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일 줄 모르는 유가 고공행진에도 지난달 국내 휘발유 소비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가격 안정화에서 소비 합리화로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0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지난해 4월(521만8,000배럴)보다 5.57% 늘어난 550만9,000배럴로 역대 4월 휘발유 소비량 가운데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한 이로써 휘발유 월단위 소비량은 지난해 11월부터 무려 6개월째 전년 대비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이란발 중동정세 불안으로 기름 값은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 휘발유 소비는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586만7,000배럴로 전년 동기 대비 0.82% 증가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12월에도 4.07% 늘어난 621만2,000배럴을 기록했다.
이 같은 소비 증가세는 올해도 계속되며 1월(582만3,000배럴)과 2월(567만5,000배럴)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59%와 4.35%씩 증가한 데 이어 3월에도 지난해보다 4.11% 늘어난 568만6,000배럴을 기록했다. 올 들어 휘발유 소비가 계속 늘면서 1~4월 누적 소비량 역시 전년 동기 대비 5.4% 증가한 2,269만3,000배럴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 소비량으로는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반면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은 올해 들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올 1월 리터당 1,955원08전이던 휘발유 평균가격은 2월 1,986원54전에 이어 3월 2,029원95전, 4월 2,058원68전까지 치솟은 상태다. 결국 휘발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도 소비는 전혀 줄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휘발유 가격과 소비가 동반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고유가에 둔감해진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과거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유가가 단기간에 급등해 휘발유 소비가 감소했지만 최근 100일 넘게 지속된 고유가로 소비자들이 가격에 둔감해진 탓에 소비가 줄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기름을 많이 먹는 중대형 자동차의 판매가 늘어난데다 정부의 가짜 석유 단속 강화로 정품 휘발유 소비가 증가한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고유가에도 휘발유 소비가 줄지 않는 기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정유사들을 옥죄어 기름 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그릇된 에너지 정책 때문에 소비자들은 에너지 낭비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며 "이제라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국민들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로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