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보험/신설생보 무엇이 문제인가/「지급여력제」 족쇄로 불실 악순환

◎6공초 3년간 27사나 인가, 과당경쟁 부채질/당국 섣부른 실적채근으로 업계문제아 전락/해당 신설사도 내실경영 통한 자립 모색을『신설생보사 얘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깨곤 합니다』 최근 재정경제원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험정책을 주관하는 한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실로 난감하다는 푸념이었다. 신설생보사 문제는 말그대로 난마처럼 얽혀 있는 실타래라 할 수 있다. 또 잠복기에 들어간 휴화산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뭔가 중요한 허점을 안고 있기는 한데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이에따라 현 상태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정도로 인식됐던 생보시장이 어느새 부실 금융기관들의 집합소로 전락해 버렸다는게 정부당국의 시각인듯 싶다. ○해결책 안보인다 하지만 신설사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게로 돌아간다. 시장 수급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무분별하게 신규사업 인가를 내준 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6공 정부는 지난 88년부터 91년까지 3년사이에 무려 27개의 생명보험 신규사업 인가를 무더기로 남발했다. 보험업계의 문제아로 떠오른 신설생보사들이 대거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종전까지 6개 기존사들이 분할점령해왔던 보험시장에 새로 27개의 신설사들이 끼어들다 보니 업계간 과당경쟁은 불을 보듯 뻔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당시 신설사들이 기존사와 경쟁할 수 없는 초보운전 상태였다는 점이다. 대형 생보사들조차도 20여년 이상의 투자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흑자로 돌아섰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신설사들이 처음부터 흑자를 내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결과는 뻔했다. 95회계년도말인 지난 3월말 현재 6대 기존사의 시장점유율은 73.1%인 반면 나머지 신설사들은 26.9%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수익을 낸 회사는 삼성 대한 교보등 5개 대형사에 불과했고 나머지 생보사들은 무려 9천5백87억원 상당의 적자를 감수해야만 했다. 보험산업은 재료가 들어가면 곧바로 완제품이 나오는 일반 제조업과는 차원이 다른 시장이다. 재료가 투입된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이 지나야만 아웃풋이 나온다. 또 재료에 덧붙여 설계사 수당, 경품등 각종 첨가제가 함께 들어가야만 그나마 제대로 된 완제품을 기대할 수 있다. 신설사가 사업초기부터 과다한 사업비를 투자한 것도 이같은 보험영업 행태상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보험시장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채 곧바로 신설사들의 실적부진만을 채근하고 나섰다. 지난 94년 도입된 지급여력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지급여력제도는 생명보험회사의 경영이 악화돼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생보사로 하여금 항상 일정수준의 자금을 확보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취지인즉 옳다. 그러나 지급여력 제도는 두가지 측면에서 원초적인 문제를 안고 도입됐다. 우선 수십년의 역사를 거쳐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기존 생보사와 이제 막 영업에 나서 아웃풋이 나오려면 아직도 상당기간이 더 소요되어야만 하는 신설사를 동일한 기준선상에 놓고 평가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신설사들로서는 벅찬 경쟁이 아닐 수 없다. ○걸음마 단계서 도입 또 도입시기에도 문제가 있다. 지급여력 제도가 도입된 94년은 신설사들의 사업비 이연상각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그동안 누적된 비용이 한꺼번에 손익에 반영되는 시점에 때맞춰 지급여력 제도가 도입되다 보니 지급여력 부족액은 그만큼 더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설사들의 영업능력 제고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지급여력 확보를 위한 증자부담은 신설사들의 손발을 묶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지급여력 부족액을 채우기 위해서는 증자가 가장 손쉬운 방법인데 이는 대주주들의 주머니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현실적 한계를 안고 있다. 신설사로서는 부득이 초과사업비 절감과 금융형 상품 판매축소등 색다른 자구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보험사의 영업무기인 사업비 축소로 이어져 결국 일선 영업여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설사들은 지급여력 때문에 영업이 위축되는가 하면 영업악화로 인해 또다시 지급여력 부족액이 갈수록 늘어나는 묘한 악순환에 빠져 있는 셈이다. ○재벌금력 이용 한계 지난해 3월말 현재 17개 생보사의 지급여력 부족액은 무려 1조2천39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올들어서는 1조5천억원선을 넘어서고 회사별로 지급여력 부족액이 1천억원대를 초과하는 보험사도 다수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로서도 지급여력 문제를 방관할 수 만은 없는 처지에 놓였다. 재경원은 그동안 상반기중 증자를 단행할 경우 두배로 인정해주고 또한 초과사업비 절감분을 지급여력에 반영해주는 등 나름대로 지원책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들은 모두 곁가지를 치는데 불과한 편법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부는 급기야 지난 18일 대형 5대재벌을 포함한 모든 기업이 생보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획기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대기업들의 자금력을 이용해 부실생보사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 역시 사별로 1천억원선을 넘어서는 증자부담과 과도한 매각프리미엄 요구등으로 인해 전반적인 M&A활성화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정책적 해결책이 아닌 재벌의 금력을 이용한 사태해결이라는 점에서 정부역시 경제력 집중을 옹호했다는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신설생보사가 보험사로서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아직도 수년의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채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어른과 똑같은 행실을 요구한다면 이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정책적 대안 제시를 정부가 신설생보사 문제를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보다 현실감있는 지원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곁가지 치기가 아닌 원론적인 측면에서 지급여력 문제를 재고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신설생보사들의 견실한 성장을 지원할 수 새로운 방책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애초에 무더기로 설립인가를 내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더 이상 책임 못지겠으니 알아서들 살아가라는 식의 태도는 무책임의 극치다. 아울러 해당 신설사들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의 과당경쟁에 나서기 보다는 분수에 맞는 내실경영을 통해 진짜 알짜배기 회사로 키워나가는 노력을 병행해야만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부실한 재무구조를 조금씩 개선해 나가고 스스로의 자립근거를 확보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신설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