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찬밥신세 된 IT 하드웨어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에 연일 '위기론'이 불어닥치고 있다. 애플의 급성장과 구글의 모토로라 휴대폰 사업부문 인수 발표를 계기로 급기야 제조업 기반의 한국 IT 산업이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그러면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빈약함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만발하고 있다. IT 산업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 요즘 정론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한국경제의 성장을 주도해온 IT 하드웨어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각각 육체와 영혼으로 비유해 하드웨어를 열등한 것으로 묘사하는 이원론적인 시각이 반영된 탓이다. 물론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중요하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위협적인 이유는 구글이 소프트웨어 핵심 분야인 운영체제(OS)를 보유한 점이 크게 작용한다. 애플의 성장과 마이크로소프트(MS)∙노키아의 부진이 모바일 OS 성공 여부로 결정됐다는 분석도 일견 수긍이 간다. 하지만 혁신은 하드웨어에서도 일어난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중앙처리장치(CPU) 등의 칩셋이 소형화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용자 경험의 혁신을 불러온 '터치' 인터페이스나 MS의 콘솔게임기 Xbox의 동작인식 인터페이스도 이를 인식할 하드웨어가 먼저 갖춰졌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소프트웨어라도 하드웨어 없이는 '실체' 없는 아이디어로만 존재할 수 있다.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요즘 애플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의 지난 2007~2009년 매출을 분석해보면 소프트웨어 매출 대비 하드웨어 매출 비율이 5~6배 수준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라는 실제 제품 이미지를 통해 인식되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2일 "융합시대에 하드웨어 없는 소프트웨어는 절름발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하드웨어 산업 폄하 분위기가 중국산 전자제품의 역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은 지나친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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