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부시 대통령의 어두운 유산


16일간의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정부 폐쇄) 사태와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촉발시킨 핵심 쟁점은 건강보험개혁법안, 이른바 오바마케어다. 1989년부터 전국민의료보험을 실시 중인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하지만 공화당, 특히 극우세력인 티파티(tea party)의 반대 논리도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26개주는 대부분 남부 오지의 '딥 사우스(deep south)'지역으로 오바마케어의 주요 혜택 대상인 전국의 흑인과 저소득층이 밀집돼 있다.


비록 연방정부가 오바마케어 비용 90%를 지원한다지만 세수 기반이 빈약한 이들 주정부로서는 나머지 10%를 부담할 여력이 거의 없다. 또 이들은 이미 국가부채가 천문학적 수준인데 오바마케어로 정부 빚이 더 늘면 결국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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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바마케어가 싫다고 국가 디폴트라는 핵폭탄을 운운하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부채 문제는 공화당이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 국가부채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과 이라크전쟁이 근본 원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국가부채가 매년 1조달러씩 늘어난 것도 국채이자 증가, 금융위기 이후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 때문이다. 사회보장 지출 증가는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미 사회가 최악의 국론 분열상을 보이고 워싱턴 정가에서 '합의의 문화'가 사라진 것도 이라크전쟁의 후유증 탓이다.

이런 와중에 미 국민들 사이에서는 '부시 향수'가 떠돌고 있다. 미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적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자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바라는 정서가 커지면서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얘기다. 미 사회의 국론 분열과 국가부채 증가를 이끌었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를 두고 우리 정치권은 부시의 역사적 승리이자 이라크전쟁의 재평가로 볼까, 아니면 미 정치의 공멸이자 역사적 후퇴의 상징으로 볼까. 걸핏하면 "역사가 재평가할 것"이라며 말장난을 일삼고 있는 역대 정부 인사들이나 소통과는 거리가 먼 현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드는 의문이다.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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