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니치 향수에 꽂힌 여심… "나만의 작은 사치 즐겨요"

'피렌체의 향기' 등 브랜드 스토리에 끌린 마니아층 소비 급증

산타 마리아 노벨라·조 말론, 에르메스·바이레도 등 최상의 원료로 고객 유혹

"최소 비용으로 명품 소유"… 고가에도 매년 두자릿수 성장

산타 마리아 노벨라,

바이레도 ''발 다프리크''

아이데스 데 베누스타스 시그니처 향수

분더샵 ''라 페르바'' 매장 내부.

프리랜서 작가 김지현(가명)씨는 지난 해 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김씨가 여행 중 가장 좋아했던 도시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피렌체.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과 웅장한 두오모 성당, 아르노 강변의 우아한 야경까지 피렌체라는 도시의 모든 것이 김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짧은 여행이 아쉬웠던 김씨가 피렌체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김씨는 성당 근처의 유명 약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향수를 구입해 귀국했다. 김씨는 "향기는 옛 기억을 불러내는 촉매제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특별하게 기억시킬 수 있는 매개체"라며 "지금도 같은 향수를 국내에서 구해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고급 향수가 젊은 여성들로부터 '잇 아이템(인기 소비 품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불황 무풍지대였던 루이비통, 프라다, 구찌 등 대표적인 명품마저 2~3년 전부터는 매출 감소로 휘청이고 있지만 '니치 향수'로 불리는 프리미엄 향수는 국내 시장에 잇따라 상륙, 패션·뷰티 시장에서 차세대 상품군으로 쑥쑥 크고 있다.


명품 부진으로 백화점 실적이 제자리를 맴도는 와중에도 프리미엄 향수 매출은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을 정도. 신세계백화점의 프리미엄 향수 매출은 2012년 전년대비 93%, 2013년과 2014년에도 각각 243%, 23% 뛰었고 현대백화점의 향수 매출 역시 2012년 16.3%, 2013년 17.4%, 지난해 18.7% 성장했다.

이지나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 마케팅 담당자는 "니치 향수는 소수의 제한된 고객을 위해 최고의 조향사가 최상의 원료로 만든 향수로 브랜드만의 상징적인 스토리를 담는다"며 "일반 향수에 비해 2~3배 비싸지만 향기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 비용 대비 타인의 주목도가 높은 상품이라는 점도 니치 향수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이씨는 "핸드백이나 의류, 보석에 비해 적은 비용을 투자해 하이엔드급 명품을 소유하는 셈"이라며 "니치 향수는 대표적인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 상품이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니치 향수가 새로운 불황 돌파 아이템으로 주목받자 패션·뷰티 브랜드를 수입하는 업체들은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해 국내 시장에 데뷔시키고, 백화점 등은 니치 향수를 위한 공간을 계속 늘려주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1층의 경우 '산타 마리아 노벨라' '조 말론' '바이레도'에 이어 이달엔 '에르메스 향수' 매장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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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1221년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이탈리아 대표 고급 향수로, 간판 상품인 '아쿠아 디 콜로니아 프리지아'의 가격은 100㎖에 23만8,000원이다. 하지만 높은 가격에도 해외 여행 중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천연 향을 접한 경험이 있는 여성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자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 해 말 신세계백화점으로부터 아예 판권을 넘겨 받아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이달 들어 데뷔한 에르메스 향수 역시 가격대가 높기는 마찬가지. '에르메상스'는 100㎖에 33만1,000원, 향수병을 담는 10가지 색상의 가죽 케이스의 가격은 41만4,000원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오히려 더 적극적이다. 에르메스 백이나 스카프, 액세서리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에르메스'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에르메스 향수 매장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게 백화점 측 설명이다. 민병도 신세계백화점 잡화팀장은 "에르메스라는 명성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쌀 것이라 지레 짐작했던 고객들이 오히려 가격대가 괜찮다며 여러 개 구매하기도 한다"며 "향의 종류가 다양해 가볍고 상쾌한 향은 젊은 고객을,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향은 중장년층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국내에 첫 선을 보였던 '조 말론'은 이제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갤러리아 등에 추가 매장을 내고 '라임 바질 앤 만다린' '와일드 블루벨' 등의 향기를 앞세워 더 많은 고객들을 유혹한다.

이 밖에 '바이레도'는 기존 패션·뷰티의 중심지로 꼽히는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이 아닌 북유럽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유래한 희귀한 향수라는 점을 앞세워 잘 알려지지 않은 향으로 자신 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마니아 층의 지지를 받는다.

니치 향수의 인기는 백화점 바깥의 프리미엄 뷰티 편집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청담동의 분더샵에 자리 잡은 뷰티 편집숍인 '라 페르바'에서도 방문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상품군은 단연 니치 향수다. 뉴욕 업타운을 대표하는 '아이데스 데 베누스타스'에서부터 '딥티크''바이레도''메종 프란시스 커정''아틀리에 코롱' 등 향기를 맡기 전에 병만 봐도 황홀해지는 상품들이 편집숍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라 페르바 관계자는 "매장의 대표 향수인 아이데스 데 베누스타스 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와 패션 디자이너들이 찾는 예술적인 향수라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패션 리더들로부터 먼저 주목을 받았다"며 "같은 향을 담은 캔들, 디퓨저, 비누 등이 하나의 라인을 이루면서 높은 가격에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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