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책론 무르익고 한은내부서도 “소외”/일부선 “이런 시기에 사퇴라니”비난도이경식 한국은행총재의 사의표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돼왔다.
외환·금융위기가 극한상황으로 치달아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을 요청한 상태에 이른 것만으로도 통화·신용정책 최고책임자로서의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 금융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의 한결같은 판단이었다. IMF긴급자금 유입 이후 금융혼란이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도 이총재에게 짐이 돼왔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3당의 대통령후보 모두가 한은총재에 대해 임기에도 불구, 책임을 묻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은이 IMF 긴급자금 신청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여러차례 보고서 등을 통해 청와대에 건의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는 여론에 묻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총재는 총재직을 계속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를 느껴왔으며 주변 측근들에게도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는 뜻을 내비쳐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의 책임자로 함께 지목됐던 강경식전부총리, 김인호전청와대경제수석 등이 모두 물러난 이후 혼자 자리를 지키기엔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총재는 한은 조직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상태다. 한은 일반직원들은 최근의 한국은행법과 금융감독기구통합 논의 과정에서 이총재의 사퇴를 요구하는 결의까지 내놓았다.
현재 금융계는 이총재의 사의표명을 당연한 수순으로 보면서도 그 시기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한 금융계 인사는 『지금같은 상황에서 한은총재가 무조건 물러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무책임한 처사』라고 평가했다.
외환시장과 자금시장이 마비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통화정책 최고책임자의 갑작스런 교체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다.<손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