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지난 2006년 2월21일. 당시 청와대는 장문의 글을 홈페이지에 띄웠다. 제목은 '압축성장, 그 신화는 끝났다'. 청와대는 "외환위기로 압축성장은 지속 불가능한 성장모델이었음이 입증됐다"며 "그것은 '서강학파'의 종언(終焉)을 뜻한다"고 선언했다.
사실 서강학파는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상징이자 '성장신화'의 중심이었다. 1970년대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개발을 주도한 고위 경제관료와 그 맥을 잇는 경제학자 중심으로 현실정책에 참여하며 한국경제의 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신화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속절없이 허물어졌고 그 자리는 '분배정의'를 주장한 '학현(學峴ㆍ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호)학파'가 채웠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도래는 그가 제창한 '시대의 교체'뿐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학계의 주류가 바뀌게 됨을 의미한다. 환란의 주범으로 몰려 불명예 퇴진한 서강학파가 15년 만에 전면에 등장하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한 것이다.
21일 부처 및 학계에 따르면 박 당선인의 경제 브레인으로 알려진 서강학파가 차기 정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선 인물로만 보면 당선인 선거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한 김종인 국민행복특별위원장과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 등이 모두 서강학파의 중심이다.
서강학파는 철저하게 '선성장 후분배'를 추구한다. 서강학파의 1세대이자 리더격인 남덕우 전 총리는 과거 한 행사에서 "경제는 수레와 같아서 구르지 않으면 쓰러진다. 성장을 하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추락할 수 있다"고 말하며 '성장론'을 강조했다.
학계 인사들은 서강학파가 절치부심 끝에 전면에 나서는 데 성공했지만 이들 역시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관(官) 주도의 성장정책이 통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민간 주도의 자율경제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의 중요성과 이를 토대로 한 새로운 경제정책의 모델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