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덕우 전 총리에 대한 두터운 신임을 단적으로 표현했던 말이다. 이 말은 두고두고 경제관료들 사이에 회자될 정도로 남 전 총리는 존경과 부러움을 산다. 박 전 대통령의 신뢰에 보답하듯 남 전 총리도 '한강의 기적'의 뼈대가 된 경제정책을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그 스스로 자서전을 통해 "박 대통령의 강력한 정책의지를 시장경제 이론의 틀 안에서 소화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남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를 이어 인연을 이어왔다. 단순히 인간적 인연이 아니라 그들의 경제정책을 온몸으로 뒷받침했다. 아버지의 '경제정책 교사'에 이어 딸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키운 제자들은 박 대통령의 경제 자문그룹으로 가운데에 섰다.
남 전 총리가 밝힌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이렇다. 미국에서 석사·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1960년 한국에 돌아온다. 국민대를 거쳐 서강대에 둥지를 튼 그는 1965년 '가격론'이라는 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1966년 2월에는 이승윤ㆍ김병국 교수와 함께 '통화량 결정 요인과 통화정책의 방향'을 작성한다. 보고서는 한국의 재정ㆍ통화정책을 쥐락펴락하던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융정책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재무부 등은 보고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으나 박 전 대통령은 이들을 주목한다.
3년 뒤인 1969년 10월.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전갈을 받는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접견실에 온 그에게 "남 교수,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라고 했고 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임기가 끝나면 대학강단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던 그는 3ㆍ4공화국에 이어 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14년간 관료생활을 이어갔다. 남 전 총리가 경제특보로 있던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 방법은 엉터리다.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나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그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타계로 인연은 끝난 듯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딸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도 이어진다. 그는 박 대통령의 경제인맥과 정책수업을 든든하게 지원하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남 전 총리는 지난 2002년부터 후원회장을 맡았고 17대 대선이 있던 2006년 경제자문회의 단장으로 캠프에 합류했다. 경제자문단에는 성균관대 교수 출신인 안종범 의원,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남편인 김영세 연세대 교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등이 포진해 있었다. 이들은 추후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 합류해 지난해 18대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활약하며 대선 승리에 힘을 보탰다. 남 전 총리는 원로자문단을 주도하면서 신구 양축의 브레인을 사실상 완성했던 셈이다. 남 전 총리는 특히 김 원장에게 "박 전 대표를 도와달라"고 따로 부탁할 만큼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김 원장은 '5인 공부모임'을 만들어 새 정부의 경제기틀을 완성했다.
박 대통령은 3월13일 국가원로 12명을 청와대에 초대했을 때 남 전 총리를 함께 초청했다. 취임식 다음날 외교사절을 만난 후 가진 첫 오찬행사였다. 남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 가치와 시장경제 준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