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 국제금융·조세개혁 가로막는

세계 금융시장 양극화 심화로 개도국·신흥국 투자위험 초래

패권 쥔 美 자국 이익에 혈안… 불합리한 현행질서 밀어붙여




최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제3차 개발금융국제컨퍼런스(ICFD)가 열렸다. 불과 몇 년 전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세계적 과잉 저축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저축은 넘치지만 개발도상국 등의) 투자 사업들은 돈에 굶주려왔다. 저축과 투자 기회를 효율적으로 중개해야 할 세계 금융 시장은 자금을 제대로 배분하지 못하고 투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자국 국민총소득(GNI)의 0.7% 이상을 (개도국 등에) 개발 원조하기로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놀랍게도 영국과 덴마크·룩셈부르크·노르웨이·스웨덴처럼 긴축재정의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고 있는 일부 유럽 국가만 지난 2014년 약속을 지켰을 따름이다. 반면 미국은 2014년 GNI의 0.19%만 지원했다.


오늘날 개도국들과 신흥국들은 미국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최소한 방해나 하지 말고 우리가 빈곤 국가들에도 도움이 되는 국제 경제 체계를 만들도록 놓아두라"고 말한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패권을 쥔 미국은 이러한 노력을 좌절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실행해왔다.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을 제안해 과잉 저축 자금의 일부를 돈이 절실한 곳으로 선순환시키도록 도우려 했을 때도 미국은 그러한 시도를 좌초시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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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채권과 자금 조달에 대한 국제 법규범을 정립하려는 세계적 추세를 저지하려고도 했다. 예를 들어 채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국채 부도 사고를 질서정연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그러한 방법은 없다. 우크라이나·그리스·아르헨티나는 모두 기존의 국제 질서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부분의 국가는 국가 채무를 재구조화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최대의 장애물은 미국이다.

개도국들과 신흥국이 다국적기업에 자국 시장을 개방할 경우 해당국에서 이들 거대기업이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이윤에 대해 과세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애플·구글과 제너럴일렉트릭(GE)은 과세를 피하는 데 도가 텄음을 보여줬다. 선진국과 개도국들 모두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 회피로) 수십억달러씩 조세수입상의 손실을 입었다.

필자는 현재의 조세 체계를 쇄신하기 위한 방법을 조사하는 국제기구인 '국제적 기업과세 개혁을 위한 중립 위원회(ICRICT)'의 위원이었다. 우리 위원들은 ICFD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현재의 조세 체계가 망가졌으며 소폭의 수술로는 고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대안으로 우리는 미국의 법인 과세제도와 유사한 방안을 제안했다. 이는 기업이 경제활동을 벌이는 국가가 어디인지를 기준으로 이윤에 대한 과세권이 있는 국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다른 선진국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권고한 대로 소폭의 조세 개혁만 추진했다. 개도국과 신흥국들은 그처럼 범지구적 문제는 (OECD가 아니라) 유엔에 이미 설립돼 있는 기구인 '과세 문제의 국제협력에 관한 전문가 위원회(CEICTM)'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강하게 반대했다. 미국은 선진국에 의한, 그리고 선진국을 위한 현행 국제 질서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미국은 3차 ICFD에서 승리했으나 역사의 잘못된 길에 서 있음을 자인한 꼴이 됐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美 컬럼비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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