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발전=선진국 원동력” 믿음은 잘못/학술적 성과 중시 연구풍토 조성시급1934년 4월 19일 서울 시내에서 「과학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시인 김억이 짓고 홍란파가 작곡한 「과학의 노래」가 연주되는 가운데 많은 인파들이 모여 종로에서 안국동을 돌아 을지로로 이어지는 거리를 행진했다.
이날 서울의 3대 일간 신문이 일제히 사설과 기사로 조선의 과학 진흥을 외쳤고 저녁에 YMCA 강당에서 「과학의 노래」가 합창으로 울려 퍼졌으며 이어 여운형이 「과학자에게 고하는 일언」이라는 제목으로 일장 연설을 했다.
당시 열렸던 「과학 데이」 행사의 모습이다. 과학운동가 김용관선생(1897∼1967)을 중심으로 민족의 지도자들이 「과학의 대중화」와 「대중의 과학화」를 내세워 과학대중화 운동을 벌인 것이다.
당시 「과학 데이」는 지금의 「과학의 날」보다 이틀 앞선 19일이었다.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존경받던 찰스 다윈이 죽은지 50주년이 되는 날이 1932년 4월 19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용관 선생이 주도한 64년 전의 과학대중화 운동은 위장된 민족해방운동이었다. 일제는 1934년 「과학 데이」 행사가 끝난 뒤 바로 김용관 선생을 구속했고 과학대중화 운동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에 국내 과학사 학계의 원로인 한국외대의 박성래 부총장은 과기처가 간판을 단 날(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하지 말고 전통을 잇는 의미에서 이틀 앞당겨 「과학 데이」와 같은 날로 하자고 외롭게 주장하고 있다.
이를 받아들여 김대통령이 올해부터 과학의 날을 이틀 앞당겨 「과학대중화의 원년」이라고 선언했더라면 「원년」의 의미를 새롭게 새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김대통령의 「원년」은 과학대중화를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의 날이 단지 과기처가 간판을 내건 날인 것처럼, 올해 단지 「원년」은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한국과학문화재단이 과학문화기금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 밖에 없다. 원년에 해당하는 참신한 철학이 없는 것이다.
「종교는 죄를 낳고 과학은 미신을 낳는다」 「도덕없는 기술은 야만이고 기술없는 도덕은 무력하다」.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온 철학없는 무분별한 과학대중화는 그릇된 미신을 낳았다. 가장 대표적인 미신은 「과학기술 발전=경제성장=선진국 진입」이라는 잘못된 등식이다.
「과학기술 발전」은 반드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 「경제 성장」도 반드시 「선진국 진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인도나 헝가리처럼 과학기술은 뛰어나지만 경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쿠웨이트나 브루네이처럼 1인당 GNP는 높지만 선진국으로 꼽히지 않는 나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발전」은 「경제 성장」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또 「경제 성장」은 「선진국 진입」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과학기술 발전=경제 성장=선진국 진입」은 과기처가 예산을 따기 위해, 또 재정경제원이 예산을 주는 명분으로 만들어낸 잘못된 등식이다.
올해가 「과학대중화의 원년」이라면 「경제의 시녀」로 전락한 우리 과학기술에게 신데렐라의 꿈을 안겨주어야 한다. 「경제 성장」과 「선진국 진입」에 얽매인 해괴한 등식을 벗어버리고 과학기술의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김용관 선생은 1933년에 「과학의 민중화」에서 이렇게 썼다.
『마치 팬이 있을 때 운동경기가 성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문과학에도 응원자가 필요하다. 뉴턴과 칸트 같은 과학자는 야만인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를 존경하고 학문 연구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라야 비로소 뉴턴과 칸트는 태어날 수 있다.』<허두영>