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한 덕분에 선행 기술에 대한 준비와 상품 개발의 자신감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강점인 융복합 정보기술(IT) 역량에 틀을 깨는 창의력을 더해 시장의 판을 흔들어야 합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 2013년 9월 열린 임원 세미나에서 이 같은 주문을 던졌다. 자동차부품(VC) 사업본부를 새로 만들어 관련 분야 육성에 뛰어든 직후였다.
그로부터 1년반여가 흐른 지금 LG는 차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그룹의 사업 모형을 입체적으로 다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LG가 메르세데스벤츠·폭스바겐 등 글로벌 일류 완성차 업체와 잇달아 제휴에 성공하는 등 새로운 먹거리를 확실히 낚아채면서 "그룹의 무게중심이 전자·화학에서 자동차로 이동한 것 아니냐"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룹의 성장동력을 보충하기 위한 '보완재' 차원이지, 사업 모형 전반을 완전히 바꾸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스마트폰과 TV 등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추세인 만큼 과감한 인수합병(M&A) 등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또 다른 승부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 계열사의 차 부품 체제 구축…완성차 회사와 시너지 발휘=2005년 LG전자가 자동차 내비게이션 분야에 발을 들인 후 8년가량이 지난 뒤인 2013년 그룹은 전사적 차원에서 본격적인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섰다.
구 회장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차 부품을 지목하면서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조직을 통합해 VC사업본부를 신설한 것. LG전자·LG이노텍·LG디스플레이·LG화학 등 '전 계열사의 차 부품 체제'가 이때 처음 갖춰졌다.
LG의 한 관계자는 "2012년 신설된 그룹 시너지팀에서 전략 마련에 몰두하면서 계열사 간 협업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며 "올해 6월 첫 삽을 뜨는 마곡 R&D센터도 협업 기능의 최적화에 초점을 맞춰 지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LG의 야심은 IT융합 기술의 확산과 외연 확대로 전자회사와의 협업을 시도하는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실제 LG전자는 최근 메르세데스벤츠와 무인차의 핵심 부품인 '스테레오 카메라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폭스바겐·구글 등의 업체와도 기술 협업에 나서고 있다. 또 LG이노텍 역시 미국 크라이슬러에 차량용 발광다이오드(LED)를 지난달부터 공급하기 시작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월 미국에서 열린 CES가 자동차 회사들의 경연장으로 자리잡은 것만 봐도 구 회장의 선견지명이 제대로 들어맞았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VC를 포함한 독립사업부 등의 지난해 매출액은 3조5,514억원으로 전년 대비 6% 늘었고 영업이익도 2013년 442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982억원 흑자로 전환됐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1·4분기부터는 매출과 영업이익 등 VC사업본부의 별도 실적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TV·스마트폰 등 기존 전자 부문 혁신 필요=환골탈태에 가까운 고강도 혁신에도 업계에서는 LG가 새로운 비상을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스마트차와 사물인터넷(IoT) 등 신수종 사업에 주력하면서 기존 주력 사업의 수익성이 불가피하게 나빠진 탓이다.
실제 신흥국 통화 약세와 가격 경쟁 심화 등으로 지난해 4·4분기 TV 부문 영업이익은 17억원에 불과했으며 스마트폰 판매량 역시 전 분기보다 7%가량 줄었다.
이런 가운데 올레드TV 대중화와 스마트폰 분야에서의 격차 좁히기는 LG가 올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숙제로 지목된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올레드TV를 지난해보다 올해 10배 이상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며 "스마트폰에서도 중국 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고 선두권 업체와의 격차를 줄여 애플과 삼성에 이은 '의미 있는 3등'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삼성의 사례처럼 공격적인 M&A를 시도하는 것도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삼성은 기업 간 거래(B2B)와 IoT, 모바일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근 10개월간 무려 8건의 M&A를 성사시키며 먹거리를 늘려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M&A 없이 자체적인 R&D 기술로만 승부해서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