦자동차보험 20~30% ▦법인보험 10~20%로 자동차보험 비중이 낮다. 대형사들은 2008년부터 장기보험 비중을 크게 늘려왔고 그 덕분에 수익도 급증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4~12월 삼성화재는 자동차보험에서 306억원 적자를 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장기보험에 크게 기댄 운용수익 등에 힘입어 5,685억원의 흑자를 올렸다. 실적만 보면 대형사들에 자동차보험은 사실상 계륵에 가깝다. 고객 기반 확보 차원에서 큰 욕심 내지 않고 자동차보험을 들고 간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에르고다음다이렉트ㆍ하이카다이렉트ㆍ더케이손해보험ㆍAXA다이렉트 등 자동차보험 위주의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동차보험료를 인하해야 한다. 대형사도 수백억원의 적자가 나는 판국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게 된 형편이다.
통상 하반기에 자동차보험료가 조정되던 관례를 깨고 급작스럽게 4월부터 보험료가 내리는 점도 부담스럽다. 한 중소형 손보사 관계자는 "우리는 대형사들에 비해 일주일여 뒤인 오는 7일께부터 보험료를 낮출 것 같다"며 "자동차보험료 인하가 손보 업계 양극화 심화를 부추겨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치로 업계 생존경쟁 가속화될 듯=중소형 손보사들은 보험료 인하 효과가 작은 자동차보험이 물가잡기의 볼모가 된 데 대한 억하심정이 상당하다.
이들은 장기보험료 인하가 서민 주머니 사정에 기여하는 정도가 더 큰데도 일단 생색내기에 좋은 자동차보험료 인하가 졸속으로 추진되면서 다른 보험료 인상에 대한 면죄부가 발급됐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업계 사정에 밝은 관료들이 대형사들과 일종의 짬짜미를 한 게 아니냐는 혐의가 자리한다. 한 온라인 자동차보험 관계자는 "물가잡기의 진정한 타깃이 돼야 할 장기보험은 자동차보험 뒤로 숨어버렸다"며 "금융감독당국도 중소형 업체의 입장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업계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대형사들과 일종의 불온한 담합을 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자동차보험료 인하 발표가 나온 후 손보사들은 실손의료보험ㆍ연금보험 등의 보험료 인상을 발표한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손해보험사의 경우 100세까지 보장되는 장기보험 상품도 취급하게 되면서 변액보험을 제외하고는 생보사가 팔고 있는 사실상 모든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관치가 개입되면서 구조조정 혹은 인수합병을 비롯한 이합집산 등 기업들의 생존경쟁이 심해질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