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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해가 바뀔 때마다 아쉬움을 달래며 새로운 바람을 갖는다. 일년 단위로 나이를 헤아리다 보니 반성과 설계를 함께하는 셈이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현재의 시점에서 경건한 자세로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꿈꾸어보지 않는가. 올 임진년은 12개 동물 중 가장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다는 용의 해다. 그것도 60년 만에 도래하는 흑룡(黑龍)의 해이기에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대와 희망을 내비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사자성어를 통해 한 해에 대한 정리나 전망을 한다. 지난 2011년 청와대는 일기가성(一氣呵成)을 내걸었다.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 단합을 통해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비준을 둘러싸고 국론은 분열됐고 여당의원 보좌관이 관련된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라는 상식 이하의 사건이 터졌고,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교수신문'에서 대학교수들은 지난해의 현실을 엄이도종(掩耳盜鐘)이라고 평가했다.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판이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의미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경시하다 보니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이 많다. 그런데 새해 외교부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은 인권과 대북 정책을 가장 성공적인 업적으로 자평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권문제는 거꾸로 가고 있고 남북관계는 얼어붙어 있다. 북한과는 교류와 협력은커녕 대화조차 못하고 있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 후퇴, 소수자 권익 침해, 노동권 위축, 도가니 사건 등 인권은 바닥을 기고 있다.
올해 청와대는 임사이구(臨事而懼)를 내걸었다. 바깥으로 세계 경제위기와 안으로 총선ㆍ대선이라는 국내외적 큰일을 맞아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우리가 겪을지 모를 갈등과 혼란을 생각하면 지역ㆍ세대ㆍ계층ㆍ이념의 차이를 넘어 서로 포용하는 자세로 예지를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 제발 국민의 소리를 겸허하게 듣고 중지를 모으기를 바란다.
세계는 흔들리고 있다. 미국ㆍ중국ㆍ일본ㆍ인도ㆍ러시아ㆍ프랑스ㆍ그리스 등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권력지도의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국제적 공조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는지 우려된다. 미국과 유럽은 재정압박 아래 엄청난 실업으로 움츠러져 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의 지원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유로존에서 나가려 한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의 민주주의 혁명이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는지도 미지수다.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은 헤게모니 쟁투를 벌이고 있다.
김정일 사후 북한은 세습체제의 정착과 경제회복을 위한 개혁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우리도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획기적 방안을 내놓기 어려운 실정이다.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추구하고 있는 여야 정당이 지역 정당의 꼬리표를 떼고 기본색을 지니는 대중 정당으로 거듭남으로써 민생ㆍ복지ㆍ평화ㆍ통일에 대한 적실한 정책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
돌이켜 보면 올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주년이 된다. 일본이 한반도 진출을 위해 군사력을 키우고 있었을 때 한국은 당쟁에 빠져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서인이던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론'은 민심을 동요시킨다는 동인의 반격으로 무시됐다. 300여년 뒤 한국은 일제에 의해 식민지화되는 비극을 또다시 겪었다. 역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한 결과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총선과 대선을 진중한 정책토론을 통해 갈등과 분열을 상생과 통합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임진년 한 해를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맞이하자.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송현칼럼의 고정필자로 참여합니다. 임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하버드대(사회학 박사)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장과 SK텔레콤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