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비빈정책/최창환·정경부(기자의 눈)

최근 과천 경제부처에는 갑자기 「비빈정치」, 「비빈정책」이니 하는 은어들이 나돌고 있다.주요 정책이 청와대와 실무부처간에, 정부 여당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결정되지 못하고 대통령의 지근에 있는 특정인이나 소수그룹이 대통령을 설득해 불쑥 터뜨리는 관행을 비꼰 말이다. 과거 왕조시대때 임금의 총애를 받는 내실들이 조정대신을 제치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것처럼 정부의 공조직보다 대통령의 총애를 담보로 정책을 만드는 사례가 잦다는 불만을 깔고 있다. 「비빈정책」의 대표적 예로 금융개혁위원회 설립과 노동법 개정이 꼽힌다. 김영삼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금개위 설립방침을 밝히자 우리나라 관료사회로선 보기드문 일이 벌어졌다. 재경원의 일부 관료들이 노골적으로 청와대 처사에 불만을 표시하고 나섰다. 재경원을 배제하고 청와대 단독으로 이뤄진 이번 금개위 구상이 금융현실을 외면한 시도라는 것이다. 청와대 참모진의 독주를 겨냥한 반발이다. 이번 갈등의 공방에서 재경원 금융정책실은 기득권 옹호를 위한 「개혁저항세력」으로 치부되고 청와대 참모진은 물정모르고 나서는 「문외한」으로 몰리는등 「상처」만 주고받았을 뿐이다. 노동법개정 과정도 「비빈정치」사례로 지목된다. 노동계 파업을 유발한 원인중의 하나인 복수노조 3년유예 조항이 언제 누구에 의해 전격 삽입되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판에 신한국당과 정부부처, 청와대 참모진들은 서로 사태악화의 책임을 떠넘기느라 바쁜 모습이다. 왕조시대에는 『마마 아니되옵니다』라는 직간이 적지 않았으나 안타깝게도 이번 노동법 처리때는 집권여당의 대권주자들조차 목소리를 낮췄다가 뒤늦게 뒷머리를 긁적이는 광경만 기억될 뿐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위해 측근 참모들이 정책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은 직무상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의 기간조직이 노골적으로 반발할 정도라면 어딘가 문제가 있다. 정책수립과 시행과정에서 정부조직과 집권당이 하청업자로 전락한 전례를 우리는 권위주의 정권때마다 수없이 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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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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