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노동개혁 선진국에서 배운다] <5>유연성과 안전성의 조화를

저성과자에 전환배치·재교육 우선… 獨 '근로자 보호'도 병행

임금·근로시간 조정 등 최대한 사내 해결에 힘써

지나치게 늘어나는 파견·기간제도 축소 노력

노동시장 유연성과 함께 안전망 구축 투자 나서


"업무 저성과자를 해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유와 근거가 명확해야 합니다. 중요한 점은 그에 앞서 다른 업무에서 일할 기회나 재교육이 충분히 이뤄져야 하고 해고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유럽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유연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도 사실 일반해고는 쉽지 않은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평생고용은 없다' '노동시장의 활력이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인력활용의 '유연성'에 대한 철학만큼이나 근로자를 보호하는 '안전성'의 중요성도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고를 하려면 근로자의 잘못을 지속적으로 증명한 뒤 사내 운영위원회에서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정규직 고용보호지수(2013년 기준)를 보면 독일 2.72, 네덜란드 2.84로 모두 최상위권이다. OECD 34개국 평균 2.04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고용보호지수란 해고에 대한 법적 규제 수준을 0(제한 최소)부터 6(제한 최대)까지 수치로 표시한 것으로 높을수록 일반해고가 까다롭다는 얘기다.

카텔레네 파스히르 네덜란드노동조합총연맹(FNV) 부위원장은 17일 "직원의 업무성과가 저조해 해고하려면 고용주가 해당 직원과 여러 차례 상담 및 성과 향상을 위한 도움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때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2.29로 OECD 평균을 웃돈다. 그런데 지수가 더 높은 독일이나 네덜란드보다 노동시장이 경직된 것은 노조 동의라는 장벽으로 근로계약 해지뿐 아니라 업무가 부진할 경우 전환배치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성장이 고착된 시대에 유연화 없는 고용문제 해결은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결국 경직된 구조는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파견ㆍ기간제 등 비정규직을 늘리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득ㆍ처우 격차가 벌어지는 이중구조 문제를 야기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대화 복원을 둘러싸고 '근로계약 해지 요건 명확화'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에 대해 현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1차로 내부 유연성을 확보한 뒤 2차로 외부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전환배치나 임금조정, 근로시간 변화 같은 기능적(내부적) 유연화가 우선이고 근로자를 해고하는 수량적 유연화는 차선책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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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자흐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국제정책총괄은 "능률이 떨어졌을 때 재교육과 업무전환을 통해 근로자가 갖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내부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며 "최대한 사내에서 해결하는 것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얀 베르너 포츠담대 교수도 "독일에서는 근로자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측에서 재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며 "인적 자산이 굉장히 중요하고 좋은 인력을 얻는 게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연화와 함께 안정화 역시 반드시 병행돼야 할 과제로 꼽혔다. 이들 국가도 사용자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유연성을 도입하는 것은 부당하고 인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이들 국가에서 '유연안정성'이라는 표현이 자주 인용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독일과 네덜란드도 몇 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파견ㆍ기간제 등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저임금 근로자가 늘어나는 등 과도한 유연성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실업급여를 포함해 단단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됐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불안정한 고용관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근로자 한 명이 회사와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계약을 맺는 일종의 프리랜서 계약 형태가 새롭게 나타나면서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귄터 슈미트 베를린자유대 명예교수는 "한국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하고 재교육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춘 만큼 내부 유연성을 강화하는 데 우선 힘써야 한다"면서 "고용보험·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 구축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투자라는 점을 노사정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OECD에 따르면 한국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3년 뒤 정규직으로 일하는 비율은 22.4%로 OECD 평균(5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네덜란드는 1년 뒤에 49.1%, 3년 뒤에는 69.9%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비정규직과 파견 확대 등은 이들 국가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제니 무렌 네덜란드 노동재단(FL) 사무총장은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을 1년마다 갱신하다 휴가 명목으로 해고하는 식으로 유연화가 남용되는 것을 우려해 3년간 세 차례 계약에서 2년간 세 차례 계약으로 갱신 횟수를 제한하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 방지 법안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파견 확대로 고용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지도 당면 과제"라고 설명했다.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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