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에서 만개한 계몽주의는 이성을 통해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런 인식을 기초로 합리적인 질서를 세워나가려는 사상적인 운동이다. 근대의 문턱에서 활약한 당시 최고의 지성 중 한명으로 꼽히는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그러나 이성만으로는 인간을 위한 새로운 질서가 이뤄진다고 믿지 않았다. 이성은 올바른 감성과 도덕에 기초를 둬야 진정한 의미의 합리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그가 계몽주의 사상의 주류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사상가로 분류되는 까닭이다. 루소는 이성과 진보의 논리에 반기를 든 문명 비판자였으며 불평등의 기원을 탐색한 사상가였다. 독학으로 음악학, 식물학, 정치학, 교육학 등 분야를 넘나들었다. 문명과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 교육학의 고전 '에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회계약론', 자기 성찰적 자서전으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 영향을 미친 '고백록'에 이르기까지 루소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탐구하고 현실에 도전했다. '사회계약론'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있다"는 도전적인 머리말로 시작된다. 프랑스 대혁명의 주역인 로베스피에르는 평생 동안 루소를 정신의 스승으로 섬겼다. 괴테는 "볼테르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루소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시작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책은 미국 하버드대 문학 담당 리오 담로시 교수가 10년에 걸친 조사와 집필 끝에 완성한 루소의 평전이다. 저자는 스위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을 오갔던 루소의 삶의 궤적, 주요 저작, 그가 남긴 편지와 기록들을 통해 루소의 삶을 심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루소는 그 자체가 역설적인 존재였다. 한편에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아나키즘의 옹호자인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사회주의 또는 전체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에밀'이라는 불후의 교육론을 썼지만 그 자신은 친자식 다섯 명을 모두 고아원에 버린 모순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출세작인 '학문예술론'에서 문학을 비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지만 낭만적인 연애소설 '신 엘로이즈'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세상에서 가능한 단 하나의 완벽한 생활은 가정 생활이라고 말했으나 정작 자신은 가정을 제대로 이루지 않았다. 아이가 요람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에밀'은 루소가 고아원에 맡긴 자식들에 대한 참회와 속죄의 마음을 담은 저술이기도 하다. 저자는 바로 그런 역설, 숱한 심리적 갈등이 루소가 고안한 '인민의 의지에 따르는 사회계약'이라든가 '자아 정체성에 대한 탐구' 등을 이끌어낸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독창적 사상이 모순과 갈등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귀족들의 후원을 거부하고 가난과 고독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시대와 불화한 사상가 루소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정부로부터 볼테르와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아버지'로 추앙됐다. 3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