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출한 원전은 공교롭게도 이날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진 신고리 3ㆍ4호기와 같은 모델.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UAE 원전에는 국산이 아닌 외국산 케이블이 들어간다”며 애써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국제적인 망신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불과 5개월 만에 다시 터진 원전 부품 사고는 우리 원전 수출 전선에 이렇게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원전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며 원전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반복되는 부품사고로 해외에서 한국형 원전에 대한 신인도 하락도 불 보듯 뻔하다. 올해 말 핀란드, 내년 초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입찰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원전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흐르자 재발방지를 철썩 같이 약속했던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빛(옛 영광) 5·6호기에서 품질 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이 공급된 사실이 드러나 한동안 가동이 중단됐고 요란한 재발방지 대책까지 마련했지만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당시 전수조사를 통해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력 위기를 이유로 땜질 처방에 급급했던 원전 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이번 사태를 불러온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말 발표된 원안위 조사에서는 최근 10년간 위조된 품질검증서나 시험성적서를 이용해 한수원에 납품된 원전 부품이 561개 품목, 1만3,794개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는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1월 ‘원전산업 종합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납품 비리의 원인이 됐던 발전소별 구매 기능을 없앴고 모든 구매 관련 업무를 한수원 본사 내 전담조직에서 일괄처리한다는 방안도 냈다. 조작이 빈번했던 품질 보증서류도 한수원이 국내외 시험인증기관으로부터 직접 받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 위조 부품 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졌다. 납품업체가 아닌 국내 시험기관이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이다. 정부의 대책에 여전히 구멍이 크고 원전 건설의 모든 영역이 썩어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지난해 처음 사태가 불거졌을 때 정부가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 부품을 모두 조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특정 부분에서 이상 징후나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분야 부품만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수원 조직도 크게 손대지 않았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그때도 지적했지만 미리미리 전수조사를 해서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