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동기 없는, 부조리한 범죄가 난무하는 이 세상을 무대에 그려내려 했다."
뮤지컬 '데스노트'의 연출을 맡은 쿠리야마 타미야(사진)는 16일 일본 도쿄의 캐피톨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데스노트는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란, 성적 우수한 청년이 지루함을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라며 "이는 분명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세상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2003년부터 연재된 일본의 동명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우연히 '이름이 적힌 사람은 40초 후에 죽는다'는 문구가 적힌 노트를 줍게 된 천재 대학생 라이토와 또 다른 천재 엘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그렸다. 가수 JYJ와 배우 최민식 등이 소속된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이 작품을 오는 6월 홍광호·김준수 주연의 라이선스 공연으로 올리며 뮤지컬 제작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다.
일본 신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을 지내기도 한 일본의 대표 연출가인 쿠리야마 타미야는 원작 만화 제1장의 테마인 '지루함'이 현실 세계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라고 강조했다. "극 중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사신(死神) 류크가 데스노트를 인간 세계에 떨어뜨려 모험이 시작되는데, 이 지루함은 21세기 일본의 공허한 기분을 나타내는 단어죠." 그는 "존엄한 생명을 이유 없이 경시하고 무책임하게 파괴하는 범죄를 마주하며 이 '조용한 광기'가 특별히 부족함도 없으면서 자극도 없는 갑갑한 일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데스노트가 비록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전후 부흥과 발전 일변도의 길을 걸어온 한국에서도 생각해 볼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도 참여할 일본 연출계의 거장은 음울한 분위기의 이 작품이 관객에게 색다른 메시지로 전달되길 기대했다. "류크의 대사 중 '아무 것도 없어'라는 말이 있어요.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할지 모르는 허무한 시대를 표현하는 말이죠. 데스노트와 그 안의 여러 키워드가 지루한 21세기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오리지널 작품은 1,200석 규모의 도쿄 닛세이 극장에서 공연중이다. 2층 구조의 앙상한 철골 세트와 중앙의 회전 무대는 다소 밋밋한 인상을 주지만, 다채로운 영상을 활용하며 빈틈을 채워 나간다. 흰 배경의 스크린에 누군가의 이름이 하나둘 등장하는 방식으로 죽음의 노트를 시각화했고, 다양한 배경 전환 역시 영상으로 대체했다. 죽음을 예고하는 '40초'의 시간이 영상을 통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고, 그 위에 긴장을 요리하는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더해지는 극 초반, 짧지만 강렬한 40초가 관객을 압도한다.
일본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호리프로가 제작을, 브로드웨이 대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음악을 맡았다. 한국 공연은 6월 20일부터 8월 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