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미운 오리의 변신 - 차량탑재형 105㎜ 곡사포

[권홍우기자의 밀리터리레터]

삼성테크윈에서 개발한 차량탑재형 105mm 곡사포 ‘EVO-105’/사진=삼성테크윈 홍보영상

방위사업청이 28일 발표한 신장비 도입 4건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가는 게 차량탑재형 105㎜ 곡사포입니다.(나머지 3개 사업 가운데 패트리어트 성능 개량과 장애물 개척 전차에 대해서는 내일부터 차례로 소개할 생각입니다.) 중요도로 따지자면 탄도탄을 막아낼 수 있는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 3)이나 육군의 숙원사업으로 신규 도입될 장애물개척 전차가 우선이겠으나 105㎜ 곡사포를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것 같아 먼저 소개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차량 탑재형 곡사포는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도태가 예정된 장비를 창조적으로 개량했다는 평가 이면에 세계적 추세에 뒤떨어진 선택이라는 혹평이 존재합니다. 105㎜ 곡사포는 오랫동안 우리 군의 주력 화기였습니다. 야전 곡사포로는 가장 구경이 작지만, 수량으로는 포병전력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미국의 군사 원조와 미국제 장비만으로 포병전력이 운영되던 시절에도 육군은 105㎜보다 고성능의 화포를 보유했었습니다. 155㎜와 8인치 곡사포(견인형 및 자주형)를 비롯해 175㎜ 평사포가 있었지만 주력은 105㎜ 곡사포였습니다. 155㎜ 자주포(K-55A1 및 K-9)가 널리 보급되며 주력 사단의 지원 포대가 155㎜로 전환하기 전까지 105㎜ 곡사포는 사단 포병 화력의 중추였습니다.


105㎜ 곡사포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래된 것은 1941년 생산분도 있습니다. 국내에도 2차대전과 6.25에 사용하던 장비도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105㎜ 곡사포를 도태시키거나 경량화시켜 공수부대나 신속전개군이 사용하는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시점에서 105㎜ 곡사포를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이 운용하는 국가입니다. 2,000문이 넘는다고 합니다. 보유포탄이 350만발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주요국가들이 105㎜ 곡사포를 도태시키는 이유는 노후한데다 성능이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군인 자원이 줄어드는 데 비해 조작인원은 운전병 포함 11명이 필요하고 최대사정거리라야 12km 안짝입니다. 각종 신형탄약이 속속 개발되는 120㎜ 박격포로도 같은 효과를 내면서 인원과 정비 요소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 역시 도태 요인입니다. 실은 우리 군도 4.2인치 박격포를 대체할 차량(장궤식, 차륜식)탑재형 120㎜ 박격포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차기 박격포와 105㎜ 곡사포 사업이 중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습니다. 군이 오래된 105㎜ 곡사포를 개량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손꼽힙니다.

첫째, 보유 수량과 탄약이 많습니다. 막대한 수량의 보유탄도 곧 노후화할 것이라는 비판적 전망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경제적인 화력이라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 국지전에서 무기체제로서 효용성이 아직도 증빙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전개된 미군의 경우 105㎜ 곡사포가 정확하고 쓰임새도 많았다는 경험이 개량사업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전해집니다. 105㎜ 곡사포는 유사시 평사 사격도 가능해 적의 장갑차량이나 인마를 살상할 수도 있습니다. 박격포에는 없는 장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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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업체 주도로 개발된 차량 탑재형의 성능이 기대 이상으로 뛰어났다는 점입니다. 차량 탑재형을 자체적으로 개발한 회사는 삼성테크윈인데요. ‘EVO(Envolved Wheeled self-propelled Howitzer)-105’라는 이름을 붙인 개량 105㎜ 곡사포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설명대로라면 정말로 성능이 좋아졌습니다. 미운 오리가 백조로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 복무 시절에 포 방열훈련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요. 고생이 많습니다. 일단 포다리를 고정시키려면 땅을 파야 합니다. 겨울철이면 곡괭이가 콩콩 튀는 땅을 파는데 교대로 쉴 새 없이 한참을 땀 흘려야 합니다. 삼성테크윈의 홍보 동영상에 따르면 요즘 같은 날씨에 구형 105㎜를 방열하고 초탄을 발사하는데 11명이 4분 30초가 걸렸습니다. 반면 EVO-105는 5명이 56초를 소요했을 뿐입니다. 전개와 방열, 초탄 발사시간이 짧다면 동일한 화포, 동일한 수량이라도 몇 배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시간 단축이 어떻게 가능한가. 유압식 고정장치 덕분입니다. 땅을 파는 대신 유압으로 작동되는 4개의 다리를 내리면 고정은 끝입니다. 더욱이 EVO-105는 정확하고 생존성도 높습니다. GPS와 네비게이션과 맞물린 탄도계산기로 정확한 사격제원 산출이 가능하고 손으로 돌려 포의 각도와 방향을 조정하는 예전과 달리 조이 스틱 하나로 사격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정확도가 높아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생존 능력도 높아졌습니다. 5톤 트럭 위에 방호판이 있어 각종 폭탄의 파편과 소총탄 피격으로부터 제한된 수준의 방호가 가능합니다. 특히 쏘고 달아날 수 있습니다. 현대의 포병은 - 북한이 그런 능력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 대부분 대포병 레이더를 갖고 있는데요. 적이 우리를 향해 대포를 발사하면 그 궤적을 역추적해 포탄 발사 장소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대포병 레이더와 연동된 적 포병의 반격을 받은 고정된 진지의 포병은 유개호나 땅굴로 보호되어도 피폭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죽음이죠. 하지만 EVO-105는 발사 후 잽싸게 이동하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동로를 확보한 이후에야 이런 회피 도주가 가능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적어도 1회용 포병에서 벗어난다면 전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군이 보유하고 있는 105㎜ 곡사포를 전부 개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그래서도 안됩니다.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서 일부에 국한하겠죠. 대략 알려진 숫자는 있으나 소개하기는 어렵습니다. 수량을 밝히면 차기 박격포의 도입 물량과 연대 전투단과 여단, 사단의 미래 작전개념의 일부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군의 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포병 운용의 개념은 소폭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이 보병이 운용하는 보병화력이지만 포병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120㎜ 차기 박격포까지 도입되면 전술 교리도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포를 방열하려 진땀 흘렸던 추억은 말 그대로 기억 속에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사단과 군단의 야포는 자주화한 155㎜ 곡사포와 대구경 다연장 로켓이 맡고 그 이하는 120㎜ 박격포가 담당하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다소 어긋나지만 기존의 무기체계를 보완 개량하려는 노력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다만 차량 탑재 105㎜ 곡사포가 실제로 양산되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실제 부대 운용시험에서 차량탑재형 105㎜ 곡사포의 운명이 결정되겠죠.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차량탑재형 곡사포는 주요 화력 장비 중에서는 처음으로 바퀴 달린 차량을 활용하는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우리 군은 그동안 차량형(장륜형)보다는 궤도식(장궤형)을 선호해 왔습니다. 야지 기동력이 높기 때문인데요. 도입 가격과 유지 비용이 비쌉니다. 외국에서는 심지어 전차까지 차륜형 도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도로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검토해 볼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권홍우 기자의 밀리터리 레터’ 다음 편에서는 패트리어트 개량 사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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