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전문가 군트람 볼프 브뤼겔 연구소장 (사진은 국제부 화상에)
“유럽 경제가 바닥 탈출과 잃어버린 10년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1~2년간 유럽 정부의 정책적 대응이 유럽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유럽의 경제전문가인 군트람 볼프 브뤼겔 연구소장은 지난 18일 서울경제와의 이메일인터뷰에서 최근 유럽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회생의 길로 들어섰다고 낙관하기는 이르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 경제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부실 은행의 처리와 유럽내 국가간 경쟁력 갭을 메우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5년 설립된 브뤼겔 연구소는 EU의 떠오르는 싱크탱크다. 본부는 브뤼셀에 두고 있으며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장이 이사회장을 맡고 있다. 군트람 볼프 소장은 유럽연합집행위원회에서 거시경제와 구조개혁 업무를 담당한 유럽지역경제와 금융제도 전문가로 올해 소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1월에는 세계경제연구원 초청으로 방한, 강연을 가진바 있다.
볼프 소장은 유로존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를 기록하며 18개월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데 대해 유럽 경제가 바닥을 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도 “여전히 회복세가 약하고 남유럽 국가들은 침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속도로는 내년에도 의미 있는 수준의 고용개선은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의 본격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역내 부실은행 처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 없이는 실물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볼프 소장은
“이들 은행들이 부실기업에 대한 여신은 지속해 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을 방해하고, 정작 돈이 들어가야 할 생산적인 기업들에게는 신규 대출을 꺼리고 있다”며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면서 은행 스스로도 생명만 연장해가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은행연합(banking union)이 조속히 이뤄지고,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유로존은 내년 은행연합의 첫 단계로 그동안 각 나라의 금융감독기구가 맡아왔던 은행감독권을 유럽중앙은행(ECB)으로 단일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부실은행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부실채권을 처리할 창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것 역시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볼프 소장은 예상했다.
부실은행들은 대부분 남유럽 은행들이고, 재정상황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은 돈을 낼 여력이 없어 결국 부실정리기금은 독일, 프랑스 등 여력이 있는 국가와 이들 나라 은행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문제 때와 마찬가지로 유럽국가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하고, 금융시장의 진통도 이어질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유럽국가간의 경쟁력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유럽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볼프 소장은 내다봤다. “유로화 도입 초기 독일과 남유럽 국가의 물가와 임금 차이가 20% 이상이었다. 갈수록 그 차이가 줄었다. 임금과 물가가 상대적으로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에서는 올라간 반면, 독일에서는 안정되면서 역내 불균형이 심화됐다” 고 그는 전했다.
재정위기 이후에도 남유럽의 임금이 여전히 높게 유지되자, 결국 기업들은 명목임금을 깎기보다는 구조조정을 선택하고 이는 고실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그는 “남유럽 국가의 인건비는 더 떨어지고 독일은 반대로 올라야 한다”며 “최근 이런 추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더 복잡하게 얽혀있다. 볼프 소장은 “남유럽 국가들의 인플레가 최근 낮아지고 있지만 이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이들 국가를 자칫 부채 디플레 상태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질 GDP 성장이 거의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물가마저 오르지 않으면 GDP대비 부채 비율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남유럽 국가의 신용도 유지를 위해서 인플레를 너무 낮게 유지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결국 경쟁력이 떨어지는 남유럽과 물가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 독일 등의 인플레는 더 높아야 한다는 얘기다.
볼프 소장은 유럽연합의 미래를 위해서는 독일과 프랑스와 같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나라들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이 자국내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올리고 EU 평균보다는 높은 인플레를 유지해줘야 남유럽 국가들이 고용 시장을 개혁하고 국가신용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독일과 프랑스가 자국내 공공투자를 늘려 수요를 확대시키는 것이 좋은 해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볼프소장은 “유럽이 잃어버린 10년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가 있지만 정책적으로 대응만 잘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