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수훈 윤성 사장(창업스토리)

◎“몇년내 콘지관기계시장 완전 석권”/수차례 시행착오 딛고 부품단순화로 저가 생산/창업 8년만에 독 누르고 세계시장 80% 차지/튜브지관기계·플랜트로 사업영역 확대 계획경제가 급변하고 있는 것과 함께 업종의 다각화 및 세분화로 인한 창업의 분야도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 특히 첨단 정보통신 분야의 경우는 하루가 멀다하고 관련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기업간 협업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틈새시장을 겨냥한 창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본지는 지면 확충을 통해 창업으로 성공한 기업인들의 귀감이 될만한 뒷얘기들을 상세히 소개, 예비창업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자 한다.<편집자주> 정수훈 (주)윤성 사장은 38세의 나이로 세계 제1의 콘 지관기계 업체를 일구어낸 화제의 30대 사장이다. (주)윤성은 콘 지관 자동제조설비 분야에서 전세계시장의 80%를 석권하고 있는 중소 전문기업이다. 종업원 35명에 연간 매출액 40억원규모의 중소기업이지만 콘 지관기계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등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사장이 8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경쟁사를 물리치고 세계시장을 장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8년. 그동안 세계 콘 지관기계 시장을 독차지해온 독일의 크리스찬 마이어사는 지난 80년 동안 1백대의 콘 지관 기계를 공급해왔다면서 자사홍보 카탈로그에서 자랑하고 있는데, 윤성은 7년만에 1백대를 돌파하고 세계시장 완전장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사장이 8년전인 지난 88년, 30세의 나이로 사업을 시작할 때 가진 것이라곤 콘 지관기계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어떻게든 성공해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절박감 뿐이었다. 그래서 회사명도 아들과 딸의 이름을 따 윤성으로 지었다. 58년 안양에서 태어난 정사장은 79년 안양공고를 졸업한 후 바로 지관생산업체인 (주)수원지관에 입사했다. 지관이란 종이로 만든 관으로 화장지나 포장지, 옷감, 실 등을 감는 용도로 사용된다. 지관은 크게 2가지 종류로 나누어져 굵기가 똑같은 튜브 지관과, 앞이 가늘고 뒤쪽 지름이 큰 원뿔형 콘 지관으로 분류된다. 원뿔형의 콘 지관은 주로 방적업체에서 실을 감는데 쓰인다. 정사장이 수원지관에 근무하던 당시 국내 지관업체들은 인력절감과 생산량 증대를 위해 수동기계를 자동으로 바꾸고 싶어했지만 여의치 못한 상황이었다. 외국으로부터 들여와야 하는 자동제조설비의 가격이 비싼데다 기계를 도입해도 운영기술이 부족, 고장이 발생할 경우 속수무책인 실정이었다. 지관 자동생산설비는 만들기가 무척 까다로운 품목으로 꼽힌다. 이유는 지관의 원자재가 균일치 못한데 있다. 지관은 신문지 등으로 생산된 최하급 재생종이를 둥글게 말면서 접착제로 붙여 만들어지는데 재생종이의 지질과 수분이 천차만별, 제조라인에서 잦은 고장을 일으키게 된다. 이 때문에 자동 지관제조기계는 다양한 종류의 원료를 모두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 자동 지관기계 중에서도 콘 지관제조설비는 기계장치가 복잡하고 비싸며 연속작업도 쉽지 않다. 정사장은 지관업체 근무 5년을 넘기면서 기계를 국산화해보자는 결심을 굳혀갔다. 84년 5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동업으로 지관기계회사를 차리자고 제의해왔다. 사업계획의 요지는 각각 1천2백만원씩을 투자해 지관기계를 국내 생산하자는 것이었다. 정사장은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연상의 동업자와 함께 삼우기계를 설립했지만 동업자와 뜻이 맞지않아 중도포기하고 말았다. 1천2백만원을 날린 채, 빈 몸으로 회사를 빠져나온 정사장은 다시 지관업체의 월급쟁이로 들어갔다. 국내 섬유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생산설비를 자동화해갔다. 섬유공장의 자동설비에는 지관도 수동생산품은 쓸 수 없고 자동제조된 콘 지관을 사용해야만 했다. 지관업체들로서는 어서 빨리 자동 콘 지관기계로 대체해야 했지만, 외국에서 자동기계를 들여오자니 부담이 적지않고 제대로 가동할 자신도 서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관업체의 사장들이 정사장을 찾아와 『만들기만 하면 구입할테니 개발만 하라』고 재촉했다. 정사장은 두번째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집에서 자동기계 제작에 매달렸다. 독일산 기계를 모델로 하되 부품을 크게 단순화하고 공정을 개선, 기계 제조원가를 크게 줄이기로 기본방향을 정했다. 사무실이 없어 수원시내 집에서 자와 제도기를 들고 기계 설계도를 그렸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국산 지관기계는 가격면에서 독일산의 25%수준으로 매우 저렴했다. 하지만 고장이 잦아 생산수율은 80∼90%에 불과했다. 정사장은 멈춰선 기계를 고쳐주느라 곤욕을 치르면서 귀중한 노하우를 쌓아갔다. 자신감을 얻은 정사장은 이 돈으로 88년12월 윤성기계를 설립하고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2백평 규모의 임대공장에 10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 본격 기계제작을 시작했다. 밀려드는 주문으로 윤성기계는 24시간 철야작업에 돌입했다. 공장이 비좁아 계속 임대면적을 확장, 마침내는 2백평 공장을 모두 사용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정사장은 기계의 공급가격을 낮추기 위해 부품의 단순화를 계속 추진하고 대량생산전략을 구사했다. 독일산 기계가 대당 4억원인데 비해 윤성의 국산기계는 6천만원에 불과했다. 국내 지관회사들이 윤성의 기계로 경쟁력을 높여가자, 대만업체들이 수원의 윤성기계 공장으로 몰려왔다. 정사장은 대당 수출가격을 내수공급가 6천만원보다 훨씬 비싼 1억원으로 제시했다. 그래도 독일산에 비해 4분의 1에 불과해 대만업체들은 먼저 공급해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정사장은 사업이 본궤도에 접어들자 93년 1월 윤성기계를 (주)윤성으로 법인전환하고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융건릉 맞은편에 대지 1천2백평 규모의 자가공장을 마련했다. 자가공장 마련을 계기로 (주)윤성의 활동영역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으로 넓혀졌다. 종업원 2만5천명으로 세계 최대의 지관생산업체인 미국의 소노코사는 독일산 기계를 한국산으로 전환, 완전히 윤성의 기계만을 쓰고 있을 정도다. 가격이 싼 점도 있지만 기계구성과 부품이 간단해 고장이 거의 없는 등 품질면에서 한국산이 훨씬 우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년내 세계시장을 완전 석권한다는 목표아래 공장증설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금 경기도 팔탄에 제2 지관기계공장을, 안성에는 새로운 지관생산공장을 건설중인데 올해안에 완공되는대로 시장규모가 큰 튜브지관기계도 만들어낼 생각입니다.』 정사장은 단순한 기계제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관 신제품과 설비를 결합해 수출하는 플랜트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라며 포부를 밝혔다.<최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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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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