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이하 한국시간) 사임 의사를 밝힌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진작 옷을 벗었어야 할 부패의 핵심으로 지목돼왔지만 여자 축구 부흥이라는 업적도 남겼다. 남자 축구에 철저하게 가려 있던 여자 축구는 1991년 자체 월드컵이 생긴 뒤 빠르게 발전했다. 블라터는 지난 2004년 여자 선수들이 핫팬츠 같은 옷을 입어 흥행을 도와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월드컵 창설과 규모 확대에 앞장서고 TV 중계 활성화를 이끄는 등 여자 축구에 있어서는 공이 크다. 자신을 여자 축구의 '대부'라고 지칭해온 블라터는 "5선에 실패해도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는 참석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5선에 성공한 블라터는 그러나 점점 조여오는 미국의 수사망에 당선 1주일도 안 돼 사의를 표명했다.
7일 캐나다에서는 제7회 여자 월드컵이 개막한다. '포스트 블라터 시대'의 첫 번째 국제 대회가 공교롭게도 블라터가 가장 아끼는 여자 월드컵이다. 블라터를 끌어내린 미국이 역대 월드컵 두 차례 우승을 자랑하는 대표 강국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사의는 밝혔지만 12월까지는 자리를 지키겠다는 블라터가 여자 월드컵 결승 현장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관심이다.
국내 팬들의 관심은 '여자 메시' 지소연(24)의 발끝으로 쏠린다.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골을 몰아치며 한국을 3위에 올려놓았던 지소연은 지난 시즌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에 진출하자마자 19경기에서 9골을 터뜨렸다. 4월 WSL과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는 지소연에게 차례로 올해의 선수상을 안겼다. 지소연을 앞세운 첼시는 올 시즌도 리그 선두다. 미국 스포츠매체 블리처리포트는 이번 대회 톱50 플레이어를 소개하며 지소연을 22위에 올려놓았다. 1위는 여자 축구의 '영원한 간판' 마르타(29·브라질). 지소연은 첫판부터 마르타와 맞닥뜨린다. FIFA랭킹 18위인 한국은 10일 오전8시 몬트리올에서 브라질(7위)과 E조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르고 14일 코스타리카(37위), 18일 스페인(14위)과 차례로 맞붙는다. 사상 최다인 24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서는 6개 각 조 1·2위뿐 아니라 3위 팀들 가운데 상위 네 팀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어 12년 만에 본선을 밟은 한국도 사상 첫 16강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국 NBC스포츠는 "E조는 네 팀이 모두 훌륭한 플레이메이커를 둔 기술적인 팀들이라 가장 흥미로운 조일지 모른다"라고 전망했다.
지소연은 마르타가 버티는 브라질을 월드컵 사상 첫 승 제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마르타는 FIFA 올해의 선수 다섯 차례 수상에 2007년 월드컵 최우수선수(MVP)이자 득점왕이다. 월드컵 최다 득점(14골) 기록도 보유한 슈퍼스타지만 한국은 지난달 31일 FIFA랭킹 2위 미국과의 원정 평가전에서 득점 없이 비긴 자신감으로 마르타마저 봉쇄하겠다는 각오다. 윤덕여 감독이 이끌고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 3위, 같은 해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 멤버가 주축이 된 대표팀은 '황금세대'라 불린다. 4일 미국 프로팀과의 60분짜리 연습경기에서 이소담(2골·스포츠토토)과 전가을(현대제철), 박은선(로시얀카), 지소연의 골로 5대0 대승을 거둔 대표팀은 5일 캐나다에 입성한다.
이번 대회 개막전은 7일 오전7시 에드먼턴에서 열리는 캐나다와 중국의 A조 첫 경기다. 우승 후보로는 애비 웜바크(A매치 242경기 182골)를 앞세운 미국과 유럽 예선 10전 전승의 독일이 1순위를 다툰다. 여자 축구 강국 북한은 2011년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 일부가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여 이번 대회 참가가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