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그동안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현실화 내지 정상화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전기료가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요금폭탄 논란을 초래할 정도로 전기요금 구조를 왜곡해온 누진제를 조정해야 마땅하지만 이번엔 손도 대지 못했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미뤘다는 해명은 군색하기만 하다. 누진제 개편은 올 봄부터 국민에게 누차 약속했던 사안이 아닌가.
누진제 개편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6단계인 누진제를 절반 수준으로 단순화하면 전기를 적게 쓰는 가정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반면 많이 써도 오히려 전기료가 줄어들 여지가 있긴 하다. 우리가 진작부터 단계적 축소가 바람직하다는 권고를 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구간조정의 기술적 애로와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개편의지를 천명한 후 반년 동안 도대체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합의가 관건이라지만 정작 수요자인 국민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열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겨울철 전력위기 앞에 개편의지를 접은 것이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
문제가 있는데도 현행 체계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주무장관조차 누진제가 요금폭탄을 부른다고 인정하지 않았는가. 백번 양보해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면 최소한 복수의 방안을 제시하고 여론수렴 절차를 밟아가야 옳은 방향이다. 이러고서 올 겨울철에도 절전 동참을 호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