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스의 「나의 세기」는 1900년부터 1999년까지 모두 10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자는 그때 그때 바뀌는 특이한 형식이다. 그라스는 또 각 이야기마다 자신이 직접 그린 수채화 한 점씩을 딸려 놓았다. 그림들은 그 해의 사건을 상징하는 암시로 가득차 있다.이 작품은 모든 장에 각기 다른 시각과 목소리를 가진 다양한 화자를 등장시켜 그 해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내비친다.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중국인을 학살한 서구 열강의 행위를 고발하는 「1900」을 시작으로 히틀러의 나치정권 등장을 알리는 「1933」, 음반의 다량보급 「1907」, 펑크족 확산 「1978」, 걸프전쟁의 허상을 고발하고 전쟁으로 이익을 챙긴 무기상들을 꼬집은 「1991」 등이 실려 있다.
이 한편의 소설에 학문의 발전에 따른 문명의 진보,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 잇따른 정치적 비극 등 역사의 모든 장이 두루 실려 있는 것이다.
「나의 세기」를 집필한 귄터 그라스의 입장은 「포쿠스」와의 인터뷰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역사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눈을 모아 이 세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위대한 행적을 남긴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의 들러리이자 희생자들이다. 나는 그들의 입을 빌려 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무미건조한 역사를 형형색색의 이야기로 가까이 가져다주고 싶었다.』
「나의 세기」는 주어 「나는」으로 시작하여 부사 「도처에」로 끝난다. 「나는 도처에 존재한다」 바로 귄터 그라스가 밟고 서 있는 문학적 토양을 말해준다.
이용웅기자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