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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부실공기업의 대표 사례로 꼽혀왔다.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466%. 빚더미에 앉은 이유를 물을 때마다 LH측은 “보금자리주택처럼 적자 사업들을 정부가 밀어붙여 왔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국민을 위해 밑지고 장사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곧잘 아파트나 택지 등의 공공분양가격을 현실화(인상)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그런데 정부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 용역을 줘 조사한 결과, LH는 원가보상률이 115.7%(2011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원가가 평균 100원이라면 판매가격은 여기에 15.7원 더 남는 평균 115.7원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일부 개별 사업에선 손해를 봤을 지 모르나 전반적으로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원가 이상 매출을 올리고도 빚더미에 앉은 공기업들은 LH 이외에도 수두룩하다. 조세연구원이 지난 2월 부채상태 ‘위험’, ‘요주의’로 지목한 공기업 대다수가 안진 용역조사에선 100%을 웃도는 원가보상률을 기록했다. ▦부산항만공사 188.7%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173.0% ▦석유공사 150.8% ▦도로공사 137.5% ▦지역난방공사 110.0% ▦수자원공사 110.0% ▦동서발전 104.6% ▦가스공사 103.6% 등이었다.
이처럼 원가 이상의 가격을 받고 영업을 했으면서도 빚을 잔뜩 졌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공공요금 인상이나 정부 재정지원과 같이 국민에 손을 벌리는 식으론 부실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적자의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공기업 스스로 다른 부실의 원인의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한층 더 뼈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안진의 계산방식에 문제가 있거나 기준이 상이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안진은 각 공기업들로부터 최종 검수를 거쳐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조사의 기초가 된 데이터는 각 공기업들이 공시한 경영자료와 안진의 질의에 회신한 자료들이었다.
한국전력의 경우처럼 안진의 조사에서도 원가보상률이 100%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한전의 경우도 스스로 주장하는 원가보상률(87.4%)보다 경미한 94.0%이었다는 게 안진의 조사 결과다.
정부도 공기업들이 적자를 주장하며 공공요금을 올리는 폐단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고삐를 강하게 죄겠다는 방침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공기업들의 공공요금 원가 내역 등에 대한 공시를 더 투명하게 하고 원가 산정을 보다 엄격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기재부는 지난 14일 새 공공요금 산정기준을 담은 훈령을 발령했다. 공기업들이 관련법 등에 의해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공공서비스(규제서비스)와 무관한 비용까지 원가로 집어 넣어 공공요금 원가를 부풀리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게 새 훈령의 골자다.
다만 새 훈령은 전기요금, 도시가스요금, 철도요금, 도로통행료, 광역상수도 요금처럼 관련 법령에 따라 직접적인 정부 통제를 받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나머지 공기업들은 사각지대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어서 보완책이 요구된다.
적자기관은 아니지만 원가의 약 2배, 3배에 달하는 매출을 올려 공공기관으로선 과도한 마진을 붙이는 것 아닌지 논란을 살 수 있는 공공기관들도 있다. 이들의 원가보상률을 보면 ▦수자원공사 381.1%(기금계정 제외시 415.3%) ▦주택금융공사 206.8%(〃 137.6%) ▦울산항만공사 225.6% ▦대부사업 등을 하는 별정우체국연금관리단 225.6%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