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긴급진단 금융산업 왜 낙후돼있나] <2> 지나친 관치가 산업 망친다

당국·감사원 전방위 가격ㆍ인사 개입… 80년대식 녹슨 칼 휘둘러<br>수수료ㆍ대출금리 사사건건 간섭 부실사 돌려막기식 처리 되풀이<br>정권때마다 반복되는 빚탕감 연체율 상승 등 시장왜곡 불러<br>과도한 사후잣대에 금융사 위축


#카드사 고위 임원인 A씨는 "요새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가 가맹점 수수료에 개입하고 무이자 할부는 물론 과도한 혜택 제공까지 일일이 간섭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드사의 주요 수익원인 카드대출을 옥죄고 있어 이래저래 살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본격적인 STX 구조조정을 앞둔 올 5월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당국에 대담한 제안을 했다. STX 구조조정 시 손실 보전과 면책을 요구한 것이다. 지난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 때 금호생명을 인수했다가 나중에 감사원에서 결과만 보고 비싼 값에 인수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감사원 트라우마'에 산업은행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관치금융'이 아직도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올 들어 있었던 BS금융 사태와 국민은행장 밀어주기 논란은 대한민국 금융시계가 여전히 1970~198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금융감독당국과 감사원이 들어대는 사후잣대에 금융사들은 더 위축되고 있다. 대출이나 투자 시의 상황 논리보다는 "왜 부실이 났느냐"며 문제를 삼는 탓이다. 관치금융과 관치금융의 폐해를 더 크게 만드는 감사원의 '옥상옥 관치'에 금융사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당국이 가격ㆍ인사에 직접 개입=시장에서 보는 당국의 가장 큰 문제는 가격에 직접 개입한다는 점이다. 시장 논리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는 있었지만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정하고 은행의 대출금리와 각종 수수료를 낮추라고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는 게 금융산업의 현실이다. 업계에서는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수수료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을 때도 "현실화도 원치 않는다. 가격 문제에 개입하지 마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가격 문제에 정부가 간섭하게 되면 결국 풍선 효과에 따라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며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금융지주사에 투자하면서 가장 큰 리스크로 언급하는 게 바로 감독정책의 불확실성"이라고 지적했다.

관치금융의 폐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금융감독당국이 검사와 제재권을 갖고 있다 보니 금융사 입장에서는 당국이 사실상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금융감독당국을 통해 부실 기업을 지원해주라는 민원과 인사청탁이 난무한다. 우리은행이나 국책은행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금융지주사들이 처음에는 부실 저축은행 인수를 꺼리다가 지속된 압력에 4대 금융지주가 모두 저축은행을 가져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KB금융지주만 놓고 보면 당시 고위 임원들 사이에서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배임"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인사에도 직간접적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탓에 임원을 바라는 금융사 직원들은 당국과 청와대, 그리고 국회의원들과 인맥을 쌓기에 바쁘다. BS금융지주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장호 BS금융 전 회장을 몰아낸 뒤에 정치적 배경이 있고 금감원은 업무실행만 했다는 말도 있지만 금융감독당국이 외부 입김에 휘둘려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의 고위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가진 제재권과 검사권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관치 문제가 나오는 것"이라며 "구조적으로 이를 견제할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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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때마다 반복되는 '빚 탕감'에 시장이 왜곡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최대 50%까지 부채를 탕감해주는 국민행복기금이 출범했다. 당국은 어려운 서민을 돕는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빚 안 갚는 사회'를 정부가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경기침체가 주요 원인이겠지만 대부업계는 국민행복기금 출범이 연체율이 올라가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칼춤 추는 감사원에 죽어나는 금융회사=금융위원회가 저축은행 업계에 발전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시큰둥하다. 저축은행들이 원하는 것은 금감원의 너무 강한 검사에 따른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줄여달라는 것이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 트라우마'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극도로 원칙에 맞춰 검사를 하고 있다. 해당 부서장과 임원 차원에서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도 실무진 선에서 말이 안 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원인은 감사원의 사후잣대를 통한 감사 탓이 크다는 게 금감원 직원들의 시각이다. 저축은행 후순위채 불완전 판매를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이를 다 막지 못했다고 징계를 요구하거나 부실을 예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감사원이 지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이 저축은행 부실을 못 찾아낸 금감원 직원을 직무유기로 기소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반대로 금감원도 금융사들에는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대해서도 금감원이 지나치게 사후잣대를 들이댄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급락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취급한 것인데 처리 과정을 모조리 뒤져 징계를 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얘기다.

논란이 있지만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미국의 부채담보부증권(CDO)와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투자 손실 문제로 징계했을 때도 사후 징계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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