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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직장인인 A씨는 자신의 윗사람인 K부장이 상당히 피곤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자료를 구성해 문서를 기안해 가면 K부장은 해당 문서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A씨의 보고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는지 확인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해 와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A씨는 K부장의 지적이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보고한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이 아니라 ‘K부장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미비한 것’ 등을 이것저것 찍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고쳤다가는 ‘누더기 보고서’가 될 것이 뻔한 탓입니다. K부장은 게다가 부하에게 일을 많이 주는 것을 상당한 보람으로 느낍니다. 시킬수록 무엇인가 뽑아져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A 씨의 개인적인 성과 평가와 관련된 일입니다. 그는 지난 분기에도 두번째로 승진에서 누락됐습니다. 주된 이유는 ‘자신이 아끼는 부하에게 편리를 주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결벽증 때문이었습니다. 하기야 A씨가 잦은 보고 때문에 K부장과 친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A는 점점 K의 독특한 성격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고, 조만간 회사를 그만두거나 부서를 옮겨 달라고 인사팀과 협상을 해볼까 고민도 하게 됐습니다.
직장에서 ‘폭군’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들 중에 꼭 화를 잘 내고 상대방의 성과를 빼앗는 상사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말 상을 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자기 사람’이라는 이유로 별로 큰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거리가 있는 인물에게는 기꺼이 당근을 허락하는, ‘꼬여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원칙과 도덕률을 소비합니다. 아니, 자신이 옳은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의사결정자들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다는 인상을 전혀 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좀처럼 인사 시스템에서 걸러지지 않습니다. ‘딸깍발이’ 기질이라고 생각할 뿐이죠.
그러나 자신의 동기만 중요하고, 남의 동기는 그다지 필요 없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는 폭력이라고 보기에 충분합니다. 부하들도 사람이고, 각자의 길이 있는 조직 구성원입니다. 자기 나름의 원칙과 감정을 소비하느라 시간이 하루 이틀 가는 동안, 상대방의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위기 경영이 ‘열심히 회사에 남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뺑뺑이’를 돌리는 사람들도 위기경영의 이미지를 피곤하게 느끼게끔 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제 여러 기업과 조직의 인사팀들은 ‘옳음’의 민낯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또한 혁신할 필요는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iluvny2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