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역사를 바꾼 2인자 '킹 메이커'

■ 왕과 나(이덕일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br>몰락한 왕족 왕위에 올린 김유신 이성계에 새 왕조 열게 한 정도전<br>정책으로 보좌한 참모 황희·김육 등 왕을 만든 11인의 제2권력자 소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王侯將相 寧有種乎)" 진나라 말기 농민출신 진승ㆍ오광, 그리고 고려 무신정권 시절 노비였던 만적이 이 말을 기치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의구심은 커진다. 왕은 하늘이 내리는가. 고래로 왕조를 새로 연 왕들이 언제부터 왕후장상의 반열이었나. 이리저리 왜곡하고 꾸민들 결국 그 시작이야 대체로 변변치 못하지 않나. 그렇다면 무엇이 왕을 만드는가.

지난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시작으로 한국사의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해석해 온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바로 그 왕을 만든 사람들에 주목한다. 왕이라는 자리야 하늘이 내렸는지 모르지만, 나라를 평온하게 유지하고 나아가 더 융성하게 하는 것은 절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11명의 인물들은 그 자신을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로 낮춰 오히려 세상을 바꾸는 경우다.


첫 장을 장식하는 인물은 가야계라는 비주류 출신으로써, 몰락한 왕족 김춘추를 왕위에 올리며 주류사회를 바꾼 김유신이다. 김춘추에게 강한 신라의 건설, 바로 '삼국통일'이라는 큰 목표를 제시하고, 왕족인 성골과 진골들의 카르텔을 때로는 깨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신라사회를 개혁하는 데 성공한다.

다음은 궁예의 신하에 불과했던 왕건을 왕으로 만든 신숭겸ㆍ배현경ㆍ복지겸ㆍ홍유 등 네명의 공신이다. 고려 건국 후에도 개국공신 논공행상에 휘말리지 않은 이들은, 태조 왕건이 죽은 뒤에도 같은 묘에 배향되는 드문 기록을 남긴다. 주몽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온조가 백제를 열게 한 소서노도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연 좋은 사례다. 또 이성계로 하여금 조선왕조를 열게 한 정도전도 마찬가지.


다소 다른 경우지만 왕을 만들어낸 '킹 메이커' 외에 정책으로 보좌한 참모도 소개한다. 인재 발탁에 힘쓴 왕을 만나 '시운'을 적절히 활용한 황희, 평범한 군주 아래 정책 실현에 전력한 김육, 뛰어난 토목건축 실력 하나로 미천한 신분을 넘어 판서 자리에 오른 박자청도 지나칠 수 없다.

관련기사



반대로 권력을 향한 '맹목'이 화를 부르는 인수대비의 경우와, 군주를 왕위에 올리고도 사사로운 욕심이 지나쳐 결국 귀양 생활로 생을 마감하는 홍국영도 소개한다. 사대주의적 유교 정치를 없애고 아들 목종을 왕위에 올린 뒤 섭정을 하려다 쿠데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천추태후도 같은 경우다.

끝으로 하나 격변기에 '악역'을 맡아야 했던 강홍립의 경우도 소개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명나라와 후금의 전쟁이 일어난 가운데, 중립적 입장에 서고자 했던 광해군과 사대주의에 치우쳐 파병을 주장한 신료들 간의 갈등이 극한에 달해 있었다. 결국 도원수로 파병된 그는 문관으로서의 한계와 내부적인 갈등의 결과로 결국 전투에 져 후금에 항복하지만, 그 가운데도 조선-후금의 화의를 종용하면서 후금 군대의 남하를 막는다. 결국 인조반정 뒤 풀려나지만, 그 해를 못 넘기고 사망하고 만다. 이 정묘호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조선은 다시 10년 뒤 더 혹독한 병자호란을 맞게 된다. 1만6,000원.

이재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