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아! 공간사옥


담쟁이덩굴에 덮인 검은벽돌건물과 도회풍의 유리건물, 그리고 한옥. 3자가 멋 떨어지게 어울리면서 창덕궁 전각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곳. 우리나라 현대건축 최고의 걸작이라는 공간사옥이다. 건축계 1세대를 이끈 고 김수근(1931~1986) 선생의 대표작이다. 바로 뒤가 고 정주영 회장이 세운 현대건설 사옥.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건설 신화의 주인공이 한자리에 공존했다는 게 묘하다. 이런 인연 때문일까. 왕 회장은 공간사옥 인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이 터는 김수근의 집이었다. 빚 때문에 경매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1971년 어렵게 완공한 게 지금의 구사옥이다. 공간은 후예들의 손에 두 번 진화했다. 그가 타계한 뒤 2대 대표로 공간을 이끈 고 장세양은 선배의 걸작 옆에 현대적 이미지의 유리건물을 붙여놓았다. 3대 대표인 이상림은 신구 사옥 사이의 한옥을 증ㆍ개축해 3세대 공존의 미학을 완성했다. 전통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 계승이어야 한다는 선생의 지론을 실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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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을 빼고선 현대건축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형인 건축가 김석철도 김수근의 지도를 받았다. 김원과 류춘수ㆍ민현식ㆍ방철린ㆍ승효상 같은 거장들을 키워낸 곳도 공간이지만 그 탄생에는 시련이 배어 있다. 부여박물관(1967년)의 왜색 논란이 그것이다. 후학들이 엮은 그의 수상록에선 “어머니도 고집부리지 말고 뜯어고치면 어떠니”라고 권유할 정도로 논란은 거셌다. 하지만 그는 “백제 양식도, 일본 양식도 아닌 김수근 양식”이라며 굽히지 않았다. 해프닝은 선생을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 김경수 교수는 ‘건축미학산책’에서 “자기 과시에서 돌아와 옛 정서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게 된 단계의 작품이 공간”이라 평한다.

▲공간은 걸출한 인재를 길러낸 산실이자 문화예술인의 교류 장소였다. 지하의 공간사랑은 김덕수가 1978년 사물놀이를 첫선뵌 곳이다. 공옥진의 병신춤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토록 유서 깊은 공간이 곧 공개 매각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새 주인이 행여나 허물까 걱정스럽다. 유산을 잘 보전해야 문화를 축적할 수 있다. 건축계가 힘을 모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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