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대기업 대형 프로젝트 규제 푼다] 부처 이기주의·지자체 장벽 막혀 수조원대 사업 줄줄이 표류

삼척·강릉 화력발전소… 여론 반발로 차일피일<br>LG R&D센터 등도 행정장벽에 절반 줄어


비즈니스프랜들리(친기업정부)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푼 현장 규제는 1,600여건. 대규모의 투자가 뒤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를 집행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현장 규제는 풀었지만 부처 혹은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야 할 규제들이 남아 집행의 마지막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를 수반한 규제는 10개 가운데 9개를 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남은 한 개의 규제가 투자의 족쇄가 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 역시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규제를 풀 계획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투자가 막힌 대형 프로젝트부터 규제를 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대체로 투자를 검토하다가 규제 때문에 중단된 것이나 부처 혹은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가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조원대 대형 투자 '부처 이기주의식 규제'에 줄줄이 가로막혀=많게는 수조원의 투자계획을 세웠지만 규제장벽을 넘지 못해 집행을 하지 못하는 대형 투자는 제법 된다. 이들은 대부분 부처 이기주의나 지방자치단체의 장벽, 여기에 이해집단의 논리에까지 가로막힌 것들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성동구 삼표레미콘 부지에 지을 예정이었던 110층짜리 규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의 경우 규제 때문에 사업이 중단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09년부터 추진됐던 프로젝트이지만 서울시와 공공기여 부분에 대한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의 자회사인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110층 건설을 위해 구성했던 태스크포스(TF)를 해체한 데 이어 서울시와의 협상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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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서울시는 5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은 도심ㆍ부도심의 준주거지역에만 짓도록 제한, 1종 일반주거지역인 삼표레미콘 부지는 특단의 정책 변화가 없는 한 초고층 개발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한항공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7,000억원가량을 투자해 7성급 호텔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특급호텔을 포함해 다목적 공연장, 갤러리 등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려 한다"면서 "주변의 경복궁ㆍ창덕궁ㆍ인사동ㆍ북촌 등을 아우르는 문화벨트를 형성해 관광과 문화, 예술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하지만 현행법상 학교반경 200m 이내에는 관광호텔을 신·증축할 수 없어 투자 집행은 미뤄지고 있다. 정부도 호텔의 필요성에 공감, 카지노와 유흥주점이 없는 관광호텔은 학교 인근에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관련 법은 국회에 계류돼 있고 설령 개정안이 발효돼도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규제를 또 극복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수조원의 투자가 집행될 강원의 강릉ㆍ삼척지역 화력발전소 역시 입지와 사업자는 발표됐지만 투자집행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강릉ㆍ삼척지역에는 동부하슬라파워(강릉 동부하슬라 1ㆍ2호기 200만㎾)를 비롯해 삼성물산(강릉 G-프로젝트 1ㆍ2호기 200만㎾), 동양파워(삼척 동양파워 1ㆍ2호기 200만㎾) 등이 6곳의 발전소를 건립한다. 하지만 화력발전소를 놓고 지방의회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착공까지는 상당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게 관련 업체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LG그룹은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23만192㎡ 규모의 연구개발(R&D) 센터 건립을 추진했지만 서울시와의 협상 과정에서 당초의 절반가량인 13만3,588㎡ 규모로 줄었다. 이에 따라 당초 목표했던 LG전자 등 LG그룹 계열사 12곳이 공동 입주하는 통합 R&D센터의 기능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규제완화, 투트랙 방식으로 진행=정부는 이번 투자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때 이처럼 부처 간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규제 때문에 중단된 대형 사업들이 재개될 수 있도록 전향적인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정부의 규제 완화는 투트랙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부처가 총망라돼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것들을 뽑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에 대한 것은 순차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가 중단된 대형 프로젝트 중심의 규제완화를 먼저 하고 그 뒤 규제 전반에 대한 네거티브 방식(법규가 제한한 사항 이외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접근법)의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민간의 투자 물꼬를 트기 위해 규제에 막혀 투자가 멈춰버린 사례부터 하나씩 해소한 뒤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하고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제도적인 규제완화는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업규제를 찔끔찔끔 풀 것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도록 풀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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