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결렬은 어이없게도 모두발언 공개 여부 때문이었다. 철도노조가 교섭에 앞서 양측 대표의 발언을 언론에 공개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사측이 거부하면서 파업이 확실시됐다.
노조는 "무엇이 두려워 모두발언을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모두발언 못하게 하면 교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코레일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자리에서 노조가 모두발언을 한다면 사측도 교섭을 안 하겠다"고 응수했다.
교섭 결렬 후 서로의 입장을 발표하는 것을 두고도 옥신각신이었다. 코레일 서울 본사 1층에 마련된 기자 브리핑실에서 코레일 대변인이 입장을 발표했고 노조도 기자들이 있는 곳에서 입장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사측은 "장소를 빌려줄 수 없으니 8층 회의실에서 하라"고 막았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관계자들이 브리핑실로 내려와 입장 발표를 강행하자 코레일 측은 마이크로 의사진행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두 기관의 대표자가 기자들 앞에서 서로 마이크를 하나씩 들고 각자의 이야기를 동시에 하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철도노조와 코레일 양측은 서로를 가리켜 국민을 볼모로 철도 파업을 강행한다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국민의 불편을 들어 한 발짝 물러서는 쪽은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물러서라고 소리칠 뿐이었다. 모두발언이 뭐고 어디에서 입장 발표하는 게 대체 뭐라고 말이다.
물론 교섭을 정상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총파업이라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절차상의 문제로 교섭을 시작조차 못한 것은 얘기가 다르다.
파업에 들어갈 경우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평시 대비 60%로 줄어들고 화물열차 운행률은 무려 36%로 떨어지는 등 국민 불편이 예고되고 있었지만 총파업 전날 밤은 사소한 이유로 하릴없이 낭비되고 있었다. 국민이 잊혀진 교섭장에는 철도노조와 코레일의 감정싸움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